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소나타(피아노 소나타 21번)에 열광한 적이 있었다. 지금 들어보면 예전의 감동이 전해지지 않는데 그 때는 왜 그렇게 그 곡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이 곡은 연주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고 또 잘 연주된 곡이라고 해도 이해하기 쉬운 곡은 아니다. 아마도 귀로 듣기 보다는 마음으로 들어야 어울리는 곡이라고나할까. 많은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명곡들을 들은 뒤 닳고닳은 귀로 다시듣는 이곡은 정말 왜 좋은지 이해할 수 없는 곡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사실 불후의 명곡이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니 발트슈타인도 원래는 그렇게 눈부신 명곡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순수했던 젊은 시절의 열정이 가해져 곡을 아름답게 받아들였을 뿐 원래 이렇다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발트슈타인이 명곡이 아니면 어떤 곡이 명곡이냐고 묻는다면 이 또한 대답이 궁해 질 수 밖에 없기는 하다. 결론은 제 아무리 위대한 곡도 듣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원곡의 위대성 삼위일체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결코 명곡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트슈타인이 변한게 아니라 나의 마음 상태가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인데 만약 우리에게 리셋 버튼이라는 것이 있어서 마음을 재충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들어본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클래식이라는 것이 워낙 광범위하여 좋아하던 곡을 다시 듣게 되기까지 몇 십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베토벤의 발트슈타인은 특히 오래된 것 같다.
요즘 몇주째 두문 불출이다. 몇년전 부터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하기에 발부위에만 신경쓰다보니 기초 체력을 등한시, 이번엔 무릎이 탈이 났다. 통증부위가 꽤 심해져서 한동안 누워있다보니 원시인처럼 무기력해지고 하루종일 멍때리는 시간만 늘어간다. 그럼에도 육체가 고통스러우니 정신은 맑아진다. 이
기회에 평소에 안 듣던 음악, 좋아하지만 다소 부담으로 다가왔던 음악을 들어봐야지 하면서 골라 들은 음악이 바로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소나타였다.
사실 이 작품은 우연히 골라들었다기 보다는 정신적인 리셋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일부러 선택해서 들은 작품이라고 해야 옳겠다. 내면적인 비애와 눈부신 열정으로 가득한 작품…
발트슈타인은 열정 소나타(23번)나 해머클러비어(29번) 처럼 마구 때려부수는 듯한 그런 격정적인 곡은 아니다. 첫 소절부터 전력으로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를 연상시키는 이 곡은 일반적인 아름다움이나 서정적인 피아노 곡들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어딘가 울분에 가득 차 있음을 단박에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그러나 이를 토해내지 않고 인내해 가다가 마지막 3악장에 눈부신 햇살처럼 폭발, 비애와 환희를 전하는 것이 이곡의 매력이면서 동시에 마음에 울리는 감동이다. 화려하다기 보다는 기름기가 쫙 빠진 담백함, 자아혁명적 요소가 짙으며 거추장스러운 기교보다는 시적인 분위기로 이끌려는 베토벤의 숭고한 의지가 느껴져 온다. 해설을 덧붙이면 ‘발트슈타인’이라는 별칭은 이 작품이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된 것에서 유래한다. 청력 저하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베토벤은 1802년에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쓰기에 이른다. 이후 죽음 대신 명작을 남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된 베토벤은 1803년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소나타’, 첼로 소나타 3번, 교향곡 3번 ‘영웅’ 등과 함께 발트슈타인 소나타를 작곡하기에 이른다. 영웅교향곡과 마찬가지로 구성이 장대하고 서정성이 풍부하여 혹자는 이 곡을 ‘피아노를 위한 영웅 교향곡’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음악은 듣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려오기도 하고 또 전혀 다르게 연주되기도 한다. 혹자는 이곡을 (베토벤의 곡치고는) 매우 화려한 곡, 장중한 곡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떨까… 육체의 아픔 속에 들려오는 베토벤의 작품… 마치 어제인듯…. 오랫만에 첫 눈처럼 마음이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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