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 사직효력 발생 첫날 ‘폭풍전야’… “아직 뚜렷한 움직임은 없어”
▶ 교수들, ‘사직서 효력 발생’ 놓고 법률 자문하기도
▶ 정부 “이탈 규모 크지 않을 것”…두려운 환자들 “교수들까지 나가면 큰일”
▶ 특위, ‘필수의료 강화’ 등 의료개혁 박차…의협·전공의 빠진 ‘반쪽 출범’
(서울=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증원안에 반발하는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돼 사직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4.25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돼 사직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25일(이하 한국시간) 의료 현장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은 당장 교수들의 뚜렷한 이탈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무더기 사직이 현실화할까 봐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수리 예정인 사직서가 없다며 실제로 병원을 떠나는 의대 교수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두 달 넘게 풀리지 않는 의정(醫政) 갈등을 지켜보는 환자들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의대 교수들이 사직 강행과 '주 1회' 휴진을 예고하며 대정부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정부는 이날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첫 회의에 끝내 불참했지만, 정부는 특위 출범을 통해 의료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 '빅5' 병원 "뚜렷한 움직임 없어"…시간 흐르며 점차 나타날 수도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 등 '빅5'를 비롯한 주요 대형병원은 이날 당장 뚜렷한 사직 움직임은 없다고 전했다.
담당 의사의 사직으로 인해 수술이나 외래진료 일정을 조정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은 아직 없다고 한다.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들 대다수는 현장에 남아 환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직서 제출 시기가 다른 탓에 그 효력이 발생하는 날이 분산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날은 사직서 제출의 효력이 발생하는 '첫날'이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사직 효력이 발생해 병원을 떠나는 교수들이 점차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의원회 등도 '이날부터' 사직이 시작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직서 제출 후에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바로 사직하지 않고, '사직 희망일'을 추후로 잡은 교수들도 있다.
실제로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강희경·안요한 교수는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근무 종료 시점을 '8월 31일'로 잡았다. 돌보던 소아 신장질환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연계하는 등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 관계자는 "교수들이 지난달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해 이후 쭉 이어진 것으로 안다"며 "사직을 희망하는 날짜가 다르기도 하고,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병원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병원을 떠나지 않았더라도 사직 의사를 분명히 나타낸 교수들도 있었다.
서울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장범섭 교수는 진료실 앞에 붙여둔 자필 대자보에서 "현재 대한민국 의료는 정치적 이슈로 난도질당하고 있다"며 "큰 회의감과 무기력함으로 사직서를 일단 제출했다"고 알렸다.
장 교수는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대한민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현 정부보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 교수들, '사직서 효력 발생' 놓고 법률 자문하기도
이처럼 사직서 효력이 발생하는 시기가 다를뿐더러, 절차적·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직서가 한 달 후 효력이 발생하는지 애매모호한 경우도 있다.
일부 의대에서는 교수들이 쓴 사직서를 교수 비대위가 모아서 가지고 있으면서 총장 등에게 제출하지 않은 사례들도 적지 않았다. 의대 학장이 가지고 있으면서 대학 본부에 전달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에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의 효력을 놓고 법률 자문을 받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최용수 성균관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사직서를 제출받은 쪽에서 '미개봉'으로 익명 상태라, 유효성이 있는지 자문 중"이라며 "현재로서는 성대의대 사직서 효력은 내달 1일부터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둔 울산의대 교수 비대위는 사직서를 의대에 접수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사 표시가 됐다고 보고 사직을 준비하고 있다.
울산의대 교수 비대위 관계자는 "현재 교수들의 사직서는 학장 차원에서 갖고 있으나, 일단 학장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대에 접수된 것으로 보고 진행할 수 있다는 자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병원 규정에 따라 (교수들이 떠나는 시점은) 대부분 오는 30일 이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정부는 이날 사직서 수리가 예정된 교수는 없으며, 교수들이 한꺼번에 이탈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교육당국을 통해 파악한 결과 대학 본부에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 교수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의대 교수는 대학 본부 소속으로 병원 진료와 대학 강의를 겸직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대학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한다. 교수로 불리지만, 병원에만 소속된 교수는 병원장에 사직 의사를 표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지난 한 달간 대학 총장과 병원장에 실제 사직서를 낸 교수가 전체의 7% 상당인 800여명에 불과하다거나, 대학 본부에 접수한 건 80명 정도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정부는 구체적인 숫자는 밝히지 않으면서도 형식적·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입장이다.
◇ 정부 '진화'에도 환자들은 불안 극심…"환자들은 죽으라는 거냐"
정부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당장 진료와 수술을 눈앞에 둔 환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주요 대형병원이 이미 수술을 절반 이상 줄였고, 외래도 20∼30%가량 축소한 상태에서 교수들의 사직이 이어질 경우 의료공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내주부터 시작되는 대형병원의 '휴진'도 환자들의 불안을 부채질한다.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는 이달 30일 하루 일반 환자의 외래진료와 수술을 중단한다. 응급·중증 환자 진료는 지속한다.
앞서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가 소속 교수 1천400여명을 대상으로 '하루 진료 중단을 제안하는 데 대한 교수들의 입장'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 627명의 44.7%에 해당하는 280명이 '전면 참여하겠다'고 했다. '부분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사람도 201명(32.1%)에 달했다.
배우경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 관계자는 "실제 휴진 참여율은 설문 결과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며 "상황에 따라 못 하는 분도 있을 수 있어서 얼마나 참여할지는 30일 돼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의대 교수 비대위는 이달 30일 하루 휴진하고, 내달 말까지 매주 하루 휴진한다. 울산의대 교수 비대위도 내달 3일부터 주 1회 휴진하겠다고 예고했다.
고려대 의료원 교수 비대위 역시 이날 회의를 열고 오는 30일부터 주 1회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응급환자와 중환자 진료는 유지하도록 노력한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은 당장 변화를 느끼지는 못한다면서도 의료공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대병원 외래병동에서 만난 김명배(77) 씨는 "교수님들까지 나가면 정말 큰 일이다. 환자들은 죽으라는 것 아니냐"며 "우리 같은 환자들이야 상황을 잘 모르지만, 하루빨리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해결됐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 발족…의사단체 끝내 불참
정부는 이날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를 발족하며 '필수의료 보상 강화' 등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다졌다.
특위는 의대 증원 문제 대신 의료개혁 과제 중 우선순위가 높다고 의견이 모인 4개를 집중적으로 논의해 상반기 내 구체적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4개 과제는 ▲ 중증·필수의료 보상 강화 ▲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도입 ▲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다.
특위는 내부에 의료인력 전문위원회,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원회, 공정보상 전문위원회 등을 꾸려서 운영하기로 했다.
특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21명의 민간위원 그리고 기획재정부·교육부·법무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의 장관과 금융위원장 등 6명의 정부위원으로 구성된다.
민간위원은 위원장을 빼면 공급자단체 추천 10명과 수요자단체 5명, 전문가 5명인데, 정부는 공급자단체 10명 중 6명을 의사·병원에 각각 3명씩 배분했다.
의사단체로는 의협과 대전협, 대한의학회에 1명씩 배정됐는데, 이들 단체가 불참을 통보하면서 위원 3명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반쪽짜리' 특위라는 비판에 직면한 정부는 의사 단체에 조속한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협과 대전협이 언제든 참여할 수 있도록 (논의의) 장을 열어놨으니 당사자이면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두 단체가 조속히 참여해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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