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병원에 가고 의사를 만나고 약방에 가는 일이 주된 업무가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살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 이 시대는 노년이 지배한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노인이 차고 넘친다. 세대별로 골고루 분포되어야 하는데, 예컨대 시내에 나가보면 도처에 밟히는 게 노인들이다. 젊은이들이 밀고 올라와야 그림이 보기 좋겠으나 상대적으로 그들의 인구가 적으니 밀고 올라올 여력이나 자원이 없다.
식상한 100세 시대의 구호 속에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 유치원은 사라지고 노인을 위한 daycare만 성시를 이루고 있다. 하여 노인들의 이구동성(異口同聲)은 미국 정부가 효자라는 것이다.
천덕꾸러기 노인에게 미국이 천국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미국 조야에 아시안을 혐오하는 풍조가 늘어난다지만 마냥 분개할 수만은 없다. 그런 분위기에 대항하려면 일치단결하여 투표라도 열심히 해서 한국노인들이 생각이란 건 하고 산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뉴욕하고도 퀸즈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노인 시설에 가보면 거의가 중국인과 한인이 주류다. 특히 병원에 가보면 정말 노인환자가 많다. 한가한 과목이 없다.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치과, 안과, 심장병원에 발 병원에 통증병원까지 매일 매시 만실이다.
그런데 그 환자의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어느 아들이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들여다봐주고 어느 딸이 땀 흘려 지압을 해주고 온 몸을 주물러 주겠는가.
그러나 병원이 그렇게 붐비는 까닭은 의사가 불러대는 빈도수가 부쩍 많아졌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체크를 한다고 석 달 후, 육 개월 후에 또 오라고 한다. 불과 요 몇 년 전만해도 병원과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는데 이젠 병원 약속으로 달력이 새까맣다. 그래도 오라는데 안가면 찝찝해서 가게 되고 이런 현상이 병원이 노인들로 붐비는 요인 중 하나다. 하여 나는 한 두 번씩은 빠진다. 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니 반 의사는 되어 다소 느슨하게 스케줄을 잡아도 큰 탈은 없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에게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 이 늙은이가 말하고 싶은 중요한 것은 사실 이런 넋두리보다는 의사를 방문했을 때 일어나는 아주 작은 순간들에 대한 느낌의 일단을 피력하고 싶어서다. 의사는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를 대하고 같은 말을 계속 하려니 짜증도 날 일이지만 환자는 그 짜증난 의사를 만나러 왔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의사는 여러 환자의 얼굴을 보겠지만, 환자는 오직 의사 한 사람의 얼굴과 그 입만 본다는 사실이다. 희한한 것은 의사와 만나는 그 짧은 시간에 의사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있고 여유 있이 환자의 상황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면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보람 있는 시간인 동시에 그날 종일 기분이 좋고 다음 방문을 기다리게 된다.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언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얼마 전 어떤 분을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양미간을 찌푸리고 의사가 판사처럼 툭툭 던지며 면담을 끝내, 만정이 떨어졌다. 아닌 말로 “내가 봉입니까?” 항변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한 달 후 결과를 알기 위해 꼴도 보기 싫은 얼굴을 보러 갔더니 이게 웬일인가. 보자마자 만면에 웃음을 띠며 설명도 맘에 들게 잘 해줬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바로 이겁니다. 이렇게 하세요.” 아마 먼저 날은 부부싸움을 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했지만 의사의 한 순간 태도가 우울한 환자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동시에 병도 호전시킨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환자를 초장부터 힘들게 하는 사람은 의사만이 아니다. 문 열고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직원들의 태도가 더 불쾌할 때가 있다. 병원을 찾는 노인의 모양이 늙었다고 속까지 쭈그렁방탱이가 아니다.
주급에 비해 일을 많이 해서 입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부모를 생각해서라도 돈 안 드는 친절을 뿌려주기 바란다. 물론 진상을 떠는 노인도 생각보다 많다. 몸만 늙은 게 아니라 마음까지 늙어버린 노인도 있긴 있다.
나에게 맞는 환자만 오는 게 아니고 내 마음에 드는 의사만 있는 게 아닌데, 서로가 화만 내면 어찌할 건가. 늙어갈수록 둔해지는 몸에 비례해 성질은 칼끝이니 이 모순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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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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