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필자는 도널드 트럼프 2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지난 1기에 비해 다양해졌고 불안감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다수의 참석자들이 여전히 우려섞인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회의에 참석한 다수의 국가 지도자들은 트럼프와의 거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짖는만큼 심하게 물지는 않는다”는 분석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러나 필자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하나같이 트럼프 세계관의 한 가지 핵심적인 측면, 즉 미국이 다른 국가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봉’이라는 인식에 의아해 했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무부장관으로 낙점된 마르코 루비오는 그의 인준 청문회에서 미국은 최근 수 십년동안 지나치리만큼 ‘세계 질서’를 국익보다 우선시했다며 트럼프의 앵무새 노릇을 했다.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은 이렇게 그려진 미국의 모습을 낮설어한다. 무언가 거북하고 물구나무선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제여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정기적으로 무력을 동원해 국익을 챙긴 전력을 갖고 있다. 유엔안보리 회원국들의 반대와 수백만명이 참여한 세계도처의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다. 또한 가장 가까운 우방국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란,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일방적 제재를 가했다. 2009년 이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호무역조치를 남발한 나라로 꼽힌다. 이 기간에 미국은 1만1,000건의 보호조치를 취해 1위를 차지했고 중국은 8,000건 미만으로 2위에 올랐다.
나머지 국가들은 세계의 수퍼파워임을 자처하는 미국이 국익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 자국에 특별히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는 등 초강대국의 지위에 걸맞게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신원공개를 거부한 한 외국 지도자는 팔자에게 “우리는 다른 국가들의 요구보다 훨씬많은 미국의 요청과 희망사항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국가적 특권과 행동의 자유를 늘 보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더 나은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아낌없이 노력해왔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으로 국제무대에 완전히 진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강대국 사이의 분쟁, 민족주의와 보호주의는 국제사회의 낮익은 민낯이었다. 글로벌 협력은 극히 드물었고 부국이 빈곤국에 재정지원을 제공하는 사례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1945년 이후 세계는 공개시장을 구축했고 수십억 인구가 빈곤과 질병에서 벗어났다. 국제기구들이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면서 강대국 사이의 전쟁은 역사책 속으로 사라졌다.
미국은 이런 거대한 변화의 핵심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패전국에게 보상금을 청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복구 자금을 제공했다. 미국의 경제문호를 개방해 전쟁보다 평화 속에서 모두가 더 많은 이익을 누리고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려 시도했다. 이처럼 눈부신 미국의 비전은 성공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누린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80년 동안 미국은 경제, 첨단기술, 군사력과 정치적 파워를 한 손에 움켜쥔 글로벌 지도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사실 최근 수십년 동안 미국과 (독일과 일본 등) 기타 다른 부유국 사이의 간극은 실질적으로 확대됐다. 세계 인구의 약 4%를 지닌 미국은 오늘날 전 세계 GDP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40년 전인 도널드 레이건 시대와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미래의 여러 신기술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배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정도는 트럼프의 성에 차지 않는다. 그는 외국에서 더 많은 것을 짜내려 한다. 지난 2017년 파나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파나마 정부가 미국 해군에 지나치게 많은 운하 통행료를 부과한다고 불평했다. 당시 파나마가 운하 사용료로 미 해군에 부과한 액수는 연 100만 달러였다. 그해 국방 예산의 0.0002%에도 못미치는 액수다. 그러나 트럼프는 빈곤한 중앙아메리카 국가를 쥐고 흔들어 할인혜택을 받길 원했다. 이처럼 트럼프는 관계보다 거래를 우선시한다.
대부분의 우방국, 동맹국과 파트너를 위협해 트럼프가 이런 식의 할인혜택을 성공적으로 받아내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을 통해 창출한 선의를 잃고말 것이다. 이같은 선의는 지구촌의 여러 국가들로 하여금 러시아와 중국을 멀리하고 미국과 동맹을 맺길 원하게 만든 동력이었다.
게다가 트럼프가 풀어놓은 민족주의와 보호주의는 시간의 경과와 함께 - 우리가 이전에 알았던 그 어떤 세계보다 더욱 안정적이고 평화로우며 번창하고 자유로운 - 미국이 창조한 세계를 크게 손상시키거나 심지어 완전히 파괴하고 말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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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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