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월이니 철 지난 꽃타령일까. 우중충한 아재일수록 열심히 꽃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그 대열에 끼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자제하는데도 결국은 참지 못 하는 것이 도그우드(Dogwood)다. 자식자랑처럼 참기가 힘든 것이다. 자목련, 백목련, 벚꽃 다투어 난리를 부려도 눈길 주지 않고 기다려 온 도그우드다. 좋아하는 만큼 알게 되는 법, 도그우드에 관하여 알아보자.
먼저 궁금해들 하시는 것이 이렇게 예쁜 꽃에 왜 개똥, 소똥식의 이름을 붙였는가다. 어원이라는 것이 여러 설이 있다보니 미국사람들도 잘 모른다. 그중에는 이 나뭇껍질을 끓여낸 물로 개의 피부병을 고쳤기에 그렇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보다는 켈트어 기원설이 더 유력하다. ‘dagge’. 대그우드(Dagwood)로 불리다가 도그우드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대그에서 단검(dagger)이 나왔다. 구식 피스톨이 대그라고 불리기도 했다.
어느 정도 연식이 있는 분에게는 대그우드 하면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70년대 한국일보에 연재되던 영한 네 컷 만화 ‘블론디’의 남편이 대그우드다. 이것저것 산처럼 쌓아 그가 즐기던 샌드위치에 그 이름이 남아 있다. 둘이 키우던 개의 이름은 데이지.
도그우드의 가지는 가늘면서도 워낙 단단해서 날카롭게 깎아 고기 요리에 쓰던 나무칼, 산적 꼬챙이, 화살을 만들었던 것이다. 주방기구의 손잡이로도 쓰였다.
다음, 눈 밝은 이들은 한국의 산딸나무네, 층층나무다! 한 눈에 알아보신다. 맞다. 맞는데 같은 집안이기는 해도 미국 도그우드가 더 예쁘다! 내 맘이고 내 눈이다. 결정적인 차이는 열매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딸기 모양의 열매가 열려서 산딸이라 부르는데 여기 도그우드 열매는 울퉁불퉁하지 않고 타원형으로 매끈하다. 요즘엔 ‘미국 산딸나무’라는 이름으로 수입해서 사랑을 받고 있다.
꽃의 색깔도 흰색 말고 연한 노란색, 연분홍, 약간 더 진한 분홍으로 산딸보다 다양하다. 꽃이라고 말은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잎이다. 십자 모양의 포엽(bract) 네 장 가운데 예닐곱 개 꽃술처럼 작은 녹색의 뭉치가 꽃이다.
도그우드는 저 남쪽 조지아에서 저 북쪽 메인주에 이르기까지 두루 볼 수 있는 동부의 대표적인 꽃나무인데 가장 사랑받기로는 주의 상징꽃이 된 노스캐롤라이나와 여기 버지니아를 들 수 있다. 식민지 시절부터 관상수로 눈길을 끌었는데 토머스 제퍼슨이 자신의 농원저택 몬티첼로에 들인 이후로 집집마다 정원수로 심는 유행이 퍼졌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쓰린 역사의 한 대목인 가츠라-테프트 밀약의 후일담에도 도그우드가 등장한다. 밀접해진 미일 두 해양 신진 제국, 일본이 선린의 제스처로 도쿄의 벚꽃을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변에 미국은 그 답례로 도그우드를 보냈다.
이런 역사를 이민자인 나도 아는데 미국 대통령은 당연히 알겠지? 그렇지도 않은 것이 로맨틱 코미디 ‘아메리칸 프레지던트’를 보면 짐작이 간다. 홀아비 대통령 마이클 더글러스가 환경단체 로비스트 아넷 베닝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녀가 좋아한다는 꽃, 그 뭐시라 도그우드 꽃다발을 화원에 주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으니, 거기다가 자기가 대통령이라니, 꽃집의 아가씨로부터 미친놈 개무시를 당할 수밖에.
하루 저녁에 피고 하루아침에 지는 목련과 벚꽃과는 달리 도그우드는 4월 내내 피어있다. 그렇게 부활절기와 겹치다 보니 기독교 문화의 도시 전설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얀 꽃잎의 끝에 묻어있는 갈색을 예수가 흘린 보혈의 흔적으로 보는 정도는 애교스럽다고 넘기면 된다. 꽃모양이 십자이고 가지가 하늘을 향해 들어올린 채 그 끝에 꽃을 피우니 기도하는 모습 같기는 하다.
그런데 예수가 처형된 십자가를 도그우드로 만들었다는 설은 오래된 전승도 아니고 근자의 조작에 불과하다. 근동에는 도그우드가 없었다, 땅. 도그우드는 십자가를 만들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지를 않는다, 땅땅. 이렇게 설명해 줘도 속으려고 작정한 인간들, 그럴 듯하게 달콤한 얘기만 찾아듣는 귀에는 들리지가 않는 법. 그런 사람들을 노려서 사탄은 구라를 키워간다.
“예수께서 나무를 올려다보시며 말씀하셨다. 나를 매달게 될 너 개나무여, 다시는 이토록 크지 못하리라” 그렇게 저주를 내리셔서 도그우드가 그 후로 이렇게 낮게 큰다나…. 위대한 개소리다.
<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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