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몬·위메프 정산대란 무엇이 문제인가
▶ e커머스의 배신… 배경에 규제 공백 있어
▶대규모 유통업법 미적용 정산 제멋대로
▶경영 상황 따라 입금 무기한 연기하기도
▶납품한 판매사들 대거 파산 위기 ‘눈물’
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에 피해자들의 항의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
티몬·위메프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구영배(맨 오른쪽) 큐텐 대표가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 질의에 출석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
한국의 e-커머스 업체들인 티몬·위메프의 판매금 정산대란 사태로 규제 사각지대인 e커머스 산업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자상거래가 발달하면서 유통산업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산 대금과 관련해 소비자는 물론이고 오픈마켓 판매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사태로 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지면서 e커머스 산업 전반이 흔들릴 조짐까지 나타나는 상황이다.
■예고된 대란
내부 직원 메모를 통해 추산되는 티메프 미정산금 규모는 최대 무려 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티메프 판매자 미정산금의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인데, 큐텐 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문어발식 확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 자금 중 상당 부분은 큐텐의 무리한 인수합병(M&A)에 사용됐거나 해외 계열사 금고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e커머스 업계에 따르면 각 회사별로 정산 주기와 방식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업체가 주 정산, 월 정산을 달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유료 서비스를 사용하는 판매사들에만 빠른 정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선입금을 무기로 멤버십 가입까지 종용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e커머스 플랫폼들 중에는 정해놓은 정산 시기와 방식이 지키지 않고 자사의 경영 상황에 따라 갑자기 입금을 무기한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
정산 시스템이 제각각인 것은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은 상품이 판매된 달의 말일을 기준으로 40~60일 이내에 판매 대금을 정산하도록 의무화한다. 하지만 해당 법은 소매 업종 매출액이 연간 1,000억 원 이상이거나 일정 규모 이상의 오프라인 매장을 갖고 있는 업체들만 대상으로 한다. 결과적으로 통신판매중개업을 하는 티몬·위메프와 같은 중소형 e커머스 업체들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 실제 이와 관련해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사태 이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티몬·위메프는) 대규모 유통업법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제도적 개선, 재발 방지를 위해 사태의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보겠다”고 밝혔다.
티몬·위메프는 이러한 법의 허점을 이용해 정산을 무기로 판매자들에게 사실상 ‘갑질’을 해왔다는 평가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티몬의 정산 시기는 거래가 발생한 달의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40일 이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와 같은 정산 시기가 지켜지지 않고 미뤄진 적도 허다하다는 것이 피해를 본 셀러들의 설명이다. 위메프의 경우 매달 매출 마감일 이후 다음다음 달 7일이 정산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판매사들 입장에서는 돈을 주는 플랫폼사들이 갑이기 때문에 돈을 못 받아도 기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 정산이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태로 영세 업체가 많은 이같은 판매사들은 상당수가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
■나쁜 관행들
티몬·위메프 사태 배경에는 자본잠식 상태인 e커머스사가 판매자에게 가야할 거래액을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나쁜 관행이 있었다. 실제 티몬·위메프는 자금난에 빠지자 무리한 프로모션으로 셀러들을 유인했고 팔수록 손해인 상품권 할인까지 남발하면서 판매량 늘리기에 목을 맸다. e커머스 시장의 과도한 경쟁에서 할인 전략은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낮은 기업이 무리하게 사용하면 회사가 망할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전반에 폐해를 미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데이터 분석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는 6월부터 7월까지 티몬·위메프 사태의 일간 카드 결제 금액 추정치를 발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양사의 카드 결제액은 6월15일에만 해도 하루 53억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미정산 사태가 발생한 7월7일 직전인 6일에는 무려 897억원까지 치솟았다. 결제액이 한 달도 안돼 이렇게 급증한 것은 티몬과 위메프가 거래액을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프로모션을 단행한 결과로 분석된다. 실제 7월 초 티몬은 ‘몬스터 메가세일’을 위메프는 ‘위메프 데이’라는 이름으로 특가 행사를 개시했다. 할인률이 올라가자 저렴하게 사려는 소비자들이 몰린 것이다.
티몬의 월간 거래액을 보면 실제 이와 같은 프로모션은 더 일찍 시작된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분석기관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티몬의 월간 추정 결제액은 연초 1~3월에는 월평균 6,000억원 수준이었는데 4월에 6583억원으로 올랐다.
2분기 들어서부터 티몬이 셀러들을 대상으로 각종 프로모션을 본격화했는데 그 영향이다. 티몬·위메프 모회사 큐텐에 위시를 매각한 콘테스트로직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거래는 4월 19일에 최종 마무리됐는데 이때 큐텐이 한국 e커머스에서 돈을 빼간 만큼 이를 만회하려 무리하게 거래액을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티몬 월간 거래액 추정치는 할인 상품권 판매를 본격화한 6월에 8398억원까치 치솟았다.
프로모션 혜택을 현장에서 경험한 티몬·위메프 판매사들도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 한 셀러는 “당시 고객이 구매한 가격보다 더 많은 금액이 정산금으로 잡혀 이상했다”며 “상품기획직원(MD)에게 이유를 묻자 ‘우리가 셀러님들을 모으기 위해 마이너스 쿠폰을 붙여드리는 것’이라는 설명만 들었다”고 설명했다. 티몬·위메프 입장에서는 거래가 발생할 수록 손해인 이와 같은 구조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는 지급 불능 사태에 빠졌고 프로모션으로 거래가 늘어 받아야 할 돈이 늘어난 판매사들은 정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티몬과 위메프의 재무상황을 봐도 무리한 프로모션의 흔적이 드러난다. 위메프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2023년 판매촉진비는 370억원으로 전년(187억원) 대비 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이 1922억원에서 1385억원으로 줄었음을 고려하면 벌어들이는 돈을 줄어드는데 프로모션 비용은 도리어 증가한 것이다.
실제 이와 관련해 구영배 큐텐 대표는 30일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전자상거래에서 가격경쟁이 중요 이슈가 됐고 알리·테무로 경쟁이 격화됐다”며 “판매 대금을 가격 경쟁 프로모션에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구 대표 입장에서는 프로모션을 통해 거래량이 늘면 유용할 수 있는 거래액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티몬·위메프의 물류를 담당하는 큐익스프레스에도 도움이 돼 나스닥 상장에 혜택이 될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e커머스 시장에서 할인 등에 자본을 투입하는 것은 돈이 많은 고래만 사용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과거 티몬·위메프와 함께 소셜커머스 3인방으로 묶였지만 이제는 급이 다르게 성장한 쿠팡은 일본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으로부터 무려 27억달러(3조7,000억원)를 투자 받았다. 쿠팡은 이 돈으로 프로모션은 물론이고 국내에 다른 e커머스 업체들은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배송 인프라를 갖추면서 압도적 선두 업체로 성장했다.
그런데 큐텐의 경우 이와 같은 자본력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새우가 고래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프로모션 할인을 하다 몰락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e커머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구영배 큐텐 회장은 글로벌 e커머스를 꿈궜다는 점에서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보다 꿈이 더 컸다”며 “그런데 그만한 자금력도 없는데 다소 무모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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