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조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신일본제철(Nippon Steel)의 US스틸 인수를 공식적으로 불허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 굴지의 철강사인 US스틸이 미국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자랑스런 국내 기업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안보담당 보좌관들은 일본이 미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국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신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며 합병 재가를 적극적으로 건의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바이든의 결정에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바이든이 배신한 ‘친구’는 일본만이 아니다. 노동조합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바이든은 이번 조치를 통해 미국의 노조 근로자들에게도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바이든의 불허 결정은 더욱 광범위한 당내 문제, 즉 영합과 굴종을 충성심으로 착각하는 민주당 내부의 기류를 보여준다.
1901년에 세워진 US스틸은 과거 수십년동안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기보다 정부의 보조에 기대어 간신히 연명해왔다. 카토 인스티튜트의 학자인 클락 패커드에 따르면 린든 B. 존슨 이후 역대 모든 대통령이 관세와 쿼터제를 비롯한 보호주의 조치를 통해 US스틸의 회생에 손을 보탠게 사실이다.
그러나 보호주의 조치는 통하지 않았다. US스틸의 제철시설은 미국내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시설이 낙후한데다 운영비도 훨씬 비쌌다. US스틸은 백기사의 도움을 기대하며 지난 2023년 회사를 매물로 내놓았다. 최상의 인수조건을 제시한 쪽은 신일본제철이었다. 신일본제철은 펜실베니아와 인디애나에 위치한 오래된 US스틸 공장의 노후한 용광로를 현대화하는데 27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신일본제철은 US스틸의 생산능력을 줄이지 않고 기존의 노동계약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US스틸의 주주와 근로자 모두에게 신일본제절의 인수조건은 하늘이 보낸 선물이었다. 지난 가을 US스틸의 최고경영자는 펜실베니아와 인디애나의 오래된 공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해 적지 않은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건 단순한 으름장이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US스틸이 디트로이트와 세인트루이스 인근의 일부 공장을 폐쇄하면서 수천개의 노조 일자리가 사라졌다.
US스틸 인수 차단은 미국내 다른 일자리마저 위협한다. 신일본제철은 거의 40년간 미국에서 여러 현지 법인을 운영해 왔고 현재 4,000명의 미국인 일손을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보좌관들은 합병을 허용치 않는다면 모욕감을 느낀 일본 정부가 신일본제철에 압력을 가해 미국내 기존 공장의 생산량과 일자리를 줄이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렇게 되면 바이든이 우선시하는 국내 생산직 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들 블루 칼라 근로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신일본제철과 US스틸의 인수합병이 이루어지길 원했다. 그러나 일반 노조원들과 자아에 민감한 노조 지도자들이 원하는 바가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US스틸 노조 지도자들은 신일본제철이 다른 잠재 구매자들처럼 인수 입찰에 뛰어들기 전 노조의 승인을 구하지 않은 점에 분개했다. (그러나 다른 입찰사들은 신일본제철만큼 관대한 조건을 내놓지 않았고 해당 제안에 대한 US스틸의 실사를 차단하는 사례까지 적어도 한 차례 이상 발생했다.)
과거 수개월 동안 신일본제철은 맞대면을 통해 미국측 우려를 해소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자고 촉구했으나 US스틸 노조 지도부는 협상테이블에서 상대가 어떤 약속을 하건 실제로 철강 수요가 줄어들면 교묘한 허점을 찾아내 US스틸의 생산능력을 축소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추측에 바탕해 대화를 거부했다. 다시 말해 노조 지도자들은 확실시되는 현재의 일자리 감소보다 발생가능한 미래의 레이오프가 더 무섭다고 판단한 셈이다.
지난주 신일본제철은 계약 체결 후 10년 내에 US스틸의 생산량 축소 결정이 나올 경우에 대비해 미국 정부에게 이를 막을 수 있는 거부권을 제공한다는 전례없는 제안까지 내놓으며 거래 성사를 위한 필사적인 막판 시도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양보만으로 바이든, 혹은 바이든이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정치적 우군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바이든은 결국 150억 달러짜리 합병안을 무산시켰다. 그는 자신의 후임자이자 외국인 혐오증을 지닌 도널드 트럼프에게 공을 넘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미국과 일본 철강기업의 인수합병에 강력히 반대했다.) 바이든은 노조의 희망사항을 자신이 직접 수행하고 싶어했다. 역대 최고의 ‘노조 친화적 대통령’을 자처하는 그는 이같은 타이틀을 공고히 해줄 마지막 행동을 취했다. 신원미상의 한 백안관 보좌관이 위싱턴포스트의 기자에게 털어놓았듯 “합병 논란은 정치마당으로 끌려 들어왔고 대통령이 남길 정치적 유산으로 귀결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제철공장이 폐쇄된다면 대통령의 결정은 나쁜 정치가 될 것이고 그의 유산에 오점을 남기게 된다. 진정한 친구는 우방국의 자기파괴를 돕거나 방조하지 않는다. 그같은 행동은 당사자를 그저 비열한 동조자로 만들 뿐이다. 좌파 성향의 경제학자들과 정치 공작원들이 개인적으로는 민주당의 인플레이션 접근법을 비난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침묵했던 것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광범위하게 보급된 이후에도 학교 수업 재개에 반대하는 교사노조를 두둔함으로써 교육자들에 대한 불신의 씨앗을 뿌렸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은 환경 정의를 외치는 일부 관련 단체들의 무분별한 분노를 피하기 위해 청정 에너지 기반시설 구축을 가속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바이든 보좌진이 반박불가한 증거가 불거질 때까지 대통령의 인지기능이 떨어진 사실을 숨기려 한 것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이제 바이든은 다시 한번 노조가 듣기 원하는 것만을 골라 말함으로써 철강노조, 혹은 위태위태하게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노조원들을 배신했다. 민주당은 우정이란 비난을 삼가고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곧잘 착각한다. 그러나 죽자사자 어리석은 일에 매달리는 연합체 구성원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당은 물론 지지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당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완전히 종속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다면 민주당은 본회의장 통로의 건너편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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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람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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