오랜만에 만난 미스터 김이 한국말로만 하였다. 50 고개를 훨씬 넘은 그 분은 한국말을 더듬거리면서 인사말 정도 했지 주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편해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말로만 하려고 하였다. “한국말이 많이 늘었군요” 하였더니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그럼요, 한국사람인데 한국말을 해야지요” 하였다. 한국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일부러 피하고, 한인 커뮤니티에 나가는 나를 마치 할 일 없는 사람처럼 한심하게 생각하던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 “어디 편찮으세요?” 하며 농담조로 물었다. “옛날에는 무조건 미국식이 좋은 줄만 알고 그냥 모두 따라 하였는데 그게 아냐” 하며 멋쩍게 웃었다.
60년대에 유학 온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도 영어 배우느라 미국생활을 배우느라 경황없이 산 덕분에 전문인이 되어 미국 중산층으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대가로 자녀도 한국말을 하지 못하고 자신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아 더듬거리는 재미동포로 전락되어 버린 케이스다. 한국에 돌아가서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미스터 김의 뜻밖의 말을 되받아 나는 아직 한국에 돌아가서 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하였더니 날더러 아직 젊어서 그렇지 두고 보라 한다. 몇 년 더 기다리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라 하면서 웃는다.
나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신기루를 보고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나 왔다. 미국 생활을 익히려고 옛 것을 서슴없이 버리고 신기루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살았다. 와중에 잃어버린 것 중의 하나가 한국말이었다. 십 여 년 전 샌프란시스코로 이사왔을 때 한국사람들과 더듬거리며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사람도 아니고 미국사람도 아닌 이방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잃어버린 한국말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어제도 지금도 내일도 많은 젊은이들이 오색 및 신기루를 보고 홀린 듯이 집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신기루의 실체를 깨달았을 때 고향을 기억하며 돌아가고픈 생각을 할 것이다. 새도 사람처럼 젊었을 때는 둥지를 떠나고 싶어 하나보다. 집에서 기르던 파랑새가 신기루를 보았는지 봄바람을 타고 떠나버렸다. 이발소에 가듯이 가축 병원에 가서 날갯죽지를 자르고 발톱을 깎아주고 하였는데 날개를 자르는 것이 잔인한 생각이 들어 내버려두었더니 자란 날개를 가지고 새장이 있는 거실에서 부엌으로 침실로 푸덕거리면서 날아다니는 시늉을 하였다.
예전엔 새를 어깨에 얹고 정원에서 일을 해도 다른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짹짹거리기만 하였지 날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날개를 단 파코는 떠난다는 작별 인사말 한마디도 없이 보따리도 싸지 않은 채 신기루를 따라 훨훨 날아가 버렸다.
길을 잃어버린 개나 고양이가 집을 찾아 들어왔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 새가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동네 여기저기에 새를 잃어버렸다는 광고지를 붙이고, 새를 찾기 위해 헛 일인줄 알면서도 며칠동안 인근 산으로 새를 찾아 나섰다. 새가 집을 떠난 지 두 주일이 넘었을 때, 이웃집 아줌마가 우리 새를 뒷산에서 본 것 같다하여 다시 산 속을 헤매기도 하였다.
이웃은 휴메인 소사이티가 집을 잃어버린 개나 고양이를 보호하여 주는 곳이라면서 전화하라고 일러주었다.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 새가 그곳으로 갔을 리가 만무하였지만 혹시나 하며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새 한 마리를 가지고 왔다면서 휴메인 소사이티 직원이 새의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틀림없이 파코였다. 신발도 신을 겨를이 없이 달려갔더니, 파코가 나를 보고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짹짹거렸다. 내 어깨로 후루루 날아와서 앉더니 계속 짹잭거렸다. 반가워서 나도 울고 새도 울었다. 집을 떠나 외지로 돌아다니면서 파코가 꽤나 고생을 한 것 같다. 집을 떠난 지 일주일 후쯤 우리 집에서 거의 10마일이 떨어진 어느 집 정원에서 파코가 발견되었다.
우리 집과 비슷하게 생긴 그 집 덱에서 울고 있는 파코에게 집주인이 손을 내밀었더니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손에 앉아서 먹이를 받아먹었다 한다. 목욕탕에 파코를 넣어 두고 며칠을 키우다가 새를 잃은 주인을 생각하여 휴메인 소사이티로 데려가 주어 파코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파코는 집을 떠나 잠시동안 자유를 누렸을 것이다. 다른 새들처럼 넓고 높은 창공을 날아보려고 노력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와 바람 속에서 먹이를 찾기 위해 고생도 하였을 것이다. 신기루를 따라 10마일의 거리를 퍼드덕거리면서 날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보고 자기 둥지로 돌아온 파코는 예전처럼 밖을 쳐다보면서 틈만 나면 날아가려고 퍼덕거리지 않는다. 거실에 있는 새장 가장자리에서 앉아서 논다. 신기루를 자기 둥지에서 발견한 것은 아닐까. 새도 둥지를 찾아 돌아오는데 외지에 살던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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