➊ 독립 기념비. 번잡한 시내 중앙선에 위치해 있어, 워싱턴 모뉴먼트와 대조된다. ➋ 유명한 리코레타 묘지 정문. 도릭 케피탈이 묵직한 분위기를 유발한다. ➌ 수많은 개인 묘비들은 예술적 특색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였다. ➍ 탱고의 나라답게 선술집 앞에서 포즈를 취하니 처음 본 3명의 여인들이 달려들어 같이 사진 찍자며 몸을 던져온다, 쿨한 와이프가 촬영. ➎ 오페라 하우스의 장엄한 외관.
30여년만에 다시 찾은 남미의 파리, 부에노스 아이레스(좋은 공기) 에 도착하니 눈보라 치던 워싱턴 날씨를 조롱하듯 1월 한여름 남반구 햇살이 머리위에서 작렬했다. 예전 이 미혹의 여인은 생동감과 에너지, 탱고춤과 활기찬 거리의 연인들, 역사적 건축물 등이 내 감성을 주체하기 힘들만큼 뒤흔들어 주었다.
그러나 다시 찾은 여인은 그때 그 여인이 아니었다.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공항에서의 호객행위로부터 구분된다. 도떼기 시장같이 어수선해진 공항을 벗어나기 전 모든 일에 준비성이 강한 와이프가 환전부터 하라고 조른다. 공항보다 시내가 환율이 좋을 거라 했지만 결국 환율소에서 $1에 750페소로 환전했다. 돈을 고무줄에 둘둘 말아 뭉텅이 받으니 마치 화장지 한 롤 분량이었다. 아르헨티나 경제난국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공항택시를 타고 도심중앙에 위치한 JW Marriott 호텔에 도착해서 페소를 건네려 하자 기사 아저씨가 달러로 달라며 사정한다. 결국 귀한 달러 40불을 건네 주니 “탱큐 시니오” 하며 활짝 웃는다. 적은 돈으로 행복을 선사한 순간이었다.
제국의 상징 오벨리스크
호텔로비에는 축구의 나라임을 입증하듯 젊은 남녀 축구선수들이 즐비했고 소란스러웠지만 세상 걱정없이 떠드는 그들의 젊음이 눈부셨다. 객실 커튼을 걷자 거대한 통유리 밖으로 낮익은 67미터 높이의 웅장한 오벨리스크와 그들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멋진 오페라 하우스가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22차선 도로 위에 보란 듯이 그 자태를 자랑한다. 서구열강들의 대도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벨리스크(그리스어로 ‘꼬챙이’)는 제국의 상징이다: 파리, 로마, 런던, 이스탄불….
물론 우리에게는 워싱턴 모뉴먼트가 있다. 워싱턴과 부네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기념비는 유럽에 있는 탑들과 크게 대비된다. 우선 이집트에서 수탈해온 것이 아니라 자국에서 자국자재로 건축했다. 양국 모두 유럽열강과 같은 큰 제국의 욕망이 잠재해 있었으나 하나는 그 꿈을 실현했고 다른 하나는 절망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처지가 다를 뿐이다.
국격을 보여준 코론 오페라 하우스
(코론=콜롬버스, 1906년 개장)
서구사회에서 멋들어진 오페라 하우스는 그 도시와 시민들의 문화수준을 대변한다. 파리(가흐니예), 밀란(스탈라), 비엔나(국립오페라), 런던(로열 오페라), 그리고 신대륙에 위치한 뉴욕 멧, 시드니 오페라, 멕시코 시티 오페라 등이 유명하다. 남미의 방대한 대륙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오페라 하우스는 단연코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로 불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코론 오페라 하우스다. 매표소의 긴 줄을 인내한 결과 눈부신 로비에 들어섰다. 오래전 재학시절 미대 교수님이 작품들을 검토하시며 열변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presentation is everything!” 아무리 훌륭한 작품도 조명, 배치, 진열 등이 완벽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이란 카펫보다 정교한 바닥의 모자이크, 대리석 벽면에 진열된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의 흉상들, 수만개의 크리스탈 샹젤리제 조명은 밤하늘 별빛보다 무수했으며, 8층높이 2,487 핏빛 벨벳 좌석들은 한치의 오차도 용납 안했다. 세계 최고의 어쿠스틱을 자랑하는 콜론오페라 하우스는 마리아 칼라스가 실수를 감출 수 없는 성지라 평했었다.
정열이 있는 곳에 예술이
예술인이 무대위에서 느낄 설렘, 벅참 그리고 환호성이 보이고 박수갈채가 들렸다. 오케스트라 객석 양옆으로는 반 지하 검은 쇠창살 스크린이 쳐져 있어서 관계자에게 질문하니 미망인들 만을 위한 공간이라 답한다. 오래전 미망인들이5년간 검은색 상복을 착용해야 했는데 오페라를 즐기는 상류층 미망인들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반지하에 스크린을 설치했다는 설명이다. 반지하여서 무대는 보이지도 않는 구조였다. 얼마나 외롭고 오페라를 사랑했으면 하는 생각에 젖을 때, 역시 미망인들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일반 청중을 피해, 출구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사용하는 출구와 연결시켜주었는데 이상하게 미망인들이 웃돈을 주며 그 좌석들을 경쟁하듯 구매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공연이 끝나면 같은 출구를 사용하는 미망인들과 젊은 단원들이 눈이 맞아서 사회적 스캔들이 되었다는 뒷담까지 알려준다. 여기 정열의 나라다.
‘캄비오 달라레스(달러 환전)’와 보도를 차지한 노숙자들
황홀한 요람 같은 오페라 하우스를 나오자 옷도 안 걸친 길거리 노숙자들이 보도위에 마약에 찌든 모습으로 대낮 임에도 비몽사몽이다. 대로 한복판에 설치된 아름다운 청동 분수안에서 노숙자들이 나체로 목욕을 하고있다. 천당과 지옥은 한 끗 차이다. 도심 어디를 가나 ‘캄비오 달라레스’를 외쳐 된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암달러상이 되어 달러벌이에 목숨을 건듯 보였다. 암달러는 공항과 달리 1000/$1였다. $100지페는 더 쳐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궁 앞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을 지나치는데 10미터 높이 육중한 쇠문 앞에서 양복차림의 신사가 암달러상을 하고있었다. 그를 지나친 후 뒤돌아보니 그 육중한 문에 딸린 작은 문으로 사라졌다. 그는 은행원이었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떠올랐고 금욕을 피할 방법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에서 근거리에 교황님이 신부로 재직하셨던 성당에 들어섰다. 대성당 안에 국부이며 영웅인 산 마르틴 장군의 대리석 무덤이 두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안치되어 있는데 그 위용과 예술적 표현력이 대단했다. 조용한 성당안에서 은은한 파이프 오르간음이 들려온다. 나이 지긋한 신사분이 비발디의 ‘사계’을 연주하고 계셨다. 드높은 돔 아래 천상의 빛이 성당안을 밝혀주며 낙원에서나 들려올 법한 섬세하고 고즈넉한 음 율이 비상하며 빛들과 춤춘다. 인생 희로애락, 사계와 같이 꿈결같이 지나가거늘 왜 그토록 모든 것들이 애절했던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 갈 때 조용히 와이프가 옆에 와서는 내 손을 잡아준다.
애비타(Evita)의 나라 아르헨티나
아침 일찍 부유한 지역에 위치한 리코레다 묘지에 들어섰다. 어제 오후에 왔다가 줄이 너무 길어 다시 찾았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이곳에 안장되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처럼 유명인인 동시에 국가에 큰 공을 세워야 가능한데 에바 페론의 묘를 보기위해서다. 한때 술집 여자였던 에바는 페론 장군의 후처가 된 후 젊은 나이에 영부인 과 장관의 자리에 오른다. 사생아였다는 원죄, 궁핍했던 과거, 후처라는 콤플렉스 등이 그녀로 하여금 사랑 결핍증에 빠지게 했고 그 결과가 퍼주기 정책이었다. 그 포퓰리즘의 유산을 이어받는 후예들은 지금도 그녀의 이름을 외쳐댄다.
33세 꽃다운 나이에 병마로 세상을 등진 그녀의 무덤은 그녀의 남편 곁이 아닌 그녀의 가족묘에 소박하게 안장되어 있다. 에바가 사망한 후 패론이 재혼한 결과다. 첫째나 마지막 와이프가 되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간에 끼게 되면 인정도 못 받고 유산도 없는 경우가 많다. 명성에 비해 너무나 조촐한 그녀의 묘비 앞에서 묵념을 바치는데 그녀가 조용히 내 귀에 속삭인다. “제프 또 올 거야?” “물론이죠, 꼭 다시 올 겁니다.” 고개를 드니 찬란한 남방 햇살아래 흰구름이 유유히 흘러간다.
문의 (703)608-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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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안,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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