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 여성독자가 신문사로 전화를 해왔다. 코리안 아메리칸이 쓴 소설을 대학 졸업한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고 싶다며 책 추천을 부탁했다. “억지로라도 읽게 해야지 그냥 두면 한국적인 것과 너무 멀어질 것 같아서요”미국학교, 미국직장 다니면서 자녀들이 민족적 뿌리를 잃어버릴 것을 그는 염려했다.
그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인 2세작가들의 책이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권 한인작가의 책이 출판되기 시작한 것이 1930년대부터이고 이제 그 수가 50여권에 이르고 보면 선택의 여지가 아주 좁은 것도 아니다. 그보다도 선물의 정신적 가치를 너무 모르는 어린 세대들에게 뭔가 선물의 참 의미를 가르칠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물질만능, 물질과잉의 사회에서 자녀를 키우다 보면 맥 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 10대 중반의 자녀를 둔 어느 가정의 크리스마스 선물마련 과정이 그 한예이다. 우선 아들 케이스. “며칠전 샤핑몰에 갔는 데 아들이 컴퓨터용품 가게에 들어가더니 게임을 하나 빼드는 겁니다. 자기가 선물로 받고 싶은 게임인데 인터넷으로 체크해봤더니 그 게임이 너무 인기여서 다른 곳에서는 다 팔리고 그 가게에 딱 두개가 남았다는 거예요. 그러니 거기서도 다 팔리기 전에 당장 사두라는 것이지요. 그걸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럽더군요”
다음은 딸 케이스. “평소 좋아하던 브랜드 상점으로 남동생을 데리고 가더니 판매원에게 맡겨뒀던 바지의 값을 치르게 하는 겁니다. 그 전날 친구들과 그 가게에 가보니 자기 맘에 꼭드는 바지가 하나 남았길래 맡겨두었다는 거예요. 동생은 선물 고르는 수고 덜고 자기는 맘에 드는 것 갖게되니 얼마나 좋으냐는 겁니다. 선물이 맘에 안들면 서로 기분이 안좋다는 것이지요. 엄마에게서 받고 싶은 선물은 디자인이나 상표가 혼동되지 않도록 아예 백화점 캐털로그 사진을 냉장고 문에 붙여두었어요”
선물이란 내가 주고 싶은 것보다는 상대방이 받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아이들의 이런 발상이 아주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신세대답게 실용적이다.
“하지만 선물이 단순히 물건은 아니잖아요. 주는 사람의 사랑과 정성이 담겨서 받고 나면 가슴이 찡해오는 것이 선물이지요. 선물의 상징성이나 의미를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것같아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를 갖고 싶던 물건 챙기는 기회 정도로 여겨요” 이 주부는 직접 뜨개질한 장갑, 나뭇잎·꽃잎 말려만든 액자 같은 것이 선물이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 선물의 본질이던 시절이다.
가난의 좋은 점은 정신이 빛날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가난하다고 누구나 정신이 빛나는 것은 아니지만 맑고 빛나는 정신의 필요조건은 적은 소유이다. 평생 다 나눠주고 자신의 소유라곤 없던 테레사수녀는 가난을 ‘놀라운 선물’이라고 했다. 그 ‘놀라운 선물’은 평범한 선물에 아름다움을 얹는 힘이 있다. 남편은 줄 끊어진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빗을 사고 아내는 긴 머리를 잘라팔아 남편의 시계줄을 사는, 오헨리의 가난한 부부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선물에 담긴 마음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그런 특별한 선물이다.
선물이 일상적인 ‘물건’의 차원으로 격이 떨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겠다. ‘물건’은 지불한 돈만큼의 기쁨을 줄뿐이지만 ‘선물’은 감동을 준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 상대방이 좋아할 것을 기뻐하는 마음들이 물건 속에 스며들어 신비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한국의 모 신문사 도쿄특파원이 귀국하기 직전 일본인 이웃으로부터 특이한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비디오테이프였다. 틀어보니 특파원 가족이 살던 아파트 주변, 동네 산책로, 아이들이 다닌 학교가 구석구석 녹화되어 있었다. 일본에서의 생활을 두고두고 추억하라는 사려깊은 마음이 돈으로 살수 없는 선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건이 너무 흔한 세상이다. 작년에 받은 선물들중 박스채 벽장안에 쳐박혀있는 물건이 집집마다 몇개씩은 있을 것이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낭비다. 정신적 가치면에서 선물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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