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칼럼을 써 오면서 정치, 특히 고국의 정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자제했다. 종교와 더불어 정치만큼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감정을 자극하는 분야도 없다. 논쟁도 대부분 건설적 결론 없이 에너지 소모로만 귀결된다. 그런데 오늘은 정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지난주 화요일이다. 그날 고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당일 오전 10시 반부터 있는 교육위원회 실무회의를 준비하느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바빴다. 실무회의는 교육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주재한다. 그날 회의 주제가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에 대한 논의를 내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 주제는 다름 아니라 중학생을 자녀로 두고 있는 많은 가정이 관심을 갖고 있는 등교시간이었다.
중학교 등교시간이 문제가 된 것은 2015년에 고등학교 등교시간을 늦추기로 하면서다. 그런데 고등학교 등교시간만 늦출 경우 추가로 소요되는 재정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스쿨버스를 추가로 구매해야 하고 버스 운전사들도 더 고용해야 했다. 고육지책으로 중학교 등교시간을 대신 앞당기기로 했다. 그래서 중학생들의 등교시간이 고등학생보다 더 이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중학생들에 비해 고등학생들이 더 늦게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기에, 고등학생들에 맞추어 등교시간을 조정했다.
그런데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 적절한 시점에 중학교 등교시간을 재검토하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그 약속을 여러 해 동안 지키지 못하다가 드디어 작년 초부터 논의에 들어갔다. 그리고 컨설팅 회사를 고용해 연구해보게 했다. 지난주 실무회의에서는 그 컨설팅 회사가 준비한 몇 가지 방안에 관해 교육위원들이 논의하게끔 되어 있었다.
논의 주재 준비를 하기 위해 나는 아침 일찍부터 회의 자료들을 다시 챙겨 보았다. 그때 고국에서 날아온 속보를 접했다. 집에서 교육위원회 회의장으로 이동하려고 막 랩탑 컴퓨터를 챙기던 참에 말이다. 그런데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단다. 에이, 그럴 리가. 가짜 뉴스. 요즈음에는 별 가짜 뉴스도 다 있네. 그러나 다른 언론 매개체를 몇 개 접속해 보았는데 모두 같은 속보가 뜨는 게 아닌가! 어, 진짜야? 말도 안 돼!
교육위원회 회의 내내 고국 소식이 궁금했다. 동료 교육위원들도 미국 언론을 통해 같은 속보를 접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본다. 내가 중간중간 설명해야 했다. 한국에 뭐 다른 안보상의 문제, 그러니까 북한으로부터의 침공이나 그런 비슷한 위급한 상황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대통령의 판단 착오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아니지, 대통령이 저러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지. 군 통수권자로 군 병력을 휘두르는데 말야.
다행히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를 할 수 있었단다. 새로 나온 이 뉴스도 알려주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왜 바로 그 결의에 따라 계엄 해제를 안 하지? 아, 또 그 고집에 그냥 계엄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 다가올 분명한 법적, 정치적 책임 때문에 계엄을 유지하나. 혹시 유혈 사태로 연결되는 것 아니야. 여러 어지러운 생각들이 회의 중 내내 머릿속에서 오갔고, 나는 계속 고국의 뉴스를 챙겼어야 했다.
지난 30~40년 동안 고국의 괄목할 만한 성장. 경제뿐 아니라 문화, 예술, 정치 모든 부문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한 자랑스러운 나의 고국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위에 자랑해 왔던 나.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나와 같이 일하는 교육청의 고위 직원들과 교육자들에게 한국 방문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내가 직접 시간을 내 안내해 왔었는데, 졸지에 고국의 추한 모습에 대해 변명을 막 늘어놓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또 머리에 찾아든 우려는, 오는 1월에 이곳에 와 실습을 하게 되는 고국의 교사지망 대학생들, 그리고 내년부터 고국의 교사들이 이곳에 와 직접 가르치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준비하는 중인데 이러한 계획들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지도자를 잘못 두면 그를 좇아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진다는 만고진리를 고국의 대통령이 직접 보여주고 있다. 자리에서 바로 내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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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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