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전증 교수들 “환자 먼저 살려야”…시민단체·병원노동자들 “명분없다” 비판
▶ 서울의대교수들 “중증진료 차질없게 하겠다”면서도 ‘무기한 집단휴진’ 방침 확인
▶ 진료취소 제대로 안돼 ‘혼선’, 의협 휴진일 휴진 신고 4%뿐…참여율 저조 관측
의료계 집단휴진 계획...환자들 반응은 (서울=연합뉴스)
의료계의 집단휴진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휴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단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단 휴진에 명분이 없다는 시민단체와 환자단체, 병원노동자들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지만, 의료계는 정부에 태도 변화를 촉구하며 집단행동을 멈추지 않을 기세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환자들에게 사과하면서도 17일(이하 한국시간) 시작하는 무기한 휴진을 강행할 뜻을 밝혔지만, 예약 변경 통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환자들은 자신의 진료가 취소될지 명확지 않은 상황에서 불만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의료계가 투쟁 의지를 높이고 있지만, 실제 휴진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큰 혼란이 발생할 정도로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도하는 휴진일인 18일에 맞춰 휴진하겠다고 신고한 병의원은 전체의 4% 수준에 불과했다.
◇ 분만병원·아동병원 이어 뇌전증 전문교수들, 의협 휴진 불참 선언
14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분만병의원협회와 대한아동병원협회에 이어 뇌전증지원병원 협의체(위원장 홍승봉)가 이날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집단휴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협의체는 대학병원의 뇌전증 전문 교수들이 모인 단체로, 의사들의 단일대오에 균열이 가는 모습이다.
협의체는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내 "뇌전증은 치료 중단 시 신체 손상과 사망의 위험이 수십 배 높아지는 뇌질환으로 약물 투여 중단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며 "협의체 차원에서 의협의 단체 휴진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의협의 단체휴진 발표로 많은 뇌전증 환자와 가족들이 혹시 처방전을 받지 못할까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며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은 갑자기 약물을 중단하면 사망률이 일반인의 50-100배로 높아진다"고 했다.
협의체는 의협 등의 집단행동과 관련해서는 "환자들의 질병과 아픈 마음을 돌보아야 하는 의사들이 환자들을 겁주고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며 "잘못이 없는 중증 환자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주지 말고, 차라리 삭발하고 단식을 하면서 과거 민주화 투쟁과 같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정부에 대항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협의체의 휴진 불참 선언에 대해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입장문을 내고 "의사의 기본을 지키는 참 의사의 결정을 지지하고 환영한다"며 "상식과 책임감으로 행동하는 의사 선생님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앞서 분만병의원협회가 진료를 유지하겠다고 밝혔고, 대한마취통증의학회도 필수적인 수술에 필요한 인력은 병원에 남아 진료를 지원하겠다고 입장을 표했다.
전날에는 전국 120여곳 아동병원이 속한 대한아동병원협회가 "의협의 투쟁에 공감하지만 환자를 두고 떠나기 어렵다"며 진료를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서울의대 교수들, 17일 집단휴진…의협 집단행동일 휴진 신고 병의원은 4%뿐
오는 1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가는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며 죄송하다는 입장을 표하면서도 예정대로 무기한 휴진을 시작할 방침을 밝혔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서울의대 융합관 양윤선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증·희귀질환 환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마지막 몸부림으로 전체 휴진을 결의했으나, 서울대병원을 믿어온 중증·희귀질환 환자들께 절망의 소리가 될 것이라는 걸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체 휴진이란 다른 병의원에서도 진료가 가능하거나, 진료를 미뤄도 당분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환자들의 외래 진료와 수술 중단을 뜻하는 것"이라며 "서울대병원의 진료가 지금 필요한 중증·희귀질환 환자들께는 휴진 기간에도 차질 없이 진료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대위는 동료이자 노동자인 의료연대본부 조합원들에게 "휴진 결정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의료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헤아려달라"며 "함께 환자를 돌보는 동료로서, 국립대병원 노동자로서 올바른 의료체계를 만들고자 하는 교수들의 노력에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휴진으로 인한 진료 예약 변경 업무도 맡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집단 휴진은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장 집단휴진이 코앞에 닥쳤지만, 이런 상황에서 환자들에 대한 진료 취소 통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휴진을 계획하고 있는 교수들이 일부 직접 전화를 돌리며 진료 예약 취소를 알리고 있지만, 노조는 이런 경우가 전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환자 커뮤니티에는 자신이 진료 취소 대상인지 명확지 않다며 혼란스럽다거나, 갑작스러운 취소 통보에 당황스럽다는 등의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의사들이 정해진 진료 예약에 나오지 않는 것을 불법적인 '노쇼'라고 표현하면서 불법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휴진에 참여하는 교수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의협의 경우 오는 18일을 집단휴진일로 잡고 있지만, 정부 집계 결과 18일에 진료를 쉬겠다고 신고한 병의원은 전체의 4.02%에 불과했다.
이는 18일 집단 휴진에 대해 '압도적 지지'가 있다는 의협의 주장과는 상반된 결과여서 집단 휴진 참여가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기득권 지키기"·"무책임"…시민사회, 집단휴진에 날 선 비판
전날에 이어 이날도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의료계의 집단휴진 계획에 대해 "정당성이 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에서 "의료 주권은 시민에게 있다"며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시민 모두의 건강권이 시장 의료 체계에 의해 위협받거나 농락되는 현실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며 "의사들은 명분 없는 집단휴진을 철회하고 환자들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18일 집단휴진을 계획하고 있는 의협과 관련해서는 "입에 담기조차 힘든 막말을 계속하고 있는 의협 회장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고, 서울의대교수비대위를 향해서는 "의사로서, 스승으로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도 "의사 집단 휴진에는 어떤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며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넉 달째 진료를 거부하는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하는 대신, 전공의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의대 교수들이 진료를 팽개치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며 "중증·응급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치료 적기를 놓치게 만드는 집단 휴진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진료·수술 연기와 예약 취소는 환자들에게도 고통이지만, 끝없는 문의와 항의에 시달려야 하는 병원 노동자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이라며 의사들의 집단 휴진에 따른 진료변경 업무를 거부하기로 했다.
서울대병원 노조 등이 속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도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들은 다수의 여론조사 결과로 국민 여론이 무엇인지 확인됐는데도 불구하고 의사 수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며 "교수들은 전공의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의협은 의사 증원 전면 재검토라는 요구로 휴진을 예고하고 있지만, 이는 합리적 판단이 아니며 그 목적지는 파국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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