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년간 女수상자 65명뿐…여성 수상자 업적 기리는 ‘노벨주간 조명’
"하얀 것은 본래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White, by nature is nothing at all, but within that nothingness, everything exists.")
6일(현지시간) 오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시청 건물 외벽에 소설가 한강의 사진과 함께 한글 문장이 떠오르고, 곧이어 같은 자리에 영어로 번역된 문장이 나타났다. 노벨 재단은 이를 "소설 '흰'(영어 제목 'The White Book')에 등장하는 문장"이라고 설명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얼굴과 그의 문장이 스톡홀름을 밝히는 조명에 담겼다. 노벨재단은 '노벨 주간 조명'의 점등 준비를 모두 마치고 이날 그 의미를 설명하는 프레스투어를 진행했다.
노벨 주간 조명은 여러 예술가가 매년 새로운 주제를 담아 스톡홀름 곳곳에 설치된다. 이날 '미리 보기' 행사에서 점검을 마치고 7∼15일 공식적인 점등이 이뤄진다.
스톡홀름은 위도가 북위 59도로 높아 겨울철인 12월에는 오후 3시 이전에 해가 진다. 그만큼 기나긴 밤을 밝히는 것이 노벨 주간 조명이다.
여러 조명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스톡홀름 시청 외벽에 레이저로 쏜 동영상(미디어 파사드) '리딩 라이트'(Leading Lights)와 시청 맞은편 부두에 설치된 조명 '돔 아데톤'(de Aderton)이다.
이 두 조명은 여성 노벨상 수상자들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리딩 라이트'는 국제적 디자인 스튜디오 '레 아틀리에 BK'가 올해까지 총 65명인 여성 노벨상 수상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를 담아 디자인했다.
노벨재단은 '리딩 라이트'를 "여성 선구자들의 뛰어난 재능을 향한 빛나는 헌사"라고 소개했다. 또 "이 작품은 노벨상을 받은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업적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9분짜리 동영상인 '리딩 라이트'에는 여성 수상자 65명의 모습이 등장했다. 한강의 사진 역시 두 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동영상은 노벨 주간 매일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반복해 재생되며 시청 외벽을 밝힐 예정이다.
'돔 아데톤'은 스웨덴 왕립공과대학(KTH) 건축학과가 만들었다. 1909년 셀마 라게를뢰프부터 2024년 한강까지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 18명의 초상이 조명으로 제작됐다.
열여덟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은 올해까지 노벨문학상 여성 수상자 18명을 의미하며 동시에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 18명을 뜻하기도 한다.
노벨재단이 이처럼 여성 수상자를 각별하게 대하는 이유는 역대 수상자 가운데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1901년부터 수여된 노벨 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학·평화상과 1969년 추가된 경제학상까지 123년간 총 1천12명의 사람 또는 단체에 627회에 걸쳐 시상이 이뤄졌다. 두 번 이상 수상한 이들이 있어 수상자만 집계하면 총 976명의 개인과 28개 단체이다.
이 가운데 여성(개인만 집계)은 총 66차례 수상했다. 마리 퀴리가 두 차례 상을 받은 것을 고려하면 여성 수상자는 65명으로 전체의 7%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강이 받은 문학상 역시 남성에 편중돼 있다. 1901년부터 총 121명이 이 상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여성은 18명으로 14.9%에 불과하다.
1909년 스웨덴 작가 셀마 라게를뢰프가 처음 문학상을 받았고, 백인이 아닌 여성으로는 토니 모리슨이 1993년 최초로 수상했다. 아시아 여성 수상자는 한강이 처음이다.
이 같은 성비 불균형은 여성이 사회 진출과 교육에서 소외된 결과로 풀이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노벨상 수상자 선정이 남성 위주로 편중됐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노벨재단 역시 성비 불균형을 부정하지 않는다. 재단은 '돔 아데톤'의 공식 설명에서 "수상자들의 성별 불균형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 작품은 여성 작가들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밝혔다.
문학상의 경우 시간이 갈수록 점차 여성 수상자 비중이 늘고 있다. 19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90년 동안 여성 수상자가 6명에 그쳤으나 이후 30여년 동안 12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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