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정년 연장에 불붙은 세대 갈등
▶급격한 고령화·연금 고갈 위기에 중국 정부, 정년 연장 카드 빼들어
▶노령 연금 수령 시기 3~5년 연장
▶ ‘사상 최고치’ 청년실업률 악화에 청년층은 “구직난 더 힘들어질 것”
▶“내가 은퇴 땐 연금 바닥” 불만도
▶“공산당이 노년 부양할 의무” 인식
▶“편안한 노후 대신 왜 일 더 시키나”
▶중장년층은 ‘상대적 박탈감’ 호소
“태어났더니 많다 하고, 살다 보니 적다 하네
취업하려니 늙었다 하고, 퇴직하려니 이젠 어리다 하네”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 확산하는 밈(온라인에서 유행하는 글이나 콘텐츠)이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바링허우(1980년 이후 출생 세대)와 주링허우(1990년 이후 출생 세대)로부터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노랫가락까지 붙어 유행가처럼 번지는 중이다. 뜻을 풀어 보면 ‘한 자녀 정책’에 따라 홀로 컸는데, 이제는 인구가 급감하고 있다며 “결혼해라, 아이를 낳으라”는 정부 정책 변덕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직장 생활은 또 어떤가. 극심한 취업난에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신규 취업도, 재취업도 불가능하다는 ‘35세의 저주’를 마주한 세대가 이들이다. 마지막 구절은 최근 이뤄진 ‘정년 연장’ 결정을 겨냥했다. 일자리 보전조차 버거운데, 노령 연금 수령 시기를 3~5년 늦춘 중국 정부를 향한 ‘냉소’와 ‘노여움’이 묻어난다.
급격한 고령화로 연금 고갈 상황에 직면한 중국 정부가 결국 ‘정년 연장’ 카드를 빼들었다. 고갈 위기에 처한 연금 곳간을 채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잠재적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청년 세대의 분노와, 먼저 은퇴한 세대를 위해 일을 더 해야만 하는 중년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이 중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 노령화, 취업난, 재정난이 뒤엉킨 가운데, 이번 정년 연장 결정으로 중국의 세대 갈등도 증폭되는 모습이다.
▲공원서 카드나 치는 ‘노년의 꿈’이 연장됐다
중국은 지난달 13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11차 회의를 통해 정년 연장안을 채택했다. 내년부터 15년에 걸쳐 남성은 기존 60세에서 63세로, 여성의 경우 △생산직은 50세에서 55세로 △사무직은 55세에서 58세로 퇴직 연령을 각각 연장한다는 게 골자다.
현행 중국 정년 제도는 건국 직후인 1950년대에 만들어졌다. 70년 넘게 지속된 낡은 체계다. 그사이 중국인 평균 수명은 1950년 43.35세에서 올해 77.64세(유엔 추산)로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의 평균 은퇴 연령이 남성 64세, 여성 63세인 점과 비교해도 중국의 은퇴 연령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기대 수명이 늘어난 만큼 정년 연장안은 자연스럽다. “더 일하겠다”는 개인 권리 차원도 있다. 양옌수이 칭화대 병원경영학 교수는 현지 언론 이차이에 “정년 연장 결정은 개인의 건강과 체력, 가족 부양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라며 “중국 노동력 유지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중국 사회에서 정년 연장을 반기는 여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누가 3년 더 일하고 싶다고 했느냐”라는 반발 일색이다. 어째서일까.
중국공산당 학습시보 부편집장 출신으로 현재 중국 전문 시사평론가로 활동 중인 덩위원은 한 외신 기고문을 통해 “이번 결정은 70년 넘게 유지돼 온 국가와 인민 간 계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사회에서 ‘퇴직’은 서방에서 지니는 의미보다 조금 더 특별하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중국공산당은 국민 부양 의무가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당의 영도에 따라 수십 년간 국가를 위해 일했으니, 은퇴 뒤엔 풍족하진 않더라도 양로보험연금(노령 연금)을 받으며 여유로운 삶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인식으로 연결된다.
베이징에서 부동산 개발 업체에 다니는 40대 진씨는 한국일보에 “이른 새벽 공원에서 군무를 즐기거나 카드를 치는 노인들의 모습은 모든 직장인의 소박한 꿈이었다”고 말했다. “나도 언젠가 노령 연금이나 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즐길 수 있겠지”라는 직장인의 기대를 중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연장시킨 꼴이라는 뜻이다.
▲“누린 건 은퇴 세대, 일은 왜 우리가 더하나”
가장 반발하고 있는 세대는 20·30대 청년층이다. 허베이성에서 출판업에 종사하는 30대 장씨는 “고용주 입장에서 한 사람을 써야 한다면 이미 그 일을 오래 해 온 숙련공을 쓰지, 학교를 갓 졸업한 초짜를 쓰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8월 중국 청년실업률은 18.8%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21.3%)를 찍자, 재학생을 제외한 새 통계 방식을 도입하고도 청년 일자리 상황은 악화일로다. 가뜩이나 구직난에 시달리는 형편에서 정년 연장 때문에 일자리 세대교체는 더욱 늦어질 것이라는 게 이들의 불만이다. 홍콩 헤드헌터 기업 IMC탤런트의 데이비드 쉬 대표는 “공급 과잉 상태인 취업 시장에서 고령 인원의 잔류 기간이 늘어나면, 고용 시장 긴장감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40·50대 역시 정년 연장 결정이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은퇴 세대로부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이들의 바로 위 선배 격인 60세 이상 노인들은 1980년대에 시작된 개혁·개방 정책이 빚어낸 호황을 한껏 누렸다. 중국 경제 급성장세에 올라타 일자리 걱정 같은 건 없었다. 싼값에 사들인 아파트 가격은 연일 급등했다. 은퇴한 뒤에는 노령 연금과 자녀가 보낸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풍족하진 않지만 딱히 어려운 형편도 아니다.
이에 비해 현재 한창 일하고 있는 중년 세대는 중국 경제 하강 국면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일자리는 줄었고, 경쟁은 치열했다. 아파트 가격은 매입을 엄두도 못 낼 만큼 치솟아 있었다. 가까스로 사들인 아파트값은 최근 수년간 잇따른 부동산 업체의 줄도산 탓에 떨어지지만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51세 엔지니어 공씨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중국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나온 배당금을 현 은퇴 세대가 너무 많이 가져갔다”고 말했다. 풍요를 누린 건 선배 세대인데, 일은 왜 우리가 더 많이 해야 하느냐는 반문인 셈이다.
▲1.6명이 노인 1명 부양... “내 연금은 없을 것”
불만은 또 있다. ‘내가 은퇴했을 때 가져갈 노령 연금이 과연 남아 있기는 할까’라는 불안감이다.
중국 정부는 고용 효용성 증대를 정년 연장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인구 노령화에 따른 ‘연금 고갈’ 탓이라는 사실을 중국인 모두가 알고 있다.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은 2021년 2억6,0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9%를 차지했다. 지난해 2억9,700만 명으로 20% 선을 넘었고, 2035년에는 30% 수준인 4억2,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 무렵에는 40% 수준인 5억2,000만 명으로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노인 증가는 중국의 ‘연금 곳간’을 압박했다. 2010년부터 2022년 사이에 도시 기본 양로보험 수령 대상자는 6,300만 명에서 1억3,600만 명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현 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양로보험금 잔액은 2035년쯤 고갈될 것”이라는 게 중국사회과학원의 추산이다. 사회주의 국가가 인민에게 약속한 연금을 주지 못할 지경에 이르니 꺼내 든 카드가 정년 연장을 통한 ‘연금 누적액 보전’이었던 셈이다.
USB은행의 왕타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은 더 이상 미래 연금 수령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급격히 늘어나는 부양 인구(노인)를 생각할 때, ‘내 노후를 보장해 줄’ 연금이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연구팀에 따르면, 2020년 중국에서 노인 1명 부양에 필요한 생산 인구는 5명이었다. 그러나 2050년 무렵에는 1.6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 ‘2022년 2명’에서 50년 뒤인 2070년에는 1.3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선진국 가운데 일찌감치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과 비교해도 중국의 노인 부양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허베이성의 30대 직장인 장씨는 “지금 내 월급과 내 부모님 두 분의 연금 수령액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미래 직장인이 은퇴자들에게 줄 연금을 감당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28세 치씨는 FT에 “일이 너무 힘들어서 정년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아남는다 해도 내가 쓸 연금이 과연 남아 있긴 할까”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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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빈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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