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텍사스와 뉴멕시코 접경지역에 샌드라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흙벽돌집 가난한 가정의 딸이었다. 환경으로만 본다면 소녀의 앞날은 누추한 시골 아낙네로 그칠 것이 뻔했다.
그런데 소녀의 엄마는 딸에 대해 꿈을 가지고 있었다. 딸을 대학에 보내 자신에게는 허용되지 않던 기회들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인근에 학교가 없어서 소녀의 엄마는 딸이 4살때부터 집에서 공부를 시켰다. 매일 엄마와 딸은 함께 책을 읽었다.
1952년 샌드라는 엄마의 소원대로 스텐포드법대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우수한 졸업성적으로 볼때 일류 법률회사 취직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5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는‘여성’과 ‘변호사’를 합쳐서 보지못했다. 샌드라는 구직신청하는데 마다 떨어졌고 이따금 법률담당 비서직 제의가 들어올 뿐이었다. 정부기관이 그나마 개방적이어서 캘리포니아의 한 카운티 검사로 그는 법조계에 첫발을 디뎠다.
그리고 29년후 애리조나 주항소법원 판사로 일하던 샌드라에게 어느날 법무장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스미스 장관 그는 바로 20여년전 LA의 한 법률회사 파트너로 있으면서 샌드라의 구직을 거절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전한 소식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방금 당신을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했습니다”
시골소녀 샌드라는 바로 샌드라 데이 오코너였다. 그가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방대법원에 들어갔을 때 시사주간지 타임(1981년 7월20일자)은 이렇게 썼다.
“191년동안 101명이 (연방)대법관으로 봉직했는데 모두 남자였다. 그 형제들에게 누이를 한사람 보냄으로써 레이건은 미국사회에서 여성동등을 향한 부끄럽게도 길고 불필요하게 꼬불꼬불했던 행진에 힘있는 박차를 가했다”
최고권위의 상징인 연방대법원에, 금기를 깨고 “부임해보니 그 건물엔 여자화장실도 없더라”고 오코너는 최근 어느 여학교에서 여성 법조인으로서 넘어야 했던 어려움들을 이야기했다. 불과 20년전의 일이다.
인도를 무대로한 영화를 보면 거기서는 코끼리를 가축으로 쓴다. 사람과는 비교도 안되게 몸집이 크고 힘센 코끼리들이 주인에게 고분고분한 것을 보면 신기하다. 단순히 코끼리가 착해서 말을 잘듣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비결은 태어나면서부터 코끼리를 말뚝에 매어두는 것이라고 한다. 아기 코끼리는 말뚝에 매인 줄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힘에 부쳐 결국 포기를 하고, 그런 다음에는 그 경험이 뇌리에 남아 훨씬 큰 다음에도 감히 말뚝에 도전할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20세기는 여성들이 불가항력으로만 보였던 ‘말뚝’에 도전한 세기였다.
‘말뚝’을 중심으로 허용되었던 울타리를 넘어 한발짝 한발짝 행동반경을 넓혀온 것이 20세기 여성사이다. 울타리 너머, 여자화장실도 필요없던 남성들의 독무대에 발을 내디디면서 여성들은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좌절과 실패들을 경험했다. 한국의 비극적 페미니스트 나혜석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미끄러져 머리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걸음도 밟지 못하고 나자빠지더라도, 난 이 봉건의 두터운 벽에 맞서보려고 합니다”
벽은 물론 고정관념과 선입관, 그로 인한 편견들이다.
지난해 USA투데이는 20세기 여성의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했다. 1위는 투표권, 2위는 산아제한, 3위는 교육으로 나타났다. 임신으로부터의 자유와 교육이 여성에게 벽에 도전할 용기를 주었다면, 이 사회의 높은 벽들을 제도적으로 낮추는 도구가 된것은 투표권이다.
투표권 역시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고야 얻어낼수 있었다.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70여년의 투쟁이 필요했다. “여성들이 왜 투표권이 필요한가. 기껏해야 아버지나 남편 따라 투표할텐데…”“여성이 투표같은거 하면 아름다움과 순수성을 잃어버린다”는 선입관을 무너트리느라 20세기 초 수많은 여성들이 시위를 하고, 옥에 갇혔다.
민주주의는 표로 말하는 사회이고 여성들은‘평등’에 대해 아직도 할말이 많다. 투표함에 넣어진 한표 한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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