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2년 이민 온 후로 약 2천여 꼭지의 글을 썼다. 글속에는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두번의 뼈아픈 실수를 반성한다. 뭔가 찝찝했지만 한때 저만 속았든지 그분들이 능숙했든지 ‘관심있게 지켜볼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아주 짧은 평(評)이었지만 그동안 수백명의 정치인에 대한 논평 중에서 극도의 죄책감마저 든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착각하게 만든 사람은 김관진 전 국방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약간의 시차가 있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또 한번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다.
오늘날 ‘긴급조치 9호’가 뭔지 들어보지도 못한 국민들이 70%이상이요, 그 세세한 내막을 아는 국민은 이제는 채 2%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벌했던 유신시절에는 시골다방에서 대통령을 빼고 ‘박정희’라고 말했다고 감옥에 끌려가기도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이 말 한 마디 거슬리게 했다 하면 그날 저녁에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야만 했다. ‘땡전뉴스’ 전에 ‘땡박뉴스’도 있었지요. 당시의 신문 1면에는 어김없이 박정희 대통령사진을 1면 좌측 상단에 게시해야 했는데, 사진설명에 ‘박 대통령’이라고 해야 할 것을 식자공의 실수로 ‘박통령’으로 신문이 나간 뒤에 경인일보 사장이 하루 아침에 두들겨 맞고 회사에서 쫓겨났다는 걸 우연히 20여년전 워싱턴에서 당사자로부터 직접 증언을 들었다. 가히 ‘동토의 왕국’이었다.
1972년 유신정권하에서는 이전의 경제성장에 자신감을 얻어서였든지 국민들은 그저 밥만 먹여 주면 ‘행복한 돼지’ 취급을 받아야 했고,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고 ‘인권’을 이야기하는 순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서 구속 처리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것이 이른바 ‘긴급조치’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과(後過)는 오늘날까지도 치루고 있다고 본다. 바로 윤석열 정권의 탄생과정에서 보여 준 권력을 향한 수많은 변신과 배신, 집권후에 이어지는 전횡과 기만은 거의 닮은꼴이다. 역사에 공(功)과 과(過)를 평가하자고, 또는 해야 한다고 한다. 언뜻 옳은 소리처럼 들린다. 이는 교묘하게 공과 과를 버무리고 섞어버려서 죽도 밥도 아니게 가치관을 비틀어버리는 일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국가지도자의 조그만 허물(過)은 그 파장과 결과가 민족과 역사 국민들에게는 치명적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과(過)에 대한 평가가 훨씬 더 준엄해야 하는 것이다.
50년전의 일이다. 1974. 8. 15일 육영수여사 저격 사건이 있었다. 필자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하늘이 무너진 줄 알고 장례식 중계방송하는 흑백 TV앞에서 눈물을 흘렸었다. 지금도 그런 감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 때까지는 남편인 박정희 대통령의 흑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깜깜이였다는 게 핵심이다. 생물학적으로 눈은 떴지만 세상을 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50년이 흘렀다. 역사는 진보할 것이라는 허망(虛望)을 또 실감해야 하는가, 1974년 당시, 김건희 영부인의 실제 나이가 두 살 밖에 안되었으니 몰라서 그런 것인가. 모르면 책이라도 사서 읽어 보던가,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걸 투기티데스는 기원전부터 말했다.
그러나 인간의 어리석음은 그걸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비슷한 남편에 비해서 너무나도 다른 부인이다. 이제는 남편 한사람으로도 부족해서 안팎으로 날마다 시끄럽다.
한달 차이를 두고 1974. 9. 26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헌정 회복, 긴급조치 전면 무효화, 국민의 기본권, 서민대중 경제정책을 요구하는 제1 선언이 발표되었다. 9.26일은 그 50주년이다.
필자는 역시 그런 일이 있는 줄도 거의 몰랐다. 최근에 이선명 전 함석헌사상연구회 창립자가 돌아가셨다. 그가 바로 반유신 선봉의 언론인이다. 또한 장기표 반유신 재야인사의 부음소식을 들었다. 유신의 흑역사를 기억하는 주변의 소수마저 한사람씩 이제는 세상과 멀어지고 있다.
그 영원할 것 같은 유신도 깨어난 시민들의 행동하는 양심앞에서 막을 내렸다. 단 한 사람으로 야기된 일이었다. 그 한 사람이 사라지니 국민들은 마치 연기처럼 권불십년(權不十年)을 목도했다. 유신 이전 10년과 유신 이후 7년이 극명하다.
그가 그렇게도 신봉했던 결과주의는 그의 비참한 최후를 보게되면 갸웃해진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의 딸을 보란듯이 또 대통령을 만들어 주었다가 중도하차시킨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시 아주 비슷한 사람을 앉혀 놓고 나서 하루하루가 괴롭다고 탄식이다.
풍요와 사색으로 충만해야 할 이 가을에 말로(末路)가 뻔할 비참의 역사 앞에 선 국민들은 또 무슨 죄인가, 국태민안(國泰民安)이 뭔지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부부’ 때문에 이 가을 시름만 더욱 더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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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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