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백화점 중 하나였던 그랜드백화점 일산점이 28일 문을 닫는다고 한다. 경기 일산 지역에 다른 쇼핑몰과 아웃렛들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줄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구조적 시각이 담긴 이색적인 분석도 있다. 인구 초고령화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신도시'인데 인구 초고령화라니, 상당히 어색한 조합 아닌가.
일산 신도시 있는 고양시 고령인구 비율
20년 전 6%서 올해 18%로 증가 예측
농촌 넘어 도시도 늙어간다는‘신호탄’놀랍게도 경기도에서 노인 인구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 바로 일산 신도시가 있는 고양시다. 30여년 전 이뤄진 수도권 1기 신도시 개발 때 비슷한 연령층이 한꺼번에 유입됐기 때문이다. 당시엔 젊은 세대였지만 이후 고령화가 진행되며 소비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상권이 침체되며 매출이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까지 내몰린 것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5년 5.6% 수준이었던 고양시 고령인구 비율은 2025년에 17.6% 정도가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문제는 이 추세가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10년 안에 고양시 인구 4분의 1이 고령인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도 빠르게 늙어간다는 신호탄이다.
고령화로‘역삼각형 인구구조’가 되면
소비가 줄면서 마이너스 성장률 장기화
2070년 국가 부채, GDP의 200% 전망
■불과 20년 만에... 가장 젊은 나라에서 가장 늙은 나라로국제연합(UN)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2017년에 이미 고령 사회에 들어섰다. 그리고 작년 12월 23일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으면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의 고령화 정도에 대한 체감 정도는 매우 낮다.
수십 년 전부터 인구 고령화 얘기가 나왔지만, 여전히 고령화 사회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고, 특별히 바뀌는 건 없는 것 같다. 월급도 오르는 것 같고, 뉴스에는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이야기뿐이다. 시금치나 과일 가격이 많이 올라서 힘들긴 하지만, 몇 년 더 참으면 더 나아질 것 같다. 대도시 상권도 공실이 나지만 임대료만 좀 내려가면 해결될 것 같다.
사실 우리가 고령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젊은 층의 인구 규모가 적지 않은 데다, 노인 인구가 아직까지는 지방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젊은 나라에 속한다.
일본과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이 나라들에 해외 여행을 갔을 때 ‘늙은 나라'라는 느낌이 선뜻 오지 않는다. 여행지인 대도시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고 농촌 지역에 노인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구가 늙어간다는 문제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럼에도 학자들은 특히 경제학자들에게 고령화는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무엇보다 멈출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 때문이다. 2017년부터 15~20년 사이에 한국은 OECD에서 가장 젊었던 국가에서 가장 늙은 국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출산율이 2024년에 좀 늘었다고는 하나 인구 구조의 변화를 돌이킬 수 있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인구 역피라미드, 즉 노령인구에서 나이가 줄어들면 들수록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역삼각형의 인구구조를 처음 맞이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피트니스 경연대회에서는 역삼각형 체형은 높은 점수를 받지만, 경제에 있어 역삼각형 인구구조는 최하점 중에 최하점이 아닐 수 없다.
■고령화가 몰고 올 두 개의 재앙... 마이너스성장+국가부채 200%경제학자들에게 고령화가 재앙과 같은 이유는 장기성장률 저하와 국가 부채 폭증 때문이다. 초음속 비행기를 타고 가듯 이 경로로 경제가 매우 빠르게 뜀박질해 나가고 있다. 물론 이것이 기우라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실제 맬서스와 같은 고전 경제학의 거두는 그의 저작 '인구론'에서 인류의 번영을 위해 인구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구 증가만큼 식량 조달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의 번영을 위해 인구는 조절이 필요하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인구가 늘어서 오히려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과 지금은 상황이 너무 다르다. 당시는 농경사회였고, 지금은 복지사회다. 복지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기반은 복지 지출이다. 복지 지출은 노령층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노령층이 될수록 소득이 줄어드는 대신 의료비와 같은 필수적인 복지 지출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당장 작년만 봐도 65세 인구가 건강보험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4%다.
경제성장은 고령화 속도를 따라갈수 없을 것으로 예측되며, 세금 걷는 속도보다 복지비 지출이 훨씬 많아진다.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2070년 국가 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00%가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놀랍게도 그리스가 부도 났을 때 GDP 대비 부채비율이 167% 정도였다.
경제 규모를 빨리 키워 세수를 늘리는 방법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세금을 더 걷으면 나라 빚이 늘어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 고령화는 경제 성장에도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변수다. 인구가 고령화되면 소비가 줄어든다. 그랜드백화점 폐업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연금소득이 많지 않은데 수명은 늘어나니, 돈을 쓰려고 해도 쓰기가 어렵다. 내수가 늘어나려고 해야 늘어날 수가 없고, 물건을 사지 않으니 고용이 줄어들고, 고용이 줄어들면 투자가 준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장은 남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204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추세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하고, 이 성장률 역시 지속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과 국가부채 200%는 ‘제2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치다. 둘 중 하나만 현실화돼도 경제학자들은 소름이 돋을 텐데 두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다가오고 있다. 더욱이 인구 문제는 단시간에 바꿀 수가 없고, 미래의 진행 경로도 어느 정도 명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변수다. 우리 자식들 세대에 이렇게 암울한 상황이 실현된다니, 미래를 예측하기 좋아하는 경제학자들의 근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고령화 경제 후폭풍, 세대 갈등 야기
연금·건강보험 등 인구 관점으로 보고
제도 설계·정책 운영 빠르게 수정해야
■인구 관점으로 모든 제도 재설계해야결국 문제는 고령화 속도다. 초고령사회에 돌입한 이 시점에는 이제 ‘고령화 속도'를 인식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매우 빠르게 노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아직은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안일하게 생각했다. 미래를 예견하고 준비했어야 할 정치인이나 정부 역시 오늘의 문제만 보고 정책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현재의 유권자가 아닌 '미래의 유권자'들에게만 한정되기 때문에 그렇다.
더욱이 이러한 인구 초고령화에 따른 경제적 후폭풍은 세대 간 정치갈등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 누군가 정부 지출의 혜택을 보게 되고, 이에 재정 여력이 줄어들게 되면 우리의 후손들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낭비를 통해 즐길 수 있는 현 세대에는 좋으나 그 빚이 아랫세대로 고스란히 가는 구조다. 지금까지는 경제 성장을 통해 빚을 현 세대들이 갚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제도 하나하나마다 세대 간 갈등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제 모든 제도의 설계는 마치 초음속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처럼 빠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 인구 문제 관점으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 특정 제도가 야기할 다음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축소시키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단적으로 연금, 건강보험 등도 새롭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당장의 연금 지불 금액을 늘리도록 제도를 만들면 우리에게는 좋으나 자녀 세대에는 국민연금 폭탄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경제건강의 적신호 중에 적신호인 인구 역피라미드를 1등으로 맞이할 것이라는, 너무나 외면하고 싶은 진단을 분명히 인지하고 제도 설계와 정책 운용을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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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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