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만큼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생활의 청량제가 또 있을까. 때로는 결과에 따라 속이 상하는 일도 많지만 그렇다고 스포츠와 절연을 실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 아쉬움을 곱빼기로 풀자고 그 다음 장을 더욱 벼르는 게 상례다. 여느해보다 울렁이는 가슴으로 맞이한 2000년의 스포츠 아레나라고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있어서도 안될 안타까운 일 또한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였다. 저무는 새천년 첫해에 실어보내야 할 스포츠 무대의 부끄러운 유산 몇가지를 짚어본다.
▲금지약물 복용파동-승부에 집착한 도핑스캔들은 올해 역시 여지없이 반복됐다. 특히 세계최고 사이클스타 랜스 암스트롱의 금지약물 복용의혹은 충격이었다. 물론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의혹의 도마위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여파는 심각하다.
그가 고환암으로 시작된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돼 선수생명은 커녕 그냥 살아남기도 어렵다는 판정을 받은 가운데서도 초인적인 인내와 불굴의 의지로 극복한 뒤 세계최대 사이클대회 투어 드 프랑스에서 2연패 위업을 달성한 감동의 인간승리 주인공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시드니올림픽때 코마네치(76년 몬트리올)에 이어 24년만에 루마니아에 체조요정 타이틀을 안겨주며 신데렐라로 등장했던 라두칸이 도핑테스트에서 금지된 성분이 검출돼 금메달을 박탈당한 사건 또한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주던 스포츠팬들에게 허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밖에 메이저리그 강타자 대럴 스트로베리 등 많은 선수들이 약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파멸을 자초했다. 비단 개인적 불행으로 그치지 않는다. 스포츠인들의 약물탐닉은 그들을 롤모델로 여기는 청소년들의 ‘약물 친화’를 부추긴다는 게 통계로도 입증되는 등 사회적 불행으로 비화한다.
▲선수생명 앗아가는 과잉반칙-NHL 보스턴 브루인스의 왕고참 마티 맥솔리. 그는 지난 2월 밴쿠버 캐넉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스틱을 함부로 휘둘렀다가 1년동안 선수자격을 박탈당한 것은 물론 현지 검·경에 의해 형사범으로 정식 기소돼 유죄판결까지 받았다. 물론 맥솔리측에서는 경기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두고 형사처벌은 지나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몸싸움을 끝내고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상대선수의 얼굴을 스틱으로 짓이겨버린 그의 행동은 단순 반칙이 아니라 엄연한 범죄행위였다는 게 현장을 지켜본 대다수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선수들이 과잉반칙을 예사로 저지르고 그게 반칙이란 이름으로 적당히 용인되면 스포츠판은 ‘조폭들의 텃밭’처럼 변하리라는 경고는 한낱 과장만이 아니다. 상대팀 스타플레이어에게 형편없는 반칙왕을 붙여 너죽고 나죽자는 ‘가미가제식 육탄공세’를 펼치는 것도 약세팀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그러나 이 또한 스타없는 경기장을 찾을 관중이 없고 관중없는 스포츠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결과는 뻔히 들여다보인다.
아레나에서 과잉충돌이 갖는 더욱 큰 문제는 군중심리로 잔뜩 달아오른 관중들의 집단폭력을 부르기 쉽다는 점이다. 실제로 모잠비크·아르헨티나 등 여러나라에서 축구경기 도중 선수들간 편싸움에 자극받은 관중들이 흥분해 응원단 대 응원단, 관중 대 진압경찰이 뒤엉켜 총을 난사하는 등 유혈참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끊이지 않는 판정시비-지난해 3월 복싱의 원조 메카 뉴욕 메디슨 스퀘어가든.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통합챔피언 이밴더 홀리필드(미국)와 도전자 레녹스 루이스(영국)의 주먹대결이 끝나자 컴퓨터도 관중들도 TV시청자들도 한결같이 루이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딱 세명, 채점심판들이 내놓은 성적표는 무승부.
루이스는 지난해 가을 재대결에서 챔피언벨트를 되찾았지만 이를 계기로 FBI와 검·경의 대대적인 수사끝에 로버트 리 시니어 IBF 회장과 그의 아들 등 복싱계의 큰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게 됐다. 링의 생태계가 상당부분 주먹이 아닌 연줄이나 돈에 의해 좌우됐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심지어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재기해 철권을 휘두른 조지 포먼의 ‘할아버지 복서 신화’마저 돈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리란 증거들이 속속 포착돼 복싱팬들은 허탈감에 빠뜨렸다.
판정시비는 비단 링 안팎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올림픽에서건 크고작은 국내대회에서건 쫑목과 장소를 불문하고 ‘이상한 판정’ 때문에 스포츠 자체를 좀먹는 사태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심판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풍조도 가중돼 고의없는 오심마저 큰 의심을 사 보복압력을 받거나 현장에서 린치를 당하는 등 불행을 자초한 경우도 많았다.
▲이밖에 스페인이 시드니 장애인올림픽에 농구팀을 파견하면서 12명의 엔트리중 무려 10명을 장애인 판정도 받지 않은 멀쩡한 선수를 내보냈다가 들통나 금메달을 내놓아야 했던 사건, 브라질같은 축구최강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성인대표를 몰래 끼워넣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망신을 당한 사건 등도 승리 지상주의가 빚은 추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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