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화하는 디지털 중독
▶숏폼 이용시간 5년새 2.5배 급증
▶ 20대 30% 이상이 의존증 호소
▶ADHD·문해력 저하 등 부작용
▶업계 자정노력·제도 뒷받침 필요
직장인 A(35) 씨는 최근 점심시간마다 숏폼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본 회사 선배로부터 ‘그냥 쉬는 게 낫지 않겠냐’는 지적을 받고 울컥해 말싸움을 벌였다. 뒤늦게 자기 스스로도 평소의 모습과 다른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든 A 씨는 인터넷에서 성인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자가진단 테스트를 해봤다. 최근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예민해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별 생각 없이 답지를 채웠는데 예상과 달리 너무 높은 점수가 나오자 걱정이 커졌다. A 씨는 조만간 정신과를 찾아 자신의 상태를 살필 생각이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 중심의 숏폼이 확산하면서 중독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숏폼의 글로벌 콘텐츠 시장 내 영향력이 커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이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도 쏟아지는 추세다. 실제로 숏폼 시청 시간이 늘면서 집중력이 극히 저하되고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만 찾는 악순환이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특히 호기심이 많고 미성숙한 청소년은 이 같은 유혹에 빠져들기 쉬워 상황이 악화하기 전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숏폼의 영향력 확대와 부작용 우려는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된다. 7일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국내 이용자들의 숏폼 앱 사용 시간은 5년 새 2.5배 가까이 늘었다.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 숏폼 앱의 월간 사용 시간(매년 8월 한 달 기준)은 2019년 611분이었지만 올해는 1491분으로 2.5배 가까이 증가했다.
영화·드라마·예능 등 롱폼을 다루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의 시청 시간 격차도 벌어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8월에는 숏폼(46시간 29분)과 OTT(9시간 14분)의 시청 시간 차이가 37시간 15분(2235분)이었는데 올해 8월에는 44시간 51분(2691분)으로 더욱 커졌다.
숏폼의 시청 시간 증가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더욱 크다. 짧은 영상을 단시간에 여러 개 시청하는 형태다 보니 단기간 내 뇌에 과도한 자극을 준다. 영상을 만드는 창작자들도 수많은 영상 중 선택을 받아야 해 더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화면을 만드는 데 치중한다. 악순환의 반복인 셈이다.
숏폼에 길들여진 이용자들은 긴 호흡의 콘텐츠를 보는 데 거부감을 갖고 문해력이 낮아져 내용을 파악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글로리아 마크 미국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숏폼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2004년에는 이용자들이 한 화면에 집중하는 평균 시간이 약 2분 30초였지만 스마트폰의 보급이 이뤄진 2012년에는 집중 시간이 75초까지 떨어졌고 숏폼의 영향력까지 더해진 2020년 무렵에는 47초까지 낮아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연구에서도 인간의 주의력은 2000년 12초에서 2013년 8초로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은 롱폼에 강점을 지닌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롱폼으로부터 숏폼이 파생될 수 있으나 이용자들의 콘텐츠 소비 행태 변화는 제작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용자들도 숏폼의 중독성을 자각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실시한 ‘2023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3명 중 1명(32.7%)은 “숏폼 시청을 조절하는 것이 어렵다”고 답했다. 세대 전체로 봐도 23%가 의존증을 호소하고 있다.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10대의 시청 시간 조절 어려움은 더욱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 같은 ‘숏폼 중독’을 스스로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숏폼에 과의존하게 되면 심리적 불안을 겪고 수면의 질이 크게 낮아진다. 또한 자극적인 영상을 원하게 돼 또다시 숏폼 영상을 찾게 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를 붙잡아 두기 위해 취향 맞춤형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업계의 자정 노력과 함께 제도적인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유럽연합(EU)·대만 등은 청소년의 스마트폰 과의존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유해한 사용을 억제하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최근 국회에 숏폼 중독 방지 법안을 낸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16세 미만의 청소년일 경우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일별 이용 한도 설정과 중독을 유도하는 알고리즘 허용 여부에 대해 반드시 친권자 등의 확인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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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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