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국익·비용’에 무게…전문가 “가치외교 기조 유지하되 톤다운해야”
▶ ‘대중 견제’ 공통 분모로 한미일 협력체제는 유지될 듯
APEC 계기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과감하게 내세웠던 '가치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가치 외교를 이끄는 '조타수' 역할을 해왔던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내년 백악관에 재입성할 트럼프 당선인은 가치보다는 국익에 무게를 두고 대외 정책을 끌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식의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기반으로 외교·안보 정책을 펴왔다.
규범·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지키고 미국을 비롯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 등 가치관이 비슷한 유사입장국과 연대하는 것을 외교안보 좌표로 찍은 것이다.
한미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전방위 분야에서 협력을 쌓으며 한미동맹을 새로운 단계로 업그레이드시켰고, 한일관계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제시해 한미일 협력 기반을 쌓으며 바이든 행정부와 보조를 맞췄다.
아울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만·남중국해 문제 등에서도 자유와 규범 등을 기준점으로 잡고 미국과 한목소리를 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를 중심으로 한 외교안보 정책이 차기 트럼프 행정부와도 '궁합'이 맞을 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동맹을 거래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사업가 출신 트럼프 당선인은 자유, 민주, 이념 등 가치지향적 기준보다는 철저하게 비용·국익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이 이미 트럼프 1기에서 증명된 바 있다.
동맹국이 방위비를 제 몫대로 내고 있지 않다며 한국에는 무리한 분담금 액수를 요구했고, 유럽 쪽에는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에 트럼프 2기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고수한다면 비슷한 가치로 묶인 자유민주주의 연대의 구심점도 자연스레 약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 정부로서는 가치외교를 계속 고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가치 외교를 전면에 내세웠던 수사(레토릭)는 다소 '톤다운'(수위조절) 시키는 등 트럼프 스타일에 맞게 실행 방안을 재조정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가치 외교'의 기본 방향성은 계속 가져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재천 서강대 교수는 7일 "미국이 한 발 뒤로 빼더라도 우리는 좀 더 앞장서서 자유주의 국가들과 연대를 공고히 해야 한다"며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 외교 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레토릭은 톤다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다자협력은 트럼프 행정부가 좀 덜 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좀 더 목소리를 내면 국제사회에서 우리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며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봤다.
미국이 이끌던 '가치 외교'가 희석되면서 한미일 협력 체제도 자칫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이 바이든 대통령이 이뤄놓은 정책을 뒤집는 'ABB'(Anything But Biden) 신념과 동맹·협력체 경시 기조에 따라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로 도약한 한미일 협력 체제를 경시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인 쿼드가 중국 견제를 핵심으로 2019년 트럼프 1기 때 출범했듯 한미일 협력도 비슷한 성격의 협의체로 발전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트럼프 1기 성향에 비춰 차기 행정부도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리라고 분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측근들도 중국을 억제 대상으로 보는 상황에서 동맹국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오전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에서 "그동안 한미일 협력 관계가 나날이 견고해져 왔고, 이런 협력이 캠프데이비드 3국 협력 체계로 구축될 수 있었던 데에는 1기 재임 동안 한미일 간 협력을 잘 다져놓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여도 있다"고 평가한 데서 보듯 트럼프 당선인은 1기 때도 한미일 협력에 대한 의지가 컸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월 국내 매체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한미일 협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일 협력 전망과 관련해 "(캠프 데이비드 회의) 공동성명에서 매년 개최한다고 약속한 상황이기에 트럼프 행정부 때 가서는 한미일 협력이 더 확장되고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 행정부와 약속이 이어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국가 간 신뢰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언급했다.
다만 그간 표면적으로 북한 문제 대응에 더 치중해온 한미일 협력이 트럼프 2기에서는 중국 견제에 보다 방점을 찍을 수 있다는 관측은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여전히 가치를 공유하는 나토나 일본 등 미국 외 다른 국가와 공동 전선을 강화해서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대응을 같이할 필요가 있지만, 대미 관계에서는 가치의 비중을 줄이고 우리의 책임·역할을 증대하는 과정이라고 설득해야 할 것"이라며 '투트랙'으로 대응할 것을 제언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시절 '중국 때리기'를 할 때 전체주의라고 얘기를 하면서 훨씬 이데올로기 가치를 그은 적이 있다"며 "미국이 생각하는 이해에 한국도 상당히 부합되는 면이 있다는 거니 일정 수준 우리가 같이 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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