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 경쟁에서 밀리는 한국
▶ 한, 중에 밀려 메모리 점유율↓
▶마이크론은 미서 40% 제조 예정
▶전문가 ‘보조금 확대’ 거듭 강조
대만의 정보기술(IT) 전문지인 디지타임스를 세운 콜리 황 대표가 최근 “TSMC의 실질적인 문제는 (미국과 일본 등이 공격적으로 반도체 자국 생산을 확대하는) 2030년 이후에도 경쟁 우위를 지켜나가느냐는 것”이라고 밝혔다.
TSMC에 대한 질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유효하다. 인텔과 마이크론·TSMC 등이 미국과 일본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완공하고 이곳에서 제품이 본격적으로 쏟아질 2030년 이후에도 한국 업체들이 초격차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7일 “잘하는 분야에서 계속 잘하는 게 경쟁력”이라며 “반도체 업계는 과거에는 경쟁이 없었지만 이제는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고 있어 과거와 다른 상황이며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수출 시장에서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점유율은 2018년 29%에서 2022년 19%로 하락해 2위로 밀려났다. 같은 기간 중국의 점유율이 24%에서 26%로 높아졌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서 수출한 금액이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중국 역시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을 중심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세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형곤 KIEP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2018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수출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국내 반도체 제조 기반 및 생태계 강화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텔과 마이크론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급격히 늘릴 계획이다. 마이크론만 해도 향후 메모리반도체의 40%를 미국에서 제조할 방침이다. 지금은 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 우위가 명확하지만 5~10년 뒤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2028년부터 뉴욕주에서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게임”이라며 “한국 업체들이 10년 뒤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측면에서 보면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시스템반도체 상황은 더하다. 반도체공학회 부회장을 지낸 김용석 성균관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메모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있지만 시스템반도체는 TSMC에 계속 밀리고 있고 미국의 큰 팹리스 기업들이 이미 TSMC와 협력하고 있는 점이 걱정스러운 대목”이라며 “미국 정부가 자기들 땅에 공장을 짓게 하고 칩 제조 능력을 키우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땅에 반도체 제조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게 하기 위해 보조금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반도체 직접 지원을 통한 초격차 확대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경쟁국 대비 부족한 투자 인센티브와 보조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규모는 최근 3년간 3조 9000억 엔(약 35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0.71%에 이른다. 독일(0.41%)이나 미국(0.21%)과 비교해 높은 수치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보조금 대신 세액공제 확대나 대출 지원 같은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건전재정 유지 △대기업 지원 시 논란 △소재·부품·장비 같은 취약 분야 지원 우선 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시각이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은 장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반도체 주도권 자체를 가져가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무총리실장을 지낸 권태신 전 한국경제연구원장도 “지난 정부에서 복지지출을 크게 늘려 재정에 부담이 있는 것은 알지만 한국이 먹고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반도체와 배터리”라며 “중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은행에 대한 조 단위 증자를 통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한다는 발상 자체도 관치금융을 확대하려는 방증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주요국은 직접 나랏돈을 지원하는 데도 재정 부담을 아낀다는 논리로 대출을 통한 간접 지원만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대출을 활용할 때는 기업별 한도가 있다”며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재정 지원을 통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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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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