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경쟁 속 中 군사기술에 쓰일 반도체· AI 수출통제 추가 조치
▶ 바이든이 트럼프의 고율관세 유지했듯, 트럼프도 수출통제 고수할듯
조 바이든 대통령 [로이터]
미국 상무부가 2일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대중국 수출을 통제한다고 발표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중국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의 대미를 장식하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AI 가속기를 가동하는 데 사용되며, AI 훈련에 필수적인 부품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이번 조치가 중국이 군사 현대화를 지원하는 데 사용할 중국 내 반도체 생산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전면적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은 하지 않는 대신 미국의 안보에 도전이 되는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특정 분야에서 담장을 높게 세우는 '디리스킹'을 표방해왔다.
미국 정부는 2022년 8월 중국군이 AI 구현 등에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반도체 제품을 군사용으로 전용할 위험이 있다며 엔비디아와 AMD에 관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당시 엔비디아의 A100과 그 업그레이드 버전인 H100의 중국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
또 같은 해 10월부터는 중국에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 그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와 부품을 수출하는 것을 제한해 왔다.
지난 9월에는 양자컴퓨팅, 첨단반도체 제조 등의 핵심 신흥기술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제도를 신설했는데, 이 또한 중국을 겨냥한 조처로 풀이됐다.
그동안도 미국은 GPU를 중심으로 대중국 AI 반도체 및 관련 장비 수출을 통제해왔는데, 이번에 AI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HBM까지 수출통제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중국이 자체 기술로 'AI 자립 및 굴기'를 이루는 것을 막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이 군사력 면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을 추격하고 있지만 전투기 조종 역량 등 물량 공세로 넘어서기 어려운 인적 역량 면에서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중국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AI는 그런 미중 군사력의 '소프트웨어'상 격차를 단기간에 뛰어넘을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무엇보다 AI는 고도로 데이터가 집중된 14억 인구 대국의 특징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중적으로 육성해온 분야였다.
세계적으로 AI의 군사적 활용에 대한 통제 관련 논의가 있을 때도 중국이 그다지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데는 AI가 미중간 군사력 격차 해소에 결정적 도구임을 인식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됐다.
결국 이번 HBM 수출 통제를 포함해 바이든 행정부가 잇달아 내놓은 일련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AI 관련 수출통제는 상업적 의미 이상으로 안보 차원의 함의가 중요했다는 것이 중평이다.
미 상무부의 HBM에 대한 이번 수출 통제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함으로써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더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이 사용됐다면 이번 수출통제를 준수하도록 한 것은 한국 기업들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HBM을 수출하는 한국 반도체 대기업들과, HBM 관련 한국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종료를 한 달 반가량 남기고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내년 1월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바통을 넘기기 전에 디리스킹과 관련한 정권의 업적을 최대 한도로 끌어 올리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디리스킹의 '담장'을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국 무역 등 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조야의 초당적 '중국 때리기' 기조에 비춰 볼 때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대중국 고율관세를 그대로 유지했듯, 트럼프 2기 행정부도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AI 등 관련 수출통제 조치를 그대로 이어가면서, 예고해온 '관세' 카드로 대중국 추가 압박을 가할 것으로 관측통들은 예상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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