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소음의 와중에 스산한 침묵이 퍼지고 있다. MAGA 운동으로 새로운 검열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기업, 과학자와 트럼프 비판론자들이 갑자기 입을 닫고 있다.
취임 첫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 복원 및 연방검열 종료’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얼핏 보면 제 1차 수정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진부한 립서비스처럼 들린다. 현실적으로 그의 행정명령은 정부와 민간분야에서 잘못된 생각을 뿌리뽑겠다는 오웰리언식 노력의 시작을 의미한다.
가장 먼저 ‘입틀막’을 당한 것은 과학자들이었다. 독감이 유행하고 인수공통감영병 발병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주 정부 보건기관과 일반 대중의 소통을 전면 금지했다. 1952년 이후 처음으로 연방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업데이트된 질병발생률 및 사망률에 관한 주간 자료를 공표하지 않았다.
독립적인 보건정책 연구기관인 KFF에 따르면 발표가 금지된 CDC의 자료는 조류독감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 연구결과를 담을 예정이었다. 이러한 조치는 과학적 자료를 억누르던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코비드-19 접근법을 떠올리게 한다. (2020년 6월, 트럼프는 ‘지금 바로 검사를 중단한다면 신규 코비드 확진 케이스는 설사 나온다 해도 극소수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가 입수한 메모에 의하면 에너지부 역시 장관 대행의 명시적 사전승인을 받지 않은 일체의 대중소통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일부 기관들은 정부내에서 자료 공유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이외의 다른 정부 기관들은 이전에 승인된 자료에 접근하거나 이를 외부 연구기관과 교환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예를 들어 노스캐롤라이나대의 한 법학자는 일정이 잡혔던 연방 변호사들과의 토론회가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독일 변호사들이 나치국가 창설에 공모했다는 토론회 주제가 허구라는 극우인사들의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연구 보조금 취소와 공적 개입 금지 등의 조치는 정부 구성원들의 이른바 ‘각성상태’를 지워버리려는 노력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공무원들에게는 다양성과 형평성 및 포용(DEI)를 은밀히 지지하는 동료들을 고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지난 수요일에 공표된 행정명령은 ‘무의식적 편견’과 같은 개념을 가르치는 공립학교의 경우 연방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공공기관들은 정부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태도를 전환하고 있다. 미시간주립대학은 매년 열렸던 음력 설맞이 행사를 갑자기 취소했다. 트럼프의 DEI 행정명령에 위배될 소지가 있는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통령과 그의 우군들은 민간기업들에게 정치적으로 부정확한 가치를 인정하지 말라는 압력을 가했다. 예들 들어 19개 공화당 강세주의 법무장관들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근거로 민간 소매업체인 코스트코을 향해 다양성 실행 약속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이와는 별도로 한 대형 연방 계약업체는 피고용인의 이메일 서명에 성별 인칭대명사를 포함시키지 말 것을 촉구했다. 자신이 이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 제보자는 회사측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익명을 요구했다.
트럼프의 다른 우군들은 한때 진보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던 표현과 사상 검열에 앞다투어 뛰어든다. 예컨대 댄 크렌쇼 하원의원(공화-텍사스)은 애플 맵스에 멕시코만(Gulf of Mexico)을 트럼프가 원하는 ‘걸프 오브 아메리카’(Gulf of America)로 변경하지 않은채 그대로 표기했다는 이유로 애플의 최고경영자에게 협박에 가까운 압력을 가했다. (구글 맵스는 트럼프의 요구에 일찌감치 굴복했다.)
최고위 언어경찰을 자처하는 트럼프는 자신이 바꿔놓은 지명을 그대로 간직하겠다고 다짐한다. 정치입문 전에도 트럼프는 헌법의 보호를 받는 표현의 자유에 맞서 억지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2016년 ‘명예훼손법을 개방하겠다’던 그의 약속을 기억하라. 출시예정인 데이비드 엔리치의 책 ‘진실 살인’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듯 트럼프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연방대법원의 기념비적 결정인 뉴욕타임스 vs. 설리번 판결을 뒤집으려 노력하는 광범위한 보수연합체의 일원이다.
그러나 대통령인 트럼프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담론을 냉각시키기 위해 새로운 법이나 법원의 결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론과 첨단기술업계는 이미 선제적으로 그들의 패배를 인정했다
트럼프 당선후 1개월 뒤, ABC뉴스는 그의 성학대 관련 비방소송의 법정밖 타결을 위해 1,500만 달러의 합의금외에 소송경비까지 지급했다. 이번주 메타도 트럼프의 페이스북 계좌를 정지시킨 것을 문제삼아 그가 제기한 소송을 2,200만 달러의 합의금 지급을 통해 마무리짓기로 결정했다. 파라마운트 글로벌 역시 ‘60 미니츠’ 인터뷰와 관련한 소송을 법정밖에서 타결하기 위해 트럼프측과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해당 방송사가 당시 그의 라이벌이었던 카멀라 해리스가 유리하게 보이도록 인터뷰의 끝부분을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초대형 타협은 효율성이 높다. 우선 양측 모두에게 돈이 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기업합병을 진행중인 파라마운트는 정부의 수월한 ‘승인’을 기대할 수 있고 바이든은 이 사건을 자신을 비난하는 세력을 겨냥한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밀워키 지방 뉴스방송국의 기상캐스터는 최근 일론 머스크가 나치식 거수경례를 했다는 거짓정보를 퍼뜨린 이유로 해고됐다.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머스크 역시 법적 조치를 통해 자신의 비판론자들의 입에 정기적으로 재갈을 물리려 시도렸다. 이런 협박이 이전에 얼마나 위력이 있었는지 몰라도 머스크의 막대한 자금력에 정부정책을 요리할 수 있는 능력까지 추가된 지금은 그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만큼 파급력이 강화됐다.
그렇다고 너무 염려할 필요없다: 트럼프는 머스크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자신을 언론자유의 수호자라 생각한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경제포럼에서 ‘우리는 미국의 언론자유를 구했고 또 하나의 역사적 행정명령으로 이를 튼튼하게 지켰다’고 떠벌렸다. 이 정도면 언론자유의 수호자이기는커녕 오히려 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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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람펠 /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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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이 건 언론의 검열이 아니라 늘 편파적으로 악의를 품고 독자들을 호도하는 기레기들에게 철퇴를 가하는 아주 바람직한 현상. 트럼프에게 거액의 배상을 하는 것은 자기들 스스로가 잘못을 시인하는 것.지들이ㅡ떳떳하면 왜 배상했겠는가? 곧 CBS도 거액을 토해낼 운명이니 통쾌
돈 권력에 이길자 나오라고....오~~오오 하늘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