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모두 헤어지게 되어 있다. 떠나는 사람이 살아서 헤어지기도 하고 죽어서 헤어지기도 한다. 살아서 헤어지던 죽어서 헤어지던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소망하고 헤어진다. 죽어서 헤어지면 천국에서 만 날 소망을, 살아서 헤어지면 지상에서 언제가 다시 만날 소망을 안고 살아간다. 떠나는 사람이 죽어서 헤어질 때는 보내는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지만 이를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떠나는 사람이 살아서 헤어질 때는 보내는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이 마음을 돌이키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오래하다가 어떠한 이유에든지 헤어질 경우에 더욱 그렇다. 이는 떠나는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정이 많은 한국 교인들은 더 그런 것 같다.
존 포셋(John Fawcett, 1739-1817) 목사님은 1765년 26세 젊은 나이에 영국서 요크셔(West Yorkshire, England)에 위치한 웨인스게이트 침례교회(Wainsgate Baptist Church)에서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교인 수는 1백명이 채 되지 않은 농촌교회였다. 목회 7년 되는 해인 1772년 런던에 있는 대형 교회인 카터스 레인 침례교회(Carter's Lane Baptist Church)로 부터 담임목사 청빙을 받았다. 당시 포셋 목사님은 대가족임에도 당시 1년에 25파운드 연봉을 받아 가난한 생활을 해 왔다. 포셋 목사님은 이 청빙안을 놓고 여러 날 기도했다. 그리고 청빙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시무하고 있던 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1772년 한 여름 주일에 포셋 목사님은 마지막 설교를 했다. 그리고 이삿짐을 마차에 실었다. 마차는 서서히 교회문을 나섰다. 교회 입구 양편에 교인들이 서서 떠나는 목사님 가족에게 손을 흔들고 눈물을 흘리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사모님이 목사님에게 “여보, 마차를 돌리시면 어떨까요?”라고 말했을 때 목사님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라고 말하고 마차를 교회쪽으로 돌렸다. 교회안에 모인 교인들과 목사님 내외는 기쁨의 눈물을 흐리며 기도를 드렸다. 이 장면을 포셋 목사님은 찬송시를 지어 표현했다. 믿는 사람을 즐겨 부르는 찬송가 221장(통일 525장)‘주 믿는 형제들'(Blessed be the Tie That Binds)이 바로 그 찬송가다. 포셋 목사님은 그 후 1793년 영국 브리스톨(Bristol)에 있는 침례교대학(Baptist Academy at Bristol)으로 부터 총장직 청빙을 받았으나 수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45년 동안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이 교회에서 그가 사랑하고 정든 교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1817년 78세를 일기로 천국에 갔다.
지난 16일 주일 예배 후 모든 은퇴 시무 휴무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모인 가운데서 메릴랜드 벧엘교회 담임 백신종목사님은 이 교회 목회 10년이 되는 금년 7월 말로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여러 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사직을 결정했다고 하면서 떠나야 되는 여러 이유들을 설명했다. 그 이유들은 누가 들어도 합당한 이유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목사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성도들은 너무나 뜻밖의 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백 목사님이 6대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 교인들에게 은퇴할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던 약속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 목사님은 지난 근 10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그 약속이 꼭 지켜지리라고 믿을 수 있게 목회를 성공적으로 이행해 왔다. 백목사님 취임 이후 성인 주일 예배 방식이 4부로 각 연령층에 알맞게 개편, 교구제도 역시 연령층에 따라 개편하여 목회진과 사랑방 팀이 한몸이 되어 교인들을 잘 섬기고 있다. 무엇보다도 모든 교인들이 삶터에서 선교적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여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데 주력해 왔다. 특히 예배공간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있던 차에 4만 스퀘어 피트가 넘는 프로미스센터를 건립, 영어권 예배와 성경공부, 그리고 여러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이 공간 사용을 벧엘교회에 한하지 않고 지역 사회를 위해 개방하고 인도인 교회의 예배처소를 마련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의 선교사역을 이룬것이다. 소망유치원을 세워 어린 세대가 굳건한 믿음의 바탕을 갖게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고엘신학교를 세워 교포교회 알맞는 영적인 리더십을 키울수 있는 교육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백 목사님은 전임 목사 시무기간에 일어났던 교회적인 어려움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교인들이 떠난 어려움을 잘 극복하여 회복의 단계로 이끌어 왔다. 백 목사님께서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으며 하늘나라에서의 상이 크리라고 믿는다.
1979년에 창립된 벧엘교회는 지난 44년 동안 담임목사 부재가 14년, 그 가운데 열한분의 임시당회장이 목회를 감당한 기간이 7년, 초대 김상복 목사님이 이후 6년이상 시무로 안식년을 가진 6명의 담임목사 가운데 4대 이순근 목사와 6대 백신종 목사뿐이다. 담임목사가 바뀔 때마다 교회적으로 얼마간의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벧엘 교회 성도들은 이 갈등을 영적으로 성숙하게 잘 극복해 왔다. 그리고 벧엘교회는 담임목사 부재시에도 하나님께서는 벧엘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역들을 잘 이행해 왔다. 후임 목사님이 언제 오실런지 모르지만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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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욱 전 한동대 교수 사회학박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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