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검증된 치료법이 없었어요. 의사도‘시야가 좁아지고 한쪽이 뿌옇게 보이는 것에 적응하세요’ 걸을 때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정도 외에는 환자에게 해줄 말이 없었죠.”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뇌의 일부에 신경학적 손상이 일어나는 뇌졸중 환자는 여러 후유증을 겪는다. 신체 일부가 마비되거나 기억력·판단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말이 어눌해지는 언어장애와 함께 뇌의 시각피질이 손상돼 겪는 시야장애도 대표적인 후유증이다. 시야장애는 뇌졸중 환자 5명 중 1명이 겪지만 여태껏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이러한 시야장애 치료에 신약도 아닌 다소 생소한 디지털 치료제가 출사표를 내밀었다.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강동화 신경과 교수는 국내 제3호 디지털 치료제 ‘비비드 브레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뇌졸중으로 시각피질 일부가 죽었더라도 그 주변은 살아있거든요. 시지각 학습으로 잠자고 있는 주변의 뇌를 깨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비비드 브레인은 강 교수와 디지털 치료기기 전문기업 뉴냅스가 개발했다.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뇌의 뒤쪽 시각피질에서 처리된다. 오른쪽 시각정보는 좌뇌가, 왼쪽은 우뇌가 담당한다.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시각피질이 손상돼 해당 영역의 시각 정보를 처리할 수 없게 되는 게 시야장애다. 우뇌 시각피질이 손상되면 왼쪽 눈이 정상 작동해도 들어온 시각정보를 처리할 수 없어 시야가 좁아지거나, 뿌옇게 보이는 식이다.
강 교수가 주목한 건 ‘뇌 가소성 이론’이다. “뇌의 각 영역마다 하는 역할이 있어요. 그런데 특정 부분이 손상되면 주변 조직이 어떻게든 그 기능을 떠맡으려고 해요. 선천적으로 백내장인 사람을 예로 들면 시각정보가 눈으로 들어가질 못하니까 시각피질이 할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시각피질이 청각 처리 역할을 함께해요. 새로운 뇌 연결이 생겨나는 겁니다.”
지난달 12일 뇌졸중 후유증으로 시야장애를 앓고 있는 57세 환자에게 강 교수는 비비드 브레인을 처음 처방했다.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하고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한 후 VR 화면에 나타난 시지각 훈련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시야 범위를 50여 개 점으로 나눈 뒤 각 점마다 무작위로 돌아가면서 문제를 냅니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시각정보를 보여주고 줄무늬가 세로인지 가로인지, 어느 방향으로 회전하는지 맞히는 거죠.”
특정 기준을 달성하면 다시 시야 범위를 측정한 다음 시각정보 처리가 미진한 부분 위주로 시지각 훈련을 하게 된다. 훈련 성과에 따라 자동적으로 난이도가 조정돼 환자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원격 모니터링을 통해 훈련 진척도에 따른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치료 기간은 12주다. 다만 현재까지 치료 대상은 한쪽 부분에 시야장애가 있는 이들로 제한된다.
효과도 입증됐다. 앞서 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시야장애 환자들은 50여 개의 점 중 평균 5.4개 점에서 시야가 개선됐다고 답했다. 강한 불빛을 비춰도 시각정보를 인식하지 못해 0점을 받았던 특정 점의 점수가 치료 후에는 19~23점을 기록(일반인 30점 안팎)한 경우도 있다. “그동안 할 수 있는 게 없어 막막했는데 이렇게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하는 환자들을 보면 뿌듯합니다.”
사시가 있으면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 물체가 두 개로 겹쳐 보이는 복시를 겪게 된다. 초점이 맞지 않다 보니 한쪽 눈으로만 보려고 하면서 나머지 눈은 약시가 되기 쉽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양쪽 눈에 시각 자극을 줘 입체시 훈련을 하면 이를 개선할 수 있다”고 강 교수는 설명했다. 입체시는 두 눈으로 입체적인 지각을 하는 과정이다. 빛과 색깔을 감지하는 망막 내 황반에 이상이 생겨 보고자 하는 부분이 검게 보이거나, 왜곡돼 보이는 황반변성을 디지털 치료제로 치료하는 방법도 현재 탐색임상 중이다.
강 교수는 “인공지능(AI)이 불과 몇 년 사이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처럼 디지털 치료제도 수년 후에는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굉장히 활발하게 치료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관련 제도를 정비해 디지털 치료체 개발·보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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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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