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 지갑 닫자 가격인하로 ‘밀당’
▶ 팬데믹 저축 고갈·이자 부담 높아져
▶인플레이션 현상 종료 의미는 아냐
가파른 물가 상승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서 소매 업계가 가격 인하로 소비자와의 ‘밀당’을 시도하고 있다. [로이터]
대형 소매 업체들이 드디어 소매 가격을 내리기 시작했다. 치솟는 물가에 장보기조차 부담스러웠던 소비자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이다. 최근 일부 대형 소매 업체를 중심으로 가격 인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소비자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출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소매 가격 인하 움직임과 원인, 그리고 전반적인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했다.
■소비자 지갑 닫자, 가격 내려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는 최근 주력 전기 차종인 머스탱 마크-E 출시 가격을 17%나 인하했다. 대형 소매 업체 타겟은 세제, 위생용품, 반려동물 음식을 포함, 5,000여종에 달하는 상품을 대상으로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경쟁 소매 업체 월마트도 이에 질세라 일부 상품 가격을 내렸는데 캐릭터 인형인 스퀴시말로우와 수영 고글의 가격은 무려 40%나 깎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나타나고 있는 소매 가격 인하 움직임과 이를 이끈 소비자 지출 감소는 팬데믹 직후 나타난 가파른 인플레이션이 전환점을 맞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매 가격 인하의 공은 소비자들에게 있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지출을 중단하지 않았던 소비자들이 물가 급등의 최대 원인 제공자였다. 그러나 이제 너무 오른 물가를 부담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 매출 하락을 우려한 소매 업계가 경쟁적으로 가격 내리기에 나선 것이다.
컬럼비아 경영대학 마크 코헨 교수는 “기업들이 과도하게 가격을 올린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라며 “매출이 드디어 둔화하기 시작했고 하락 우려마저 나오자 이를 자각한 기업이 서둘러 가격을 내리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소매 업계 전반 가격인하 움직임
가격 인하 움직임은 소매 업계 전 부문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전국 규모 소매 체인점에서 식료품, 일반 잡화, 미용용품, 가정용품에 이르기까지의 상품에서 인하된 가격표를 볼 수 있다. 3월과 4월 사이 소비자 가격 지수를 보면 빵, 우유, 닭고기류 등 좀처럼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장바구니 물가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립형 가구 소매업체 아케아의 경우 이미 지난해 세 번이나 가격 인하를 실시한 바 있다. 가전제품 체인점 베스트바이도 지속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있으며 공예품 전문 소매업체 마이클스는 스티커, 캔버스, 티셔츠 등 5,000여 상품의 가격을 내렸다. 가격 인하 움직임은 패스트푸드 업계로도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인 맥도널드, 버거킹, KFC 등은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를 유치하기 위해 5달러 메뉴를 다시 추가했다.
맥도널드 USA 조 얼링거 대표는 “미국 전역의 소비자들이 힘들게 번 돈을 어디에 지출할지 신중히 고민하고 있다”라며 “가맹점들과 함께 가성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향후 운영 방침을 설명했다.
■자동차 업계 판매 부진 심각
소매 업계가 가격을 줄줄이 내리는 이유는 그동안 돈을 물 쓰듯 하던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 쌓인 저축이 이제 서서히 바닥을 보이고 있고 그 사이 이자율까지 치솟으면서 지갑을 열기 전 두 번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소비자들이 지출을 가장 많이 줄이는 부문은 주택, 자동차, 가전제품 등 고가 상품이 주를 이루고 있고 패스트푸드나 신발류 등 기호 상품 구입을 줄이는 소비자도 많다. 결국 매출이 전과 같지 않다고 판단한 소매 업계가 고객을 다시 유치하기 위한 전략으로 가격 인하 카드를 꺼낸 것이다.
가장 심각한 매출 부진을 겪는 부문은 자동차 판매 업계다. 팬데믹 직전인 2020년 1월 약 380억 달러까지 떨어졌던 미국 신규 자동차 판매 규모는 팬데믹이 정점에 이뤘던 2021년 1월 약 580억 달러 규모로 급증했다. 지난해 1월까지만 해도 비슷한 규모를 유지했던 자동차 판매는 올해 1월 약 460억 달러로 급감하자 이에 두 손 든 자동차 업체들이 줄줄이 가격 인하에 나섰다.
■인플레이션 종료는 아냐
소매 상품을 중심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현상이 인플레이션 종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택, 의료, 보험 등 서비스 부문에서는 여전히 가파른 가격 오름세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부문은 최근 임금 인상이 인상된 근로자들에게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가격을 쉽게 낮추기 쉽지 않은 부문이다. 전반적인 소비자 물가가 작년보다 약 3.4% 오른 데 반해 일부 서비스 부문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두 자릿수 비율의 가파른 상승을 보이고 있다.
일부 상품 가격이 하락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가계부에 도움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일부 상품은 여전히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계산대에서 ‘전보다 돈을 덜 썼다’라고 느끼기에 이르다. 컬럼비아 경영 대학 마크 코헨 교수는 “인플레이션 하락은 매우 점진적으로 이뤄진다”라며 “소비자가 인플레이션을 느끼는 여러 요인이 있는데 이 중에는 여전히 가격이 오르는 임대료, 의료 보험료, 전기요금, 대학 등록금 등도 포함된다”라고 설명했다.
■경제 성장 동력 잃고 있음 시사
소비자 지출 감소와 가격 인하 현상은 경제가 지난해 보였던 성장 동력을 잃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비자 지출이 계속 감소할 경우 Fed의 연말 기준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인플레이션 하락 속도에 따라 일부 경제학자는 빠르면 9월 기준 금리 인하 가능성도 제기한다.
하지만 섣불리 금리 인하 시기를 예측하기에는 아직 경제 전망이 불확실하다. 최근 발표된 고용 지표에 따르면 지난달 약 27만 2,000개의 일자리가 추가됐는데 이는 기존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수치로 경제 성장이 여전히 견고함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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