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행이 예상 밖 금리 인상에 나선 이유
▶역대 일본은행 총재 대부분 자산시장 거품 상태 방치 못해
▶ 무조건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
▶1989년 자산 가격 붕괴 직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리 인상하며 경기회복 싹 꺾어
▶아베 총리 시기 10년간 잠잠하다 7월 금리 인상→ 증시 폭락 유발
▶긴축 스탠스로 디플레 우려 커져
8월 5일 한국 종합주가지수는 전일 대비 234.64포인트(-8.77%) 하락하며 이른바 ‘블랙 먼데이’를 기록했다. 한국증시의 폭락을 촉발한 것은 일본증시로, 같은 날 닛케이225지수는 4,451.28포인트 폭락, 하루 만에 12.4%가 하락했다. 잘나가던 일본증시가 급락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7월 30~31일 열린 금리결정회의에서, 일본은행(BOJ)은 정책금리를 0.00%에서 0.25%로 인상, 시장 참가자들에게 강한 충격을 줬다. 특히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이 회의 열리기 직전 153.89엔 전후에서 거래되다, 8월 6일 144.97엔까지 단번에 10엔 가까이 내려간 것을 보면 시장 참가자 대부분이 일본은행의 금리인상을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러운 엔화 강세가 주가 폭락으로 연결된 이유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높아진 데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거래를 뜻한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제로 금리로 돈을 빌려, 5.5% 이자를 제공하는 미국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하면 5.5%의 이자 차익을 누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식의 거래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엔화 가치의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24년 7월 말 태평양 양안에서 들려온 뉴스는 엔 캐리 트레이드에 열을 올리던 투자자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일본 중앙은행이 예상 밖의 금리인상을 단행하며 돈을 빌리는 비용이 높아진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ed·연준)가 금리인하를 시사함으로써 엔화를 빌려 투자할 대상이 부족해질 것이란 예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의 통계 등을 통해 추정된 엔 캐리 트레이드 규모는 1조 달러 전후에 불과하지만, 엔화 약세에 베팅했던 헤지펀드가 손실을 기피할 목적으로 엔화 매도 포지션을 일거에 청산한 것이 문제가 됐다. 갑작스러운 엔화 강세의 출현으로 다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위험이 높아질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가세하며 수출주 중심의 일본증시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일본 중앙은행은 왜 금리를 인상했을까. 아직 근로자들의 실질임금, 즉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임금이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말이다.
여러 요인이 일본은행의 금리인상을 가져온 요인으로 제기되지만, 필자는 일본은행이 자산시장의 거품을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1989년부터 2000년 그리고 2008년 등 일본은행은 자산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를 때마다,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심각한 경기 침체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일본은행의 징크스를 만든 첫 번째 사건은 1989년의 자산 가격 붕괴였다. 당시 일본 경제는 역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주식 및 부동산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가운데, 소비와 투자 붐이 발생하며 1인당 국민소득은 2만5,000달러 수준에 도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도약했던 셈이다.
이 상태에 대해 일본은행 지도부는 매우 강한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예를 들어, 1989년 말까지 일본은행 총재를 지냈던 스미다 사토시는 “1989년에 접어들면서 자산시장의 버블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은 미에노 야스시 총재(재임기간 1989년 12월 17일~1994년 12월 16일)는 한층 더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그는 성악설을 주창한 순자(荀子)의 가르침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으며,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악을 예로써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인간이 타고난 태생적인 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자산시장의 거품이었다. 미에노 총재는 자산 가격이 1989년 말부터 폭락하는데도 1991년 말까지 5% 이상의 고금리를 유지해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이에 대해 연준의 연구자들은 “1989년 버블이 붕괴된 이후, 일본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만 공격적으로 내렸다면 디플레이션 악순환은 오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자산 가격이폭락할 때 디플레가 출현하는 이유는 가계와 기업이 진 부채 문제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은 대출을 끼고 구입하기에, 가격이 폭락하는 순간 돈을 빌린 사람들은 큰 부담을 짊어지게 되며 어떻게든 소비와 투자를 줄이려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가정과 기업이 함께 소비와 투자를 줄이는 순간, 기업 매출이 줄어들며 고용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결국, 1990년대 초반 주택 및 주식가격의 대폭락 사태가 출현하며 당시 일본 국내총생산의 약 3배에 이르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순간 지속적인 물가 하락의 위험을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금리를 인상해 경기회복의 싹을 꺾어 놓은 두 번째 사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금리인상이었다. 당시 일본은행 총재 시라카와 마사아키는 “2008년 3월 21일 이후 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고 회고하며, 미에노 전 총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총재에 취임한 후 미에노 전 총재가 틈틈이 손글씨로 한마디 소감을 적은 종이를 보내주었는데, 거기에는 ‘窮不困憂意不衰(궁불곤우의불쇠)’라는 순자의 명언이 적혀 있었다. ‘궁핍하여 먼저 곤궁하고, 근심하여 의(意)가 쇠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국면에서도 도망치지 말고, 도망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이 말을 되새겼다”고 존경의 마음을 표시했다.
미에다 전 총재가 일본은행 내에서 얼마나 많은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돼 길게 인용해 보았다. 문제는 시라카와 총재가 냉정한 경제 분석 속에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자신의 신조를 더 우선한 데 있다. 일본은행의 금리인상이 연이어 단행되던 2008년 상반기는 미국 연준의 금리인하가 단행되는 시기였다. 2007년 9월 미국의 정책금리는 5.25%의 고점을 찍은 후, 2008년 3월에는 무려 3%까지 인하된 상태였다. 미 연준이 금리를 신속하게 인하했던 이유는 부동산 시장의 붕괴 위험이 시시각각으로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미 주택가격지수는 2006년 말부터 하락하기 시작했고, 부동산 담보대출의 연체율은 2008년 초 3% 선을 돌파하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해외 여건이 시시각각 심각성을 더하는데,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 시라카와 총재는 “물가 하락 해소, 디플레이션 탈피가 일본 경제의 최대 과제라는 인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2008년 3월의 낮은 소비자물가(1.2%)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지표였던 셈이다. 2007년 일본경제가 1.5% 성장하면서 경기가 개선되고 있으니,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말든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게 시라카와 전 총재의 생각이었던 셈이다.
이상의 경험에 비춰볼 때, 2024년 7월의 금리인상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역대 일본은행 총재 대부분은 디플레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자산시장에 거품이 쌓일 때에는 언제든 이를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2013년 3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재임한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라는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그는 아베 전 총리와 의견을 같이하는 일종의 동반자 관계였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구로다 전 총재 시절, 일본은행은 공격적인 통화공급 확대 정책을 통해 엔화의 약세를 유도하고 주택가격의 상승을 유발함으로써 기나긴 불황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구로다의 뒤를 이은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다시 일본은행 내의 분위기에 포획된 것 같다. 그가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2000년, 일본은행의 금리인상을 단호하게 반대하는 등 인상적인 행보를 보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주변의 분위기에 쉽게 영향받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일본은행의 정책 스탠스가 더욱 긴축적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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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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