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오쩌둥 숭배와 다른 시진핑 숭배
▶ 기념품 가게 ‘시진핑 얼굴’로 가득
▶서점엔 연설·철학 소개 별도 매대
▶어록 장식한 ‘시진핑 사상 열차’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채비가 한창이었던 2022년 2월. 중국 남부 광시성의 성도 난닝시 당국은 주민들에게 ‘시진핑 어록집’을 무료로 배포했다. 손바닥 크기의 이 어록집엔 시 주석의 통치 이념, 임기 중 주요 발언, 중국 역사와 세계사에 대한 시 주석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난닝시는 시 주석 어록집을 받아본 주민들이 “생생하다”, “시 주석 철학이 요약돼 있어 유용하다”, “휴대하기 쉬워 편리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소홍서(小紅書·마오쩌둥 어록집)’를 손에 든 홍위병들이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과시했던 1960년대 마오쩌둥 시대를 연상시킨다는 서방 언론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중국 당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지방 정부들도 이 시기 너 나 할 것 없이 비슷한 형태의 시 주석 어록집과 저작 모음 서적을 냈다. 감상문 발표 독서회 개최도 이어졌다. 시 주석 초장기 집권 시대 개막에 가까워질수록 시 주석을 향한 찬양은 경쟁적으로 커졌다.
‘시진핑 우상화’ 풍조는 이미 중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지난달 26일 찾아간 베이징의 대표적 쇼핑가 왕푸징의 한 기념품 가게. 중국 전통 공예품, 부채, 액세서리를 제치고 매대 한가운데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시 주석 얼굴이 박힌 텀블러, 찻잔, 시계 같은 ‘시진핑 굿즈(goods)’였다. 물론 신중국 건설의 주역 마오쩌둥과 개혁·개방 정책의 아버지 덩샤오핑의 굿즈가 더 많았지만, 역대 중국 지도자 가운데 국부 격인 두 사람과 나란히 기념품 가게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지도자는 시 주석이 유일해 보였다.
인근 대형 서점에 들어서자 시 주석 우상화 흔적은 더욱 확연해졌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매대엔 ‘시진핑 저작 선집’, ‘시진핑 치국이정(국가통치)’, ‘시진핑, 일대일로를 말하다’ 등 시 주석의 연설, 담화, 철학을 소개한 서적들이 진열돼 있었다. 대형 서점뿐 아니라 동네에 있는 웬만한 서점도 마찬가지로 입구 근처에 별도의 시 주석 관련 서적 매대가 자리했다.
“박수도 치지 말라”… 개인 숭배 경계했던 마오
지도자 개인 숭배는 사실 중국공산당이 가장 경계하는 정치 행위다. 헌법 격인 중국공산당 ‘당장(黨章)’ 10조 6항은 “어떠한 형식의 개인 숭배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국공내전 승리 뒤 신중국 건설을 목전에 둔 1949년 △생일 잔치 금지 △선물 금지 △건배 금지 △사람 이름을 딴 지명 금지△박수 금지 등의 원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원 전체의 대의보다 지도자 개인에 대한 추앙과 아첨을 경계하자는 의미였다. 물론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부추겨 중국 현대사 최악의 장면인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개인 숭배 사조를 배척해야 한다는 중국공산당의 ‘초심’만큼은 확고했던 것이다.
덩샤오핑 시대였던 1981년 6월 채택된 이른바 ‘2차 역사결의’에도 개인 숭배 경계 의지는 잘 나타나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 결의에서 “8차 당대회(1956년)는 집권당의 민주집중제와 집체영도제를 강조하고 개인 숭배를 반대했다”는 문구를 적시했다. 특히 “마오쩌둥 동지의 독단적 스타일이 당의 민주집중제에 점차 손해를 끼쳤으며 개인 숭배 현상이 점차 발전했다”고 지적하고 “집권당의 민주집중제와 집체영도제도를 강조하고 개인 숭배를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문화대혁명 같은 끔찍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도자 개인 숭배를 철저히 배척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실제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 사후 1인 통치 체제 폐해를 줄이기 위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7~9인)이 권력을 나눠 갖는 집단 통치 체제를 수립했다. 상하이방 계열의 장쩌민,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 후진타오 주석 등이 각각 10년씩 통치하며 집단적 의사 결정을 끌어내는 시스템도 안착했다. 당 내부에서 각 계파가 서로를 강하게 견제하는 분위기 덕에 지도자 개인 숭배는 설 자리를 잃는 듯했다.
시진핑 시대 우상화 부활…‘사상 열차’도 등장
지도자 우상화 기조는 시 주석 2기 체제에서 극적으로 부활했다. 2017년 제19차 당대회에서 당장을 개정해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등 3개 중요 사상과 더불어 시진핑 사상을 행동 지표로 삼는다”고 명기했다. 지도자 개인의 사상이 국가 통치 이념으로 추가된 것이다.
“시진핑 사상을 공부하자”는 구호는 공공연해졌다. 2018년 지린성 창춘시에선 객실 전체를 시 주석의 어록과 정치 구호로 장식한 이른바 ‘시진핑 사상 열차’가 등장했다. 런민대를 비롯한 중국 명문대들은 앞다퉈 시진핑 사상만을 다루는 각종 연구소를 열었고, 각종 국영방송들은 앞다퉈 시 주석의 성장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틀었다. 급기야 중국판 대학수학능력시험인 ‘가오카오’에는 시진핑 사상 학습 수준을 평가하는 문제가 비중 있게 등장했다. 시 주석의 행적과 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중국인들은 대학 진학이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 이후 계속된 10년 단위 집권 시스템도 이 시기 차례로 붕괴됐다. 201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공산당은 ‘3연임 제한’ 조항을 삭제했다. 3년 뒤인 2021년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채택된 ‘3차 역사 결의’에선 2차 결의에 들어 있던 ‘개인 숭배 반대’와 ‘집단 영도 체제’ 강조 표현도 삭제됐다. 대신 “시 주석이 ‘당 중앙 핵심’”이란 표현이 새로 등장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시 주석 1인 장기 집권 체제 수립을 위해 마오쩌둥 시대의 개인 숭배를 불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오쩌둥처럼 시진핑 숭배 지속될지 의문
반면 중국 연구자들은 시 주석 ‘개인 숭배’는 마오쩌둥 숭배 기조처럼 지속가능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마오쩌둥 숭배가 대체로 자발적이라면 시 주석 우상화 작업은 철저하게 ‘관 주도’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인스티튜트의 리처드 맥그리거 수석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에서 “시진핑 우상화는 중국 관리들의 승진과 지위 강화 차원에서 이뤄져 왔다”며 “마오쩌둥의 중국과 시진핑의 중국은 너무나 다르다”고 지적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과오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 숭배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엔 빈부차도 없었고 부패도 없었다”는 중국인들의 믿음에 기반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또한 마오쩌둥이 ‘신중국 건설자’라는 정치·역사적 무게감을 바탕으로 중국공산당의 상징으로 이미 굳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에 반해 시 주석 우상화는 시진핑 1인 통치 체제에서 살아남으려는 관료들만의 숭배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맥그리거 연구원은 “시진핑 어록 같은 책에 대한 풀뿌리 수요가 있다고 상상하기는 힘들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실제 시 주석 서적이 서점의 주요 매대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이를 구매하는 이는 드물었다.
최근 시진핑 우상화 주춤세…“불만 여론 의식”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기디언 라크먼 칼럼니스트는 “시 주석은 이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없는 지도자가 됐다”고 지적한다. “우상화 작업을 통해 강력한 1인 통치 체제를 구축했지만, 그런 만큼 자신의 결정과 정책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 역시 커졌다”고 그는 진단했다. 자신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누르고 억압해야만 하는 상황이 누적되면서 시 주석 스스로도 자신을 향한 우상화가 부담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실제 시 주석 3기 체제 진입 지점인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던 시 주석 우상화 작업은 의외로 주춤했다. 시 주석의 ‘당 중앙 핵심’ 및 ‘전당 핵심’ 등 2개 지위를 강조하는 ‘두 개의 수호(兩個維護·양개유호)’가 모든 당원의 의무로 명기됐지만, 마오쩌둥만이 가지고 있던 ‘인민 영수’ 칭호를 시 주석에게 부여하지는 못했다. 삭제될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형태의 개인 숭배를 금지한다”는 당장 10조 6항도 그대로 유지됐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 소재 대학의 한 교수는 “시 주석도 ‘백지시위(제로 코로나 정책 등 시 주석 정책을 비판했던 대규모 시위)’ 등을 보면서 자신에 대한 중국인들의 불만 여론을 읽고 있었던 것”이라며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한 시 주석 우상화 작업 역시 당분간은 정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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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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