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리기 시작한 ‘바이주’ 독주 시대
▶중국 최애 술 단연 ‘바이주’였으나 최근 브랜디·위스키 조용한 약진
▶혼술 문화 확산에 MZ 사이서 인기…브랜디 매출 2년 새 20억달러 껑충
▶ 중 시총 1위 마오타이, 하락세 뚜렷
▶외국인 가장 많이 팔아 주가 15%↓
▶‘마오타이 라테’ 등 매력 어필 시도
▶‘메이드 인 차이나 위스키’ 시대 대비 서방 주류 회사, 현지에 양조장 가동
14억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술은 역시 ‘바이주(白酒·백주)’다. 부담 없이 자주 즐기는 술은 맥주이지만, 중국 전통주인 바이주만큼 특별한 대접을 받지는 않는다. 중국인들에게 바이주는 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중국의 설인 춘제 같은 명절에 고향을 찾는 중국인들 손엔 빠지지 않고 바이주가 들려 있다. 모처럼 ‘가족애’를 확인하는 자리를 맥주로 축하하긴 섭섭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자리에서 꺼내든 바이주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자, 당신과 ‘관시(關系·인맥)’를 맺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직장 상사에게 선물한 고급 바이주에는 “잘 부탁한다”는 ‘뇌물’의 뜻도 은근히 담겨 있다. 오죽하면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 초기 강력한 부패 척결 운동을 벌이자 중국 주요 바이주 업체 매출이 급락했을까. 이렇게 중국 주류 시장을 완벽히 장악해 왔던 바이주의 철옹성에 최근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브랜디와 위스키 같은 양주가 색다른 술에 목마른 중국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중국 주류 시장에 치고 들어오면서다. 중국 명품 시장 전문 매체 징데일리는 “중국 젊은이들의 음주 문화 변화로 중국이 바이주와 작별을 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위스키 시장 3년 내 88% 성장
중국 시장조사업체 다쉐컨설팅에 따르면 2022년 중국 증류주 시장에서 바이주의 매출은 6,620억 위안(약 126조 원)으로, 전체의 93%를 차지했다. 브랜디(3%)와 위스키(2%) 보드카(1%)가 뒤를 이었지만, 바이주 매출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만 시장 추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브랜디와 위스키는 ‘조용한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자료를 보면 2019년 69억 달러(약 9조5,000억 원)였던 중국 내 브랜디 매출은 2020년 70억 달러(약 9조7,000억 원), 2021년 90억 달러(약 12조5,000억 원), 2022년 90억 달러로 코로나19 사태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했다. 위스키 역시 2019년 15억 달러(약 2조 원), 2020년 16억 달러(약 2조2,000억 원), 2021년 22억 달러(약 3조 원), 2022년 22억 달러로 선전을 거듭했다. 실제 위스키 조니워커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주류 회사 디아지오는 2022년 상반기 중화권 지역 매출이 2021년 같은 기간 대비 9% 늘어나기도 했다.
향후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로모니터는 2023년 기준 향후 3년간 중국 내 위스키와 브랜디 매출이 각각 88.3%, 30.6%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바이주 매출은 8.5%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증류주 시장에서 바이주가 차지했던 절대 강자의 지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중국 주류 시장에서 가장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나라는 단연 ‘코냑(프랑스 코냑 지방에서 생산된 브랜디)’을 앞세운 프랑스다. 다쉐컨설팅이 조사한 국가별 대(對)중국 주류 수출 비중을 보면 2022년 상반기 기준 프랑스가 37.2%로 1위였고, 영국(9.0%), 칠레(8.3%), 일본(5.0%), 독일(4.8%) 등이 뒤를 이었다.
중국은 최근 유럽연합(EU)의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인상 결정에 맞서 유럽산 브랜디에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전기차 무역 전쟁’에 ‘양주 관세’로 맞불을 놓겠다는 게 일견 뜬금 없어 보이지만, 중국 시장에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코냑업계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EU 중심 국가인 프랑스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중국 Z세대, 위스키 칵테일 ‘혼술’ 선호
중국 양주 시장은 MZ세대가 키우고 있다. 중국 주류 전문 온라인 플랫폼 빌리언보틀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바이주를 가장 좋아하는 중국인의 평균 연령은 45세로 나타났다. 20·30대는 전체 바이주 소비자의 20%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중국 위스키 소비자 중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47%에 달했다.
수년 사이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혼술’ 문화가 바이주 대신 위스키를 찾게 한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다쉐컨설팅은 “지난해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서 ‘칵테일 배달’이란 해시태그(#)가 112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며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한 도구로 위스키가 소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주는 여러 사람이 모여 먹는 술이란 인식이 강한 반면 혼자서도 홀짝홀짝 즐길 만한 위스키 칵테일이 중국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뜻이다. 징데일리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집에 있어야만 했던 MZ세대들이 자기 만족을 위해 외국 주류에 대한 지출을 늘렸다”고도 분석했다.
▲위기의 마오타이...’바이주 라테’로는 한계
반대로 바이주의 대명사이자 중국(홍콩 제외) 주식 시장에서 시가총액 1위 기업인 구이저우마오타이(이하 마오타이)의 추락세는 심상치 않다. 중국 바이주 가격 정보 플랫폼 진르주자에 따르면 마오타이 주력 상품인 53도짜리 페이톈 500mL제품의 도매가 평균은 지난달 14일 기준 병당 2,230위안(약 42만 원)을 기록했다. 이는 석 달 사이 17% 가까이 떨어진 가격이다.
주가도 동반 하락 중이다. 지난달 21일 상하이증권거래소에서 마감된 마오타이 주가는 1,471위안으로 올해 들어서만 약 15% 하락했다. 2020년 중국공상은행을 제치고 시총 1위에 올랐지만, 조만간 최정상 타이틀을 내놔야 할지도 모를 판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마오타이는 외국인 투자자가 가장 좋아하는 기업으로 평가돼 왔지만, 지금은 외국인이 가장 많이 내다 판 종목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주류 업계에선 향후 중국에서 바이주 시장 규모는 서서히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시장조사업체 아이미디어리서치는 지난해 바이주 시장 규모가 2022년에 비해 16.5% 성장했을 것으로 추산했지만, 올해는 10.2%, 2025년과 2026년에는 6%대로 성장 폭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마오타이도 청년층 다가가기를 시도하고 있다. 2022년 마오타이는 우유 1㎏당 마오타이주 50g을 섞어 만든 알코올 도수 3도짜리 ‘바이주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출시 뒤 1년간 1,000만 개가 팔리는 등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에는 기업 간 컬래버 유행을 타고 중국 토종 브랜드 루이싱 커피와 함께 바이주를 첨가한 ‘장샹라테’를 출시했다. 38위안(약 7,200원)짜리 이 커피는 출시 첫날에만 540만 잔이 팔리며 대히트를 쳤다. 마오타이는 곧바로 유명 초콜릿 브랜드 도브와 협력한 ‘마오타이 초콜릿’도 내놨다. 다만 이런 마케팅 전략이 청년층의 호기심을 잠시 사로잡기는 해도 주력 제품인 바이주 그 자체의 소비 확장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위스키 시대 온다
바이주 독점 시대의 종말을 예감한 서방 주류 회사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 위스키’ 시대 준비에 돌입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로열샬루트로 유명한 글로벌 주류기업 페르노리카는 중국 남서부 쓰촨성 어메이산 지역에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 원)를 투자해 위스키 양조장을 지었다. 디아지오도 5억 위안(약 947억 원)을 투자해 지난해 윈난성 다리시 얼위안현에 싱글몰트 위스키 양조장을 가동했다.
쓰촨성 어메이산은 깨끗한 자연 환경과 물맛으로 유명한 곳이다. 중국 최대 생수 브랜드 ‘눙푸산촨’의 수원지이기도 하다. 얼위안현 역시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지역이자 중국에서 일곱 번째로 큰 담수호인 얼하이의 수원지다. ‘중국의 좋은 물로 만든 위스키’라는 장기적 마케팅 전략까지 염두에 둔 선택이다.
BBC는 서방 주류 회사가 짓고 있거나 계획 중인 양조장이 30~50곳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디아지오 중국지사의 아툴 차파월 이사는 BBC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의 싱글몰트, 브랜디, 위스키 수요는 활력이 넘친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 공간은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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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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