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정권교체기 글로벌 정상 ‘줄대기행렬’에 韓만 정상외교 공백 불가피
▶ 통상·안보 등 전방위 변화 예고에도 범정부적 리스크 대응 차질 걱정
▶ 대북정책 조율 난망에 ‘韓패싱’ 우려도…美주도 한미일 3국 협력도 변화 전망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로이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를 한 달여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면서 한미 동맹 관계도 위기를 맞게 됐다.
경제와 안보를 망라하는 트럼프 발(發) 초대형 폭풍이 몰려오면서 어느 때보다 한미 간 협의가 중요한데 한국은 리더십 공백 사태에 빠지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대대적 정책 변화를 예고한 트럼프 당선인을 접촉해 자신들의 국익을 지켜내기 위해 주요국 정상들이 '줄대기'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정상 차원의 네트워크가 불가능하게 됐다.
나아가 국정 사령탑의 부재와 함께 적지 않은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 사태 관련 수사로 발이 묶이게 되면서 미국의 신(新)정부 출범 전에 한국 정부 차원에서 인수위를 비롯한 트럼프 측 핵심 인사들과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통상 한미 양국에서 정부가 바뀔 경우 한국 정부는 대표단을 워싱턴DC에 보내 미국 측과 한미 동맹의 주요 현안을 협의하면서 한국 정부의 입장 및 동맹에 대한 한국의 기여 등을 설명했으나 이번에는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을 맞게 되는 셈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통상 정책 공약 및 안보 기조를 고려할 때 이런 공백은 리스크 대응 차원에서 한국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국가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품에 일괄적으로 10% 내지 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한 트럼프 당선인은 이른바 데이 원(Day 1)인 내년 1월 20일 취임 당일에 무더기로 각종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속도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역대 최대 수준의 대미(對美)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도 주요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지난 12일 트럼프 당선인의 보편 관세 공약과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를 거론하면서 "이러한 조합은 거의 확실히 10% 이상의 한국에 대한 관세(부과)를 의미한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모두가 마러라고나 백악관에 가서 개별 협상을 시도하는데 한국에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정부의 핵심 입법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지원법 등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및 반도체 투자 보조금 등도 손볼 가능성이 크다.
그는 IRA에 따른 전기차 지원 정책을 사실상 '전기차 의무화'로 보고 이를 폐기하겠다고 밝혔으며 미국 내 반도체 투자에 보조금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지난 10월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면 보조금 없어도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와서 공장을 지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해당 정책이 바뀌면 삼성, SK, LG, 현대차·기아 등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도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
미국의 정권 교체기에 발생한 한국의 리더십 공백은 안보 문제 대응에도 큰 차질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 양국이 지난 10월 타결한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안보 무임승차 불가론을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당선인이 이미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부르면서 연 100억 달러의 방위비를 요구했다는 점에서다. 이는 제12차 SMA에 따라 한국이 2026년 부담하게 되는 돈보다 9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연계해 주한미군 감축 내지 철수 카드를 거론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그는 1기 정부 때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한 바 있으며 지난 4월 말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그 가능성을 시사한 상태다.
안보면에서 볼 때 더 큰 문제는 한반도에서의 새판짜기가 진행될 경우다.
1기 정부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3차례 만나면서 톱다운(하향식) 정상 외교를 진행했던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에서도 수차 "핵을 가진 북한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지난 12일 공개된 타임지 인터뷰에서도 "난 김정은과 매우 잘 지낸다"면서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재집권 이후 김 위원장과 어떤 식으로든 대화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의 전쟁 해결이 급선무인 데다, 2019년 이른바 '하노이 노 딜(No deal)'에 따라 초래된 북미간의 불신으로 인해 트럼프 당선인이 곧바로 북핵 협상 모드로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북한 문제에 관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나아가 트럼프 당선인이 조기 해결을 공약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한 것도 북미간 접촉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타임지 인터뷰에서 언급한 대로 북한의 파병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 복잡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어서다.
이와 별개로 북한이 트럼프 정부 초기 이른바 '화염과 분노' 국면 때처럼 2기 정부 초반에도 도발 공세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한국의 리더십이 부재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한국 패싱(건너뛰기)'이나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적극 대화하면서 한국과는 대화를 단절하는 것)'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반도 정세 대응에 있어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끌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는 "한미 간 실무적 차원에서의 일상적 대화는 계속되겠지만, 한국의 리더십 부재로 정상 수준의 안보 어젠다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대응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로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본격화된 한미일 3국간 안보 협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미일 3국 협력을 주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 1월 퇴임하는 데다 대일 관계개선으로 3국 협력의 토대를 제공한 윤 대통령이 직무 정지 상태에 처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8월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도 퇴장하는 등 캠프 데이비드에 참석했던 한미일 3국 정상이 퇴장했거나, 퇴장 예정이거나, 퇴장 위기를 맞았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념과 가치에 기반한 동맹 관계보다는 철저한 이익 중심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 기조를 갖고 있고, 윤 대통령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돼 한국의 정권이 교체될 경우 한일 관계 역시 이전보다는 험난할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을 크게 약화할 수 있는 요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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