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파티즘(Bonapartism)이라는 말은 계급투쟁에는 초연한 입장의 군사-경찰 독재체제를 가리키는 좌파성 용어다. 레닌, 트로츠키 등 초기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이 이 보나파티즘의 대두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는 경고를 하면서 이 용어는 본래 용도와는 달리 공산주의가 몰락할 때 생길수 있는 군사독재체재를 지칭하는 말로 원용되기도 했다.
이 예측은 상당부문 현실로 나타났다. 과거 동구권에서 공산당이 통치력을 상실하면서 군부가 그 권력의 공백을 메운 현상이 잇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북한도 상당한 흡사점을 보이고 있다. 공산체제인 북한은 형식에 있어 당( )·군(軍)·정(政)의 트로이카에 의해 지탱되는 체제다. 당이 어느 사이에 존재가 희미해졌다. 정부를 지칭하는 정도 유명무실 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질적 파워는 모두 군이 쥐고 있는 게 현재의 북한 체제로 보인다.
지난해 북한군 차수 조명록이 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해 북한 인민군 제복차림으로 백악관을 예방한 것도 바로 ‘당이 아닌, 군 최우선 체제’가 북한임을 알리는 상징 작업으로 해석된다. 이는 전통적인 공산당 최우선 체제는 무너졌다는 신호로 북한 체제는 일종의 보나파티즘 체제로 전이됐음을 알리는 것 같다.
중국의 경우는 상황이 복잡하다. 1989년 중국 천안문사태 이후 그러나 이 ‘보나파티즘 대두의 예측’은 중국에서도 부분적이나마 맞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등소평이라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생존했었음에도 불구, 중국 공산당은 민주화세력 통제에 실패해 결국은 군이 동원해 사태를 진압했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은 독특한 체제로 변모해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산당 최우선’의 독트린은 여전히 강요되고 있으나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오늘날 일종의 광적인 내셔널리즘에 휩싸여 있다. 이 내셔널리즘은 과거 1930년대 일본과 이탈리아를 휩쓴 내셔널리즘, 다시 말해 파시즘의 대두를 가져온 내셔널리즘과 흡사하다" 한 중국 전문가의 말이다. 묘하게도 군부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내셔널리즘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 보수세력은 적이 존재 할 때 최상의 기능을 발휘한다"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나온 지적이다. 미국이 맞이한 적을 선명히 부각시킴으로써 성공한 최근의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다. ‘악의 제국’ 소련이 그 적이었다. 레이건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롤 모델이다. 부시 행정부도 ‘당면한 적’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가상의 적을 부시 행정부는 찾아냈다. 중국이다.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본다’는 시그널을 계속 흘렸다. 미국 군사력의 무게 중심을 태평양으로 옮기겠다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전략 보고서가 누출(?)됐다. 국가미사일방어(NMD)계획을 강행하겠다, 대만에 최첨단 군사 무기를 판매할 계획이다 등등 중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시그널이 계속 보내졌다.
미국과 중국의 군용기 충돌상황이 벌어졌다. 양국 정상이 직접 나서 상대방을 비난하는등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사태로 미국과 중국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까. 초미의 관심사다. 아직은 어떻게 사태가 결말이 날지 예측이 어렵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어찌 보면 워싱턴과 북경 양측이 내심 바라던 기회 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왜.
한번 이런식으로 가정해 보자. "워싱턴은 일관된 강성 해외전략 수립 방침과 함께 정치적 구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군용기 충돌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정치적 호재로 발전될 가능성도 있다. 새로운 ‘악의 제국’이 정체를 폭로해 보여줄 기회가 될 수도 있어서다… 군부의 부상, 권력승계, 민주화 세력 등의 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북경은 13억 중국민을 낡아빠진 공산체제에 가두기 위해 그들을 중화 민족의 자존심안에 묶어둘 기회를 찾게 됐다. 제국주의 미국 정찰기의 만행이다…"
워싱턴이나, 북경 모두에서 강경파들이 득세를 한 형편이고 보니 이런 추측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양측 모두가 ‘악의 제국’을 역할을 해줄 상대를 필요로 병적인 상황이 현 시점일 수 있다는 진단에서 나온 가정이다. 그나저나 이 와중에 햇볕정책만 표류상황을 맞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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