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삽니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그 소설을 완성하게 됩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7일(현지시간) 자신의 작품 세계를 회고하는 강연을 했다.‘채식주의자’ 등 작품을 쓸 때 자신을 채웠던 질문들을 대중 앞에서 상세히 풀어냈다. 한강 작가는 1979년 4월 직접 만든 조그만 시집에 썼던,‘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이란 무얼까?’라는 질문을 회상하며“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새로이 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에 이날 마련된 강연장에서 ‘빛과 실’이라는 제목을 붙인 글을 차분한 어조로 읽었다. 약 30분간 한국어로 진행된 강연을 통해 한강 작가는 자신의 글들을 시작하고 맺는 과정에서 묻고 고민했던 것들을 청중 300여 명과 함께 나눴다.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은 일종의 ‘수상 수락 연설문’으로 불리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강연은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는 점 때문에 특히 많은 관심을 받는다.
자신을 ‘쓰는 사람’으로 명명한 한강 작가는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 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이어 한강 작가는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고 했다. 세 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2005년, 그가 머물렀다는 질문은 이렇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채식주의자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한강 작가의 설명)를 그린 작품이다.
한강 작가는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면서 자신이 거치고 견뎌낸 질문들을 소개했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 없고 우리가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바람이 분다, 가라·2010년) →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희랍어 시간·2011년) →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소년이 온다·2014년) →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작별하지 않는다·2021년)
지금의 한강 작가는 이제 새로운 질문을 견디고 있다. ‘나의 질문들이 끝내 향하는 곳이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라는. 1979년 4월 어린 한강이 쓴 시의 도입부는 한강 작가가 품은 질문과 닿아 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한강 작가는 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후 차기작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고, 완성 시점을 예측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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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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