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연기자도 엑스트라도 아닌 스타 꿈꾸는 ‘보조 연기자’
TV속엔 인기드라마나 쇼만 있는 게 아니다. 옛사랑을 찾아주기도 하고, 범인을 잡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런 재현 프로그램들은 은근한, 그리고 꾸준한 인기를 자랑한다.
이들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끔씩 드는 생각. ‘과연 일반인들과 똑같이(?) 생긴 저들은 누구일까?’라는 점. 전문 연기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엑스트라도 아닌 그들. 일명 ‘재현 드라마 연기자’라고 불리는 그들이 어떻게 화면에 등장하고,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연기에 임하는지 궁금해진다.
▲재현 드라마 배우
이들은 보통 ‘재현 드라마 배우’로 불린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행인3’, 혹은 커피숍에서 주인공의 배경으로 등장해 뭔가를 속삭이고 있는 ‘가짜 연인’ 등 엑스트라와는 차이가 있다. 이들은 아무 말 없이 1~2초간 배경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와 대사를 가지고 등장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연기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방송사에서 엑스트라와 재현 드라마 연기자를 섭외하는 과정도 다르다. 엑스트라의 경우 한국예술연기자조합 등 기업형 단체에 수 십 명 혹은 수 백 명의 동원을 요청한다.
반면 재현 드라마 연기자는 사설학원이 제공한 프로필과 사진 등을 살펴본 후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개별 섭외를 한다.
그러나 일선 PD들은 "재현 드라마 연기자와 엑스트라를 구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또한 "단지 출연료가 싸기 때문에 기용할 뿐, 별다른 장점이 없다"고 솔직히 표현했다.
▲재현 드라마 배우의 일상
현재 방송 되고 있는 재현 프로그램은 KBS 2TV , KBS 1TV <긴급수배 사건 25시>가 있고 각종 오락 프로그램의 일반인 에피소드를 재현하는 코너들이 있다. 이들은 일반 탤런트들과 같은 스케줄로 움직인다.
차이가 있다면 출연료 등 대우. 일반 성인의 경우 많게는 20만원까지 받지만, 중요 배역이 아닌 아역 같은 경우는 1만 5,000원의 ‘차비와 밥값도 안되는 출연료’를 손에 쥐게 된다.
그래도 출연하게 된 것만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그토록 꿈꿔왔던 전문 연기자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한 두편 출연하면, 연기자라는 직함을 ‘과감하게’ 공개하고 우쭐해 하기도 한다. 엑스트라와는 격이 다른 ‘배우’이기 때문에 슬슬 ‘폼’을 잡기도 한다.
▲우리는 연기자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알아본 경험이 너무 좋았다"는 P씨(46)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연극인의 길을 걷다가 ‘재현 드라마 연기자’로 진로를 바꿨다. 경력은 비록 3년에 불과하지만, 연기 경력으로 치자면 20년이 넘는다. 그가 현재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KBS 1TV <긴급수배 사건 25시>. 때론 방송 직후 실제 범인으로 오해 받아 경찰에 신고 당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기분은 유쾌했다. 그만큼 사람들이 얼굴을 기억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의 한 사설 연기학원 남철영 실장은 "여기에선 이 정도만 되면 소위 ‘떴다’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P씨는 재현 드라마 전문연기자로만 인식돼 드라마 출연이 취소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한사코 실명 밝히기를 거절했다.
▲연기자를 꿈꾸는 사람들
보조 연기자를 배출하는 사설학원은 보통 유아반 학생반 성인반 주부반을 운영한다. 학생들의 경우 10대 스타를 꿈꾸는 이들이고, 간혹 취미 삼아 연기를 배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성인들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에게 연기는 생계 수단이다. 보조 출연으로 받은 출연료로 생활하는 가장인 경우도 있다. KBS TV의 한 PD는 이들에게서 다른 직업을 얻어 출연하기 힘들다는 대답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생계 수단으로 삼기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
이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얼마 되지 않는 출연료 조차 즉시 지급 되는 것이 아니라 60일이 지나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경우에 학교 수업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년동안 사설 학원을 다니며 재현 프로그램 다수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이태석군(16)은 "보조연기가 생활을 하다 버면 일반 탤런트와 마찬가지로 수업 듣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MBC ‘공개수배 사건 25시’(위)와 ‘경찰청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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