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찐 밸리 이야기- 갈 길 먼 드론 배송
▶아마존, 2년 전 캘리포니아서 서비스
▶돌연 중단…시민들 반대 등 탓인 듯
▶미 언론 “드론 배송의 현주소 상징”
▶ 추락 사고·오류 등 안전 우려에 소음 유발·사생활 침해 문제까지… 회당 배송비도 육상 배송보다 비싸
▶탄소 배출 줄이고 신속 배송 장점 실현 땐 물류 판도 바꿀 게임 체인저
▶미 정부도 규제 완화로 상용화 지원
“30분 안에 고객 집으로 주문한 물품을 배달할 수 있는 드론(무인기) 함대로 하늘을 가득 채울 것이다.”
2013년 11월 당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제프 베이조스는 한 경제 관련 토크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사전에 공개된 적 없고, 제작진과도 조율한 적 없는 비밀 프로젝트 ‘옥토콥터’의 깜짝 공개였다. 베이조스는 “나는 이것이 공상과학 소설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지 않다”며 “앞으로 5년 안에 고객들은 드론 배송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주문 즉시 날아와 집 문 앞에 툭 떨어트려 주는 배송 시스템이 곧 현실화한다니. 땅이 워낙 넓어 물건 하나 주문하면 며칠은 기다리는 게 당연했던 미국은 베이조스의 꿈에 열광했다.
그 후 11년. 베이조스의 호언과 달리 아마존의 드론 배송은 아직도 상용화하지 못했다. 아마존은 서비스 개발 사실을 첫 공개한 지 10년 가까이 흐른 2022년 말에야 미국 텍사스주(州) 컬리지 스테이션과 캘리포니아주 록퍼드에서 드론 배송 서비스 ‘프라임 에어’의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약 1년 반 만인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록퍼드에서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돌연 발표했다. 그러면서 “연방항공청(FAA)과 주 당국의 허가를 받는 대로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드론 배송을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록퍼드에서의 철수에 대해 “프로그램의 확장을 지속하기 위한 우선순위 변경”이라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그간 드론 배송에 대한 록퍼드 시민들의 반대가 많았다는 점으로 미뤄, 아마존이 자발적으로 서비스를 접는 건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런 아마존의 행보는 드론 배송의 현주소를 상징한다는 평가를 내놨다. 베이조스의 이상이 실현되기에는 아직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드론 배송 개발에 1000명 투입했지만…
드론 배송이 시기상조라는 우려는 아마존이 시범 서비스를 하겠다고 발표했던 2022년 전후에도 팽배했다. 아마존은 그때까지 자체 드론 운행 시험에서 10번 이상의 추락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진다. 2021년에는 미국 오리건주에서 시험 비행을 하던 드론이 추락해 산불을 내기도 했다.
아마존은 안전 우려 등을 불식시키고자 록퍼드 서비스 개시 직전 언론인 등을 초청해 드론 배송을 시연했다. 그러나 이 행사가 오히려 불신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행사 내내 크고 작은 실수가 연발했다. 원래 날리려고 했던 드론에 부팅 오류가 생겨 다른 드론으로 교체되는가 하면, 고객 집에 거의 도달한 드론이 정확한 낙하 지점을 파악하지 못해 물건을 떨구지도 않고 되돌아가는 코미디 같은 상황도 연출됐다. 결국 보드 게임 하나를 목적지까지 배송 완료하는 데까지 총 3시간이나 걸렸다. 사실상 실패나 다름없었다.
언론 앞에서의 첫 시도가 불완전했음에도 서비스 운영은 시작됐다. 아마존은 지난 한 해 ‘수천 건’의 프라임 에어 배송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는데, 지난해 4월까지 겨우 100건의 배송이 완료됐던 것으로 미뤄 1,000건을 겨우 넘어섰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아마존이 약 10년간 드론 배송 기술 개발에 1,000명이 넘는 인원과 20억 달러(약 2조7,200억 원)를 투입한 것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 드론 한 번 날리는 데 사람 최소 2명 필요
발전 속도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드론을 날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드론 배송은 기본적으로 성공 조건이 까다롭다. 차량 등을 이용한 기존 배송 방식과 달리 악천후에는 배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아마존이 서비스 첫 시범 지역으로 연중 건조한 기후인 록퍼드 등을 택한 이유다.
현재 운용 중인 아마존 드론의 경우 한 번에 최대 5파운드(2.2㎏)만 옮길 수 있고, 배송 품목은 12피트(365㎝) 높이에서 떨어져도 깨지거나 망가지지 않는 물건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드론 배송 분야에서 아마존의 가장 강력한 경쟁사로 꼽히는 월마트는 밧줄을 활용하고 있다. 공중에서 물건을 떨어뜨리는 대신 밧줄을 이용해 지상에 내려놓는다. 보다 안전한 방식이지만 대신 시간은 더 걸린다.
드론이 내는 소음 문제도 무시하기 어렵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드론은 도로 교통이나 항공기 소음보다 사람들의 체감상 ‘훨씬 짜증나는’ 소음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사생활 침해에 대한 거부감도 거세다. 드론이 길을 찾아가려면 카메라가 사람의 눈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하늘을 날며 이 집 저 집을 들여다볼 수 있다. 아마존은 이에 대해 “비행 시 카메라가 아래 쪽으로는 작동하지 않고, 카메라로 촬영한 데이터는 주행 외 어떤 목적으로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불신의 눈초리가 여전하다.
드론은 혼자서 날아가지만 사람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FAA가 사람 감시가 없는 드론 배송은 허가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연방 규정은 한 명의 작업자가 한 번에 하나의 드론만 작동하도록 하고 있고, 드론이 상공에 떠 있는 내내 육안으로 감시할 것도 의무화하고 있다. 드론 한 대를 띄우려면 최소 2명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러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배송 비용에 그만큼의 노동비가 추가된다는 의미다. 지난해 맥킨지 연구에 따르면, 드론의 회당 배송비는 약 13.50달러로 추산된다. 내연차 등을 이용한 육상 배송보다 비싸다. “회사가 드론 배송으로 수익을 남기려면 작업자 한 명이 동시에 최대 20대의 드론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맥킨지는 진단했다. 그 시점이 되면 회당 평균 배송비는 1.5~2달러로 떨어지고, 그래야 전기차를 이용해 5개 패키지를 한꺼번에 배송하는 것보다 저렴한 수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연방 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실현되기 어렵다. 현재 아마존과 월마트 등은 드론 배송 이용 확대를 위해 건당 손실을 회사 차원에서 부담하고 있는데, 추후 배송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미 당국, 규제 완화... 드론 배송 확산할까
넘어야 할 산이 많음에도 아마존 등 상업용 드론 운영사들이 드론 배송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장점 역시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통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탄소 등 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신속하게 배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드론 배송은 문제없이 실현되기만 하면 기존 물류 시스템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잠재력이 있다. 응급 환자나 이동이 어려운 이들의 불편을 크게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드론 배송이 본격 확산할 것이라는 기대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지난해 말 FAA가 일부 드론 운영사들에 한해 육안 감시 없이 드론을 장거리 비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마존, 월마트의 협력사 집라인, 알파벳 자회사 윙 등이 사람이 드론의 비행 전 과정을 지켜보지 않아도 되는 자격을 얻었다. 이론적으로는 한 사람만 있어도 드론 배송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론 자체의 성능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아마존은 MK30이란 이름의 드론을 연말부터 실제 시험 배송에 투입할 예정이다. 아마존에 따르면 MK30은 현재 운용 중인 드론 대비 소음이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비행 거리는 두 배가량 길며, 약한 비를 포함해 다양한 기상 조건에서 작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 인공지능을 이용해 충돌 감지 성능도 크게 끌어올려 “마당이 작은 집이나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의 배송 성공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아마존 측은 밝혔다.
아마존은 규제 완화와 새 드론 도입 등에 힘입어 2030년까지 연간 5억 대의 드론 배송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연내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도 드론 배송을 개시하는 것을 목표로 구체적인 지역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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