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전쟁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경제와 안보 대전(大戰)이다. 최전선은 동북아시아다.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은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숨 가쁘게 펼쳐지고 있다. 주요국들은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전략산업의 주도권 장악과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을 뿌리고 통상 마찰도 불사하고 있다. 글로벌 선도 국가, 1등 기업이라도 안주하면 순식간에 도태된다. 포브스가 집계한 전 세계 상장기업 종합 평가에서 삼성전자는 전년(14위)보다 7계단 떨어진 21위에 그쳤다. 때마침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 경제의 기적이 끝났는가’라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글로벌 안보 전쟁은 ‘냉전의 회귀’, 즉 신냉전·블록화와 함께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동북아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 대치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특히 핵 강국인 러시아와 핵·미사일 고도화에 나선 북한이 ‘상호 군사원조’를 골자로 하는 조약을 체결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위기와 기회의 기로에 서 있다. 잘 대처하면 ‘5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잘못하면 구한말 때처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불행한 사태를 맞을 수 있다. 우리가 두 개의 전쟁에서 생존해 재도약과 평화를 쟁취하려면 정치를 조속히 복원하고 국력을 결집해야 한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권은 만사태평이다. 여야는 글로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입법 뒷받침에 나서기는커녕 여야 간 정쟁과 당내 권력 싸움의 늪으로 뛰어들고 있다.
양대 정당이 각각 7월, 8월에 치르는 ‘두 개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진흙탕 싸움, 딱 그 수준이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8·18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재명 전 대표는 대표직 연임 도전에 나섰다. ‘또대명(또 대표는 이재명)’ 풍문을 현실화해 ‘1극 체제’를 완성하려는 것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이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기 위한 방탄용 포석으로 풀이된다. 제1당이 경제 살리기 입법을 뒷전으로 미루고 방탄법과 포퓰리즘법을 밀어붙이는 것은 몰염치한 행태다.
더욱 절망스러운 광경은 집권당에서 벌어지고 있다. 7·23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 나선 나경원·원희룡·윤상현·한동훈 후보 등은 출마 선언을 통해 4·10 총선 참패에 대한 반성과 보수 쇄신 방안 등을 언급했으나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민생 살리기를 위한 정책·비전도 내놓지 못했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내걸어 “저출산, 연금 개혁 등 시대적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을 앞으로 제시하겠다”고 말했으나 수박 겉 핥기 수준에 그쳤다. 한 전 위원장은 제3자의 특검 추천을 전제로 ‘채상병특검법’을 수정 발의하겠다고 밝혀 당권 주자 간의 설전을 초래했다. 다른 주자 측은 “한동훈 특검도 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맞받아쳤다. 이러니 전대가 ‘윤심(尹心)’과 ‘어대한(어차피 당 대표는 한동훈)’ 논란 속에 줄 세우기 정치로 흐르는 것이다.
당권 도전자들은 당정 관계 재편 구상과 관련해 선배들의 성공과 실패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2014년 여당인 새누리당 전대에서 대표로 선출된 김무성 대표는 상당 기간 여야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렸다. 하지만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김 대표의 정면충돌은 여당의 총선 참패와 박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1997년에도 여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대립했다가 대선에서 패배했다. 반면 2002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을 공격하지 않고도 개혁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후보 단일화 드라마를 통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마찰을 자제하면서도 적정한 차별화를 통해 정권 재창출 고지에 올랐다.
무기력한 정부·여당을 쇄신하는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수평적 당정 관계 구축을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 처절하게 고심해야 한다.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은 글로벌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면서 몸을 던져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실력과 도덕성을 갖추고 열정적 리더십을 보여줘야 글로벌 전쟁의 사령탑을 맡아 승리를 이끌 수 있다. 이게 바로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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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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