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후배가 며칠전 집에서 아이들과 나눈 대화내용이다. 8살짜리 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크리스마스 선물은 정말 산타가 주는거예요? 우리반 아이는 그게 아니라던데… 엄마 아빠가 밤중에 나가서 사오는 거래요”
옆에 있던 6살짜리 동생이 형에게 핀잔을 주었다.
“바보, 그것도 몰라? 산타가 주는거지. 엄마 아빠가 밤중에 사온다는건 말도 안돼”
“하긴 그래.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꼭 지켜볼거야. 내 방 바로 아래가 차고이니까 엄마 아빠가 밤중에 몰래 나간다면 차고문 여는 소리가 들리겠지?”
‘산타’에 한치의 의심도 없는 6살과 ‘산타’에 논리를 비벼보기 시작하는 8살. 성장과정에 따라 대화 내용에 차이는 있더라도 어린이가 있는 가정의 12월 화제는 단연‘산타클로스’다. 빨간 복장, 흰수염의 풍채좋은 할아버지가 순록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와서 선물을 주고 갈것이란 기대로 아이들의 12월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우리는 3가지 대표적인 가상의 존재들과 만난다. 부활절 아침 아이들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가는 ‘부활절 토끼’(Easter Bunny), 아이들의 이가 빠지면 이빨을 가져가는 대신 돈을 놓고 가는 ‘이빨 요정’(Tooth Fairy), 그리고 한국에서부터 친숙한 산타 할아버지. 부모에 따라서 이들이 때맞춰 꼬박꼬박 찾아오는 가정이 있고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가정도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존재들인 만큼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두느냐는 전적으로 부모의 주관에 달린 것이다. 하지만 이들 가상의 존재들이 정답게 자리잡은 유년기와 그렇지 않은 유년기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크리스마스 단골 영화중 ‘34가의 기적’(Miracle on 34th Street)이란 영화가 있다. 뉴욕의 메이시 백화점이 판촉을 위해 산타역을 할 할아버지를 고용했는데 그가 스스로를 진짜 산타라고 주장하면서 말썽이 생겨‘산타가 실재하느냐’는 문제가 법정에까지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어린 나탈리 우드가 주인공 소녀역으로 나오는데 그의 엄마의 입장과 산타의 입장이 대비된다. 그 엄마의 주장은 아이들에게 산타와 같은 허황된 아이디어를 주입시키면 아이들이 혼란에 빠지고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서도 현실에 잘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산타는 아이들이 현실의 틀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수 있어야 행복하게 자란다는 입장이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키우며 지켜줘야 할 것중의 하나는 동심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동심이란 눈앞에 없는 강아지를 데리고도 몇시간씩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산타나 이스터 바니를 아이들이 실제인물 대하듯 받아들일 수있는 것은 마음의 구조가 어른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한 주부가 “아이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웃을수도 없더라”며 아들이 5살 때의 이야기를 했다. 그해 장난감 기차를 산타의 선물로 받은 아이는 너무 좋아서 매일 끼고 놀더니 어느날 진지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엄마, 꼬마요정들도 실수를 하나봐요. 기차 문에 흠이 있네요”
산타의 선물들은 북극에서 꼬마요정들이 만드는 것으로 동화책에 쓰여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티없이 맑은 상태를 유지하는 기간은 길지 않다. 7-8살이 되면 현실과 환상에 대한 구분이 생기면서 논리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면 산타를 믿고 싶은 마음, 믿어지지 않는 마음이 뒤섞이는 과도기가 얼마간 지속되는 것이 보통 어린이들의 성장과정이다.
산타와 같은 환상적 존재를 언제까지 지켜나가야 할지 부모로서 판단이 안설때가 있다. 심리전문가들의 의견은 아이에 맞추라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속에 환상이 살아있는 동안은 거기에 맞춰주는 것이 건강하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날 자연스럽게 산타의 실체를 알게되면 그 모두가 아이에게는 재미있는 유년기의 추억이 된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 바라보고 사는 삶은 재미가 없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마음에서 너무 일찍 환상을 몰아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환상의 힘을 빌어 크리스마스나 산타클로스로 상징되는 가치를 동심의 밭에 깊이 심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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