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 수퍼마켓에서 시작한 스페니쉬 공부를 ABC 리쿼 알바에서도 이어갈 수 있었는데 이는 데킬라 덕분이다. 요즘 가장 핫한 술로 떠오르고 있는 데킬라는 가히 춘추전국의 시대다. 신참들은 술꾼들을 유혹할 작명에 신경쓸 수밖에. 술병만 들여다 봐도 단어공부가 된다.
Milagro(미러클, 기적), Creyente(믿는자), Ocho(여덟), Los Lobos(늑대들), Casa Azul(푸른집), Patron(두목), Casa Dragones(용의 가문), Avion(비행기), Dulce Vida(달콤한 인생), Eterno Verano(끝없는 여름), Cazadores(사냥꾼들), Corazon(심장), Dos Primos(두 사촌), Tres Agaves(삼게, 아니 삼아가베)…
데킬라의 원료가 아가베라 부르는 푸른 용설란이다 보니 푸른색 아술(azul)이 자주 눈에 띈다. 도자기 술병으로 유명한 클라세 아술(Clase Azul)은 한국 갱영화에서도 배경으로 볼 수 있었다. 인터넷 장터에서 빈 병이 몇십불에 거래된다. 데킬라 산지인 할리스코의 고산지대를 강조하는 알토스(Altos), 수탉의 며느리발톱(영어로 spur)에 해당하는 에스폴론(Espolon)도 흥미롭다. 발톱에 칼날이나 유리조각을 붙인 닭싸움은 멕시코의 국민오락이다. 그 잔인함 때문에 미국에서는 불법이 됐지만 멕시코에서는 허용되는 지역이 많다.
대개는 모양과 색상이 요란한 데킬라 술병들 가운데 그저 투명하고 참하게 생긴 병이 오히려 눈에 들어왔다. 도스 옴브레스(Dos Hombres), 두 남자! 병목에 걸린 작은 딱지에 소개글이 있어 읽어보니 나도 아는 두 남자다. 몹시도 재미있게 본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들이다. 마약 연금술사가 된 화학선생님 월터 화이트 역의 브라이언 크랜스턴과 그의 고등학교 제자로 동네 양아치에서 ‘제약업체’ 파트너가 된 제시 핑크맨 역의 아론 폴. 연기로 만난 두 배우가 의기투합해서 만든 술이다.
정확히는 데킬라가 아니고 메스칼(Mezcal)이다. 데킬라는 프랑스의 꼬냑, 샴페인처럼 특정지역의 소산만 쓸 수 있는 이름이다. 멕시코 할리스코주의 화산지대에 자라는 블루 아가베로 현지에서 생산한 제품에만 지명인 데킬라를 쓸 수 있다. 메스칼은 푸른 아가베 아닌 다른 아가베로 만들고 주로 오아하카 지역에서 나온다.
데킬라 시장의 또다른 특징이 바로 이런 유명인사, 연예인 셀럽들의 참여다. 소주가 순해지면서 이효리, 지수, 아이유가 모델로 얼굴을 파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사업에 나선다.
그 선두주자는 이 시대의 미남 조지 클루니의 카사미고스(Casamigos)다.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아도 들어는 본 적이 있을 두 단어 카사와 아미고의 합성어다. 친구의 집. 고급 데킬라 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장악해 왔는데 작명 덕도 봤을 것이다. 2013년 동업 투자로 시작해서 2017년 영국의 다국적 대기업 디아지오(Diageo)에 미화 10억달러에 넘기는 대박을 터뜨렸다.
카사아미고스의 성공신화는 할리우드에 데킬라 투자붐을 불렀다. 너도 나도 앞다퉈 자기 이름을 걸고 뛰어들고 있다.
프로레슬러에서 연기까지 대중의 인기를 사로잡아온 ‘더 록(The Rock)’ 드웨인 존스의 테레마나(Teremana)가 후속주자에 속한다. 땅을 뜻하는 라틴어와 혼을 뜻하는 폴리네시아어를 합쳐서 대지의 혼이라나. 스페니쉬처럼 그럴 듯하게 들린다. 무난한 중급 가격대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보다 앞서서 데킬라에 뛰어들었던 아이돌 출신의 가수 저스틴 팀벌레이크 역시 재미를 봤다. 2009년에 시작한 자기 사업을 키워 2014년 진빔 위스키에 성공적으로 매각했다. 새 이름 ‘사우사901’ 홍보에 위아래 라임색 깔맞춤 복장으로 그를 만나볼 수 있다.
NBA의 신화 마이클 조단이 나이키 운동화 말고도 데킬라에 손댄 걸 아시는지. 2020년에 등장한 트로피 모양의 고급 라인 ‘싱코로(Cincoro)’가 이 매대 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동업자 다섯 명을 뜻하는 싱코(5)와 부의 상징 황금 오로(Oro) 합성어다. 오금? 백불 대가 넘는 가격에 오금이 지린다. 싱코로 이름은 모르지만 마이클 조단의 데킬라가 어디 있느냐고 찾는 손님들이 있다.
숟가락 대지 않는 곳이 없는 관종사업가 일런 머스크가 이 시장을 그냥 지나칠리 없다. 번개 모양의 고가 테슬라 데킬라가 한정품으로 나온다. ‘테슬라킬라(Teslaquila)’로 상표등록을 시도했는데 멕시코 당국이 허락하지를 않았다.
이밖에도 록밴드 AC/DC의 썬더스트럭(Thunderstruck), 배우 찰리 쉰을 영입한 돈 수에뇨스(Don Suenos), 추억의 락밴드 밴 헤일런의 리드보컬 새미 헤이거와 스타 셰프 가이 피에리가 동업한 산토 데킬라(Santo Tequila), 싱어송 라이터 닉 조나스와 미국 디자이너 존 발바토스가 같이 투자한 비야 원(Villa One)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여성 술꾼으로 영국 출신의 싱어송 라이터 리타 오라의 프로스페로(Prospero)가 가세하고 있다.
이렇게 마케팅이 핵심인 업종 특성이 스타들을 데킬라 시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한편 스타의 이름값이 한 몫 하는 셀럽 마케팅에는 위험도 따른다. 티비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타 크리스 노스가 키워온 암브라르(Ambhar)가 그랬다. 잘 나가다가 2021년 그를 겨냥한 미투 폭로가 쏟아지면서 거액의 매각협상이 무산되기도 했다.
이상 술 한 방울 입에 못 대면서 손님들한테 너무도 당당하게 술을 추천해주던 일년 알바의 업무지식이었다. 알건 다 알아서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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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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