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버트 랭카스터와 커크 더글러스가 나와 사납게 총질해댄 박력 있는 웨스턴으로 잘 알려진 ‘O.K. 목장의 결투’는 사실 구원을 둘러싼 두 집안의 싸움이었다. 이 결투는 보통 보안관들인 어프 형제들의 소도둑 떼인 클랜턴 형제들에 대한 법집행 행사로 알려져 있으나 많은 서부사 학자들은 그보다는 법집행을 내세운 두 가문의 쌓이고 쌓인 증오의 폭발로 보고 있다.
서부시대의 마지막 전설로 남아 있는 O.K. 목장의 결투는 1881년 10월26일 이른 아침 애리조나 툼스톤의 O.K. 목장 마구간에서 일어났다. 서부시대 마지막 명보안관이었던 와이엇 어프 등 어프가 3형제와 와이엇의 친구로 폐병을 앓는 술꾼 건맨이자 전직 치과의사인 닥 할러데이 대 소도둑 빌리 클랜턴 등 클랜턴 3형제와 그들의 동료 맥로리 형제가 맞붙은 사건이었다.
두 집안간에 30여발의 총알이 오가고 3명이 죽고 2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결투시간은 달랑 30초였다. 이 결투는 명장 존 포드가 감독한 서정시 같은 웨스턴 ‘황야의 결투’(40)로 먼저 영화화 됐었다.
나는 1987년 10월 취재차 툼스톤을 방문한 적이 있다. 투산에서 차를 타고 1시간쯤 남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이 마을이 나타나는데 투산은 지금까지도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 놓고 관광객들의 돈으로 먹고살고 있다.
툼스톤은 1880년대 초 은광이 발견되면서 한때 총성과 주정과 술집여자의 교성이 끊이지 않던 붐타운이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곱게 단장한 붓힐 묘지에는 와이엇과 닥의 총에 맞아 죽은 빌리 클랜턴 등 3명은 여기에 묻혀 있다. 결투가 벌어진 마구간은 굉장히 협소했는데(총면적 16스퀘어피트)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실물 크기의 9명의 건맨 인형과 만나게 된다. 원수들끼리 바로 코앞에서 서로 마주 보며 총질을 했을 텐데 현장에서 보니 간도 큰 친구들이었구나 하고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난다.
와이엇 어프는 생애 100여회의 결투를 하고도 살아남은 명건맨으로 보안관직을 은퇴한 후에는 권투 프로모터, 광산업자 및 부동산 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다. 그는 1929년 건맨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장수인 81세로 LA의 17가와 워싱턴 블러버드 인근의 벙갈로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뒤늦게 클랜턴의 후손들이 가문의 명예회복 운동에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명예회복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사업가 로버트 클랜턴과 배우 테리 클랜턴에 따르면 ‘O.K. 목장의 결투’는 완전히 하나의 서부영화의 내용처럼 되어 어프 형제들은 정의한들이고 클랜턴 형제들은 무법자들로 정형시켜 놓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이런 틀에 박힌 사고방식 때문에 클랜턴가는 소도둑 떼(역사적으로 혐의만 있었지 한번도 유죄판결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한다)요 결투에서도 겁이 나 내빼거나 무참히 당한 패배자로 알려져 있다고 하소연했다.
두 사람에 따르면 클랜턴가는 왜곡된 역사의 피해자라는 것. 이들은 1880년대 당시 정의란 되는대로 식으로 집행됐다면서 와이엇이라는 친구는 더티 해리처럼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식으로 법집행을 자기 마음대로 떡 주무르듯 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클랜턴 형제들은 경찰권 남용의 희생자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래서 결투에 참가하지 않은 아이크 클랜턴은 사건 후 와이엇과 할러데이를 살인혐의로 고소했으나 기소에 실패했다.
그런데 로버트와 테리 클랜턴의 ‘우리측 주장’의 일부에 대해서는 많은 서부사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O.K. 목장의 결투’를 법집행 과정에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 정치적 대결로 정의 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클랜턴가는 목축업을 하는 집안으로 남북전쟁 당시 목축업자들은 남군편이었던 반면 도시인들인 어프가는 북군편.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서로를 증오해 왔고 이런 정치적 배경에 집안간 원한이 섞여들며 총질이 일어났다는 해석이다.
어쨌든 로버트와 테리의 적극적인 명예회복 운동으로 클랜턴 화수회 결성 추진에 지금까지 1만5,000명이 참여의사를 밝혀왔다고 한다. 한동안 클랜턴의 후손이라고 불릴까봐 자신의 신분을 숨기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떳떳이 성이 클랜턴임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마침내 클랜턴의 오명에 대한 재해석이 내려지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악명도 유명이기 때문이어서인지는 알 길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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