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지 언론 “눈감고 들으면 트럼프” “또다른 미국인 외계정복 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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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석의 봉준호 감독(오른쪽)과 로버트 패틴슨 [촬영 김계연/연합뉴스 자료사진]
"잘 죽고 내일 만나."
임무 중 얼음 골짜기에 떨어져 목숨을 잃기 직전인 미키(로버트 패틴슨)에게 친구 티모(스티븐 연)는 이렇게 말한다.
티모에게는 미키의 생사보다 무기를 온전히 간수하는 게 더 중요하다. 미키 역시 추위에 떨며 온몸이 어느니 빨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또 재생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 신작 '미키17'이 15일 저녁(현지시간) 제75회 베를린영화제에서 공개됐다.
주상영관인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2천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6년 전 '기생충'의 지하실에서 상상 속 우주 공간으로 무대를 옮겨 137분간 펼쳐지는 활극에 숨죽였다가 영화가 끝나자 모두 일어서 손뼉을 쳤다.
'미키17'은 우주 식민지 원정에 자원했다가 복제인간이 된 미키의 이야기다. 마카롱 사업 실패로 사채업자에 시달리던 미키와 티모는 지구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원정대에 합류한다.
미키에게 맡겨진 임무는 익스펜더블. 신체정보는 물론 기억까지 이미 스캔돼 있다. 방사성 물질 노출 같은 위험한 임무에 투입됐다가 죽으면 생체 프린팅으로 되살아난다. 죽는 게 직업이고 수명은 짧으면 10분이다.
미키의 식민지 원정은 우주선에서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애키)를 만나면서 잘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미키17이 빙벽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한 기술팀이 새 미키를 만들면서 일이 꼬인다. 우주선으로 돌아간 미키17과 새로 복제된 미키18의 공존, 즉 멀티플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익스펜더블은 되지만 멀티플은 안된다는 원칙은 복제인간을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두고 지구인들이 논의한 결과였다. 멀티플은 자연의 섭리를 파괴한다는 게 원정대를 이끄는 마샬(마크 러팔로)의 논리였다. 그는 지구 바깥에서, 익스펜더블만 운용하자고 제안하고 우주 원정대를 꾸렸다.
독재자 마샬에게 익스펜더블은 싸구려 소모품이자 인류의 우주 지배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반면 미키는 열 번 넘게 죽어봤지만 여전히 죽음이 무섭다.
나샤가 사랑하는 사람은 미키17인가, 미키18인가. 우주 정복을 꿈꾸는 인간이 그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던 생명체들을 쫓아내고 행성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나. 마샬의 폭정에 저항하기 시작한 요원들 사이에서는 급기야 이런 말이 나온다. "누구한테 외계인이래, 우리가 외계인인데."
영화의 원작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이다.
봉 감독은 상영이 끝난 뒤 "인간 프린팅이라는 개념에 매료됐다. 그 자체로 이미 비인간적이고 슬픔과 코미디가 함께 있는데 그 속에서 어떤 드라마를 발전시켜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각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무대에 오른 로버트 패틴슨을 가리키면서 "이 사람을 계속 출력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출력되기 좋은 느낌이랄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봉 감독의 작품을 거의 다 봤다는 대학생 요제피네는 "자칫 너무 심각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유머로 풀어내는 게 봉준호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이번에는 예상과 달리 귀여운 외계 생명체가 여기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멕시코 매체 바가분다 레비스타의 기자 에두아르도 아라곤은 "재밌고 대중적인 영화지만 '기생충'만큼 파괴적인 어떤 요소가 보이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평단은 이른바 '봉준호 리얼리즘'을 읽어내려 애썼다.
특히 봉 감독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마크 러팔로와 토니 콜렛이 연기한 독재자 마샬 부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를 암시한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독일 매체 RND는 마크 러팔로의 연기에 대해 "눈을 감고 들으면 트럼프와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인간을 경멸하는 듯한 목소리"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외계를 정복해 탈출한다는 아이디어는 또 다른 악명 높은 미국인의 취미를 연상시킨다. 거듭 이상한 우연"이라며 화성 탐사와 이주를 꿈꾸는 일론 머스크를 끌어들였다.
주간지 차이트는 "봉준호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상류층과 하류층의 투쟁에 충실했다. 마크 러팔로는 현직 미국 대통령의 억양과 소심한 과대망상을 연기했다"며 "베를린영화제에서 올해 가장 주목받는 SF 영화가 상영되고 있지만 영화 속 디스토피아가 우리보다 조금이라도 나았던 때가 있었다"고 논평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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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저분하게 생긴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