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설립 50주년 기도문에는 “올리 성전에서 한 마음으로 희년을 준비하고자 합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명색이 그래도 한국어와 한문교사였던 나는 낱말 뜻에는 아는 체를 해 왔는데, 기독교에서는 50주년을 희년이라 하는 걸 이번에 알았다.
2024년 9월 29일에는 윌튼 그레고리 워싱턴 추기경이 집전하는 50주년 미사가 열렸다. 2주 내내 허리케인 때문에 몸에도 곰팡이가 날 지경이었는데 일요일 하루만 비가 멈춰서 다행이었다.
1974년 칼리지파크에서 시작되었고 2002년에 올리로 이전하여 지금은 대략 1250가구가 등록 되어서 함께 기도하고 미사 후에는 한국 요리로 함께 식사하는 식구라는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선지 자기 구역이 점심 봉사를 할 때면 모두가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고 식탐이 많은 나는 새벽 미사를 가도 주보에서 점심 메뉴를 제일 먼저 살피며 입맛을 다신다. 이날도 몇 날 며칠을 고생한 성모회와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친 형제 자매들 덕에 800여명이 모여 불고기, 제육볶음, 생선구이, 밥과 케이크를 나누고 라이브밴드의 연주와 함께 우리 성당 가수와 신부님까지 나선 무대는 조금은 점잖게 내숭을 떨면서도 막춤도 추면서 불타 올랐다. 행운권 추첨에 운 없는 나는 역시나 수십장을 꽝으로 날리며, 다른이들의 상품을 침 흘리며 애꿎은 뻥튀기만 뜯어먹으며 감사를 드렸다.
우리가 미국에 온 2002년에 물어 물어 찾아간 낡고 옹색한 칼리지파크에서 가을 쯤에 너무나 멋진 올리 성전으로 이사 온지가 20년이 넘었다. 옛날을 잊고 가마 타면 종 거느리고 싶다고 누군가가 이것 저것 불평을 하면, 초창기 어른들이 등 따시고 배 불러서 그런다며, 김치, 밑반찬, 텃밭 채소들을 팔은 돈 모아 그랜드 피아노랑 성당 살림살이를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지겹다면서도 헤벌쭉하며 듣는다.
어쨌든 무엇이든 50주년이라는 건 대단하다. 살다 보니 50세 생일은 지났고 앞으로 50주년이 되는 건 뭐가 있을까? 결혼 50주년 금혼식에는 금붙이를 받고 60주년 회혼식에는 다시 혼례를 올리고 다이아몬드를 받는다는데 백년해로라는 100주년에는 선물이 없단다. 하긴 그 나이에 금은보화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지만 우리 성당은 세월이 흘러서 2074년에도 아마도 누군가는 100주년 백년회로 기도문을 미사 때마다 바치면서 무엇인가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디든지 한인회와 봉사단체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워싱턴 지역에도 단체들이 해마다 새로 생기고 없어진다. 개인적 의견으론 단체를 만들 때는 그 부문에 전문가가 있어야 믿을 수 있고 투명하게 관리가 이루어진다. 한인복지센터에서 도움을 받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고마움을 느끼며 서로 도움이 되도록 살펴보고 잘 됐으면 좋겠다고한다. 전문가가 나서서 정부의 혜택인 그랜트도 분기마다 부지런하게 받아와서 여러 문화 강좌도 열어 주어서 몇 년 전부터 미술반을 즐겁게 다니고있다. 그밖에도 의료 서비스나 공공서비스 혜택을 많이 나눌 수 있게 해 준다. 얼마전에는 한인단체로는 최고 금액의 그랜트를 규모가 아주 큰 미국 자선단체로부터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뿌듯했다. 잘 모르지만 뭔가에 도움이 되는 봉사에 뜻이 있다면 단체를 만들기보다는 내가 잘하는 것으로 기능 기부하는 조직원이 되어 자원봉사를 하면 좋겠다.
10월5일에는 한인복지센터 50주년 기념행사로 남성 4중창 크로스오버 그룹 라포엠 공연을 다녀왔다. 캐피탈 원 공연장은 시설도 좋고 좌석도 괜찮았다. 2시간 30분 동안 여러 곡을 부지런히 정성을 다해 불렀고, 조금은 서툰 듯해도 순수함이 느껴지는 진행으로 4명의 하모니는 아름다웠다. 나누어준 야광봉을 흔들고 댄싱퀸에 맞춰 막춤을 추면서 아이돌 팬 클럽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 체력이 따라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끼며 돌아왔다. 밤새도록 귀에선 스피커 소리가 왕왕 울려대고, 어깨와 두 팔은 들 수가 없고 속은 울렁거려서 다음 날 오후까지 우리는 기절한듯 널브러졌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이곳에 한국 가수가 온다 하면 누가 오든 가려고 하는데 항상 다녀오면 아쉬움이 남는다.
오케스트라나 밴드가 없어 노래방 MR 반주로 노래를 부르려니 가수의 목소리는 파 묻힌다. 그래선지 기타를 직접 치는 7080 가수들의 공연이 조금 나았다. 밴드가 필요한 발라드 가수나 트로트 가수의 공연은 반주 음향시설 때문에 항상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터넷으로 안 되는게 없는데, 현지 밴드들과 온 라인으로 리허설을 하거나, 최소한의 밴드들이 동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미국 사는 우리는 공연에 목 마르니 찬밥 더운밥 가릴것 없이 누가 오든 무조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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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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