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더 유명한 작품을 제치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싶은 이들과 중년층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 남겨진 사람들과 떠나간 사람의 이야기가 솔직하게 조명되는 탓이다. 이 소설은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어 화려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준다. 갑자기 죽음이 찾아온다면 고통으로 허물어지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정신없이 살아가면서 무엇에 포커스를 둬야할지 조심스럽게 짚어보는 시간을 보장한다.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타인의 시각으로 시작된다. 판사였던 이반의 부고소식을 접한 그의 동료들은 장례식에 참석해 미망인을 위로해주는 게 성가시다고 생각한다. 더 오르고 싶은 위치에 연연하며 감정은 메마르고 스스로에게 멀어지는가. 죽은 이반의 공석을 누가 차지하게 될 것인지, 연봉이 얼마나 올라갈 지 그들은 계산한다. 또 만난김에 카드놀이에 더 신경쓰는 일은 어느 직장이거나 관계없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위선과 속물성을 담고 있는지 여과없이 보여준다.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이반의 아내는 연금을 더 받을 방법이 따로 있는지 남편 친구에게 묻는다. 무척 현실적이며 남편에 대한 사랑따윈 중요하지 않은 여자로 보인다. 이런 19세기의 모습은 21세기에서도 익숙하니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건지 원래 인간속성이 그런건지 속상하다.
이반 일리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가. 이외로 그는 판사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공사(公事)가 분명하며 충실했다. 귀족가문의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얻고 명예와 출세를 위해 전진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갑자기 매사에 트집을 잡으며 화를 잘내는 아내의 성격에 놀라며 불화로 치닫자 피하는 게 상책이라 여긴다. 집에 있는 시간을 가능한 줄이고 일 중독에 빠져 연봉이 오르지만 생활비가 늘 모자란다. 그러다 생각보다 많은 연봉의 자리를 갖게되고 꿈에 그리던 집을 구입해 직접 인테리어를 구상하고 고급스럽게 치장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최상류층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찾게 하는 사교활동에 아내와 딸과 함께 귀족의 체면을 지키는 일에만 유일하게 일치된다. 허영과 사치로 남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에 힘쓰는 가족의 모습이 안쓰럽다.
파상풍이었을까? 이반이 직접 골랐던 멋진 장식품에 사고로 찔린 옆구리의 극심한 고통은 돌이킬 수 없게 깊어진다. 그러면서 자신은 비리를 저지르지도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왜 마흔 중반 나이에 죽음의 판결을 받아야 하는지 분노하며 극도로 괴로워한다.
오직 자신의 사그러져 가는 육체를 돌봐주며 순수하게 대하는 하인 게라심에게만 큰 위안을 얻는다. 이반의 통증을 덜어주기 위해 그의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오랫동안 올려놓고 상냥하게 대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마침내 이반이 도리에 어긋나게 살았다며 후회한다. 남들에게 승승장구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으로 보이겠지만, 정작 자신은 현실을 회피하고 허위와 거짓으로 살았던 것을 인정하며 반성한다. 아내의 권유로 사제에게 성찬받으며 살아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잠시 갖지만 이내 절망의 파도에 묻힌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와서 눈물로 자신의 손에 입맞춤하자 그는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친숙했던 죽음의 공포 대신 빛을 보는 순간 기쁨이 가득하다. 이반은 ‘이제 죽음은 끝났다. 이제 죽음은 없다’고 말하고 숨을 거둔다.
죽음이 지나간 새로운 세상에서 그는 마침내 사랑하는 법을 배우거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을까.
이 책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를 질문한다. 언젠가 오는 죽음 앞에 무릎 꿇지말고 후회없이 이반과 달리 도리에 맞게 사는 게 뭘까. 게라심같은 사람이 내곁에 있는지 살펴보기 전에 내가 그처럼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인지 묻게 됐다. 대체가능한 지위와 물질에 연연해 말고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을 내려놓았다.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톨스토이의 메세지가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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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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