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와 수출의 역사
▶작년 414만대 생산, 270만대 수출
▶반도체 침체 불구 ‘수출 효자’ 역할
▶국내 첫 자동차, 고종황제의 캐딜락
▶‘시발차’ 한대 생산에 4개월 걸려… 해외차 조립한 ‘새나 라’ ‘코티나’
▶ 1976년 에콰도르에 ‘포니’ 첫 수출
▶FTA 체결로 현대차·기아 수출 가속
▶해외 생산체제 구축 ‘자동차 강국’
▶애플도 못한 사용자 중심 모빌리티
▶‘SDx’ 전략 발표…현대차그룹 도전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시가총액이 7년 반 만에 삼성전자를 넘어 대만 파운드리 반도체 업체 TSMC에 이어 아시아 2위에 올랐다. 지난달 27일에는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이 10년간 공들인 자율주행 전기차 애플카 개발을 포기했다. 지난해 세계 경기가 좋지 않았는데도 전 세계 자동차 수요는 증가했지만 자동차 차원에서는 소프트웨어 회사인 애플이 비교우위를 점하기 어려워 보였던 것 같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밀린 선주문 물량이 지난해 쏟아졌다. 2023년 반도체가 수출에서 죽 쑤는 상황에서도 자동차산업은 한국 수출의 버팀목이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을 9,010만 대로 추정했다. 2019년 9,124만 대 수준이라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자동차 판매량은 2020년 7,878만 대로 급감했고, 2021년엔 8,275만 대, 2022년엔 8,162만 대였다. 주요국의 지난해 판매량을 보면 중국(2,900만 대), 미국(1,630만 대), 유럽연합(EUㆍ1,210만 대), 일본(485만 대), 한국(176만 대)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올해 1월 자동차 수출량이 늘어 수출 증가에 기여했다. 올 1월 자동차 수출액은 62억 달러로 1월 실적으로는 사상 최고치였다. 작년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414만 대(수출량은 270만 대)로 400만 대를 2019년 이후 5년 만에 넘었다.
1903년 고종황제가 캐딜락 4기통 1대를 도입한 것이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의 시작이다. 고종 즉위 40주년을 맞아 대신들이 신식문물의 상징인 자동차를 타고 참여해줄 것을 간청했다. 이 어차(御車)는 고종의 주치의로 활동한 주한 미국공사 호러스 알렌을 통해 들여왔다. 그런데 이 자동차가 1904년 2월 러일전쟁 당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 대중들에 소개된 자동차는 1911년 고종황제 어차용인 영국제 다임러 리무진(4기통)이었다. 1913년에는 순종 어차로 캐딜락(8기통)이 들어왔다. 고종의 다임러 리무진은 같은 종이 영국 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값을 매기기 어려운 귀한 물건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자동차는 전후 등장했다. 1955년 8월부터 1963년 5월까지 시발자동차 주식회사에서 제작한 시발(始發)자동차가 주인공이다. 시작이라는 뜻의 한자어를 이름으로 사용했다. 스포츠유틸리티자동차(SUV)로 4륜구동이었다. 6·25전쟁이 분단으로 정전 상태로 마무리되고 나라 재건을 위해 힘쓰던 와중에 시발자동차가 탄생했다. 서울 을지로 한 천막 안에서 자동차 정비업을 하던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3형제와 국내 유일 엔진 기술자인 김영삼이 미군으로부터 받은 군용차 엔진과 변속기, 차축 같은 부속품을 이용해 만들었다. 당시 전쟁의 상흔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고 미군 지프 등 부서진 군용 차량이 널려 있었다. 3형제는 드럼통을 잘라 차의 몸체를 만든 후 미군 지프의 엔진을 달았다. 투(2)도어 지프형 승용차로 판매될 때는 8만 환(현재 화폐의 10원)의 고가여서 구입하는 이가 극소수였다. 시발자동차는 4기통 1.3 GSL(배기량 1.323cc) 엔진에, 전진 3단, 후진 1단의 트랜스미션을 얹었다. 50%에 이르는 국산화율을 자랑했다. 한 대를 생산하는 데 무려 4개월이 걸렸는데, 시발자동차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1955년 10월부터 12월까지 열린 산업박람회 덕분에 대중이 관심을 갖게 됐다. 이 박람회엔 총 4만739점의 물품이 선보였다. 시발자동차가 대통령상을 받아 눈길을 끈 것이다.
시발자동차를 사기 위해 계(契·경제적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 만든 전통적 협동 조직)까지 생길 정도로 인기를 얻으며 30만 환까지 가격이 올랐다. 허무하게도 국제차량공업사의 방만한 경영, 정부 보조금 중지결정, 새나라 자동차라는 경쟁업체 탄생으로 1963년 5월 총 3,000여 대가 제작된 뒤 단종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새나라 자동차는 1962년부터 1963년까지 생산했던 소형차이자 국산차계의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던 차종이다. 출범 당시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인 닛산에서 판매하던 1세대 블루버드 모델을 400대 수입했다. 이후 조립공장 완성으로 반제품 형태로 들여와 조립ㆍ생산하는 방식을 택했고, 새나라 이름으로 판매해 제법 인기를 끌었다. 설립과정에서 블루버드의 수입 판매와 관련해 정부의 특혜시비 의혹, 탈세 혐의 등 각종 의혹에 휘말렸다. 1963년 7월에 한일은행의 법정관리 처분을 받게 됐다. 자동차 보호법에 의해 내국세, 수입관세 등을 면제받으면서도 규정 가격보다 차량을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한 혐의까지 받자 이후 신진공업이 인수했다.
세계적 자동차 제조 업체로 성장한 현대차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46년 세운 현대자동차공업사와 1947년에 세운 현대토건사가 모체다. 1967년 포드와 합작 회사형태로 현대자동차가 탄생했다. 1968년 11월 유럽 포드로부터 조립, 판매 계약을 체결하고 부품을 가져와 최초의 자동차인 포드 코티나를 출시했다. 코티나는 이후 뉴 코티나, 코티나 마크 IV, 코티나 마크 V 등으로 업그레이드됐다. 1983년을 끝으로 스텔라에 자리를 내주었다.
기아자동차의 창립자인 김철호는 1922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1930년 삼화정공을 인수했다. 일본의 패전으로 김철호는 한국에 귀국해 자전거 생산기술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1944년 현재 기아자동차의 모태인 경성정공(京城精工)을 설립했다. 경성정공은 삼천리호 자전거를 출시해 자본을 쌓았고 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바꿨다. ‘일어나는 아시아’라는 뜻과 영어 Gear(기어)의 일본식 발음의 조합에 따른 이름이다. 1961년 일본 혼다와 제휴해 기아혼다를 설립했고 오토바이 제조를 시작했다. 기아산업은 1973년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에 종합자동차 공장을 설립하면서 자동차 역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기아 최초의 승용차인 브리사는 현대자동차의 포니와 국내 승용차 시장을 휩쓸었다. 외환위기 이후 기아가 현대자동차로 흡수합병되기 전까지 승합차인 봉고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국산 자동차 수출의 역사도 50년을 바라보고 있다. 현대차가 1976년 에콰도르에 포니 6대를 선적한 것이 시작이다. 현대차는 그해 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에 1,042대를 수출했다. 포니는 캐나다에도 수출됐지만 미국으로는 배기가스 규제에 걸려 불허됐다. 이에 현대자동차는 엑셀을 생산해 1986년 자동차 종주국인 미국의 문을 열었다. 1983년에 누적 수출 10만 대를 기록한 현대차는 5년 만인 1988년에 100만 대까지 돌파했다. 2003년에는 연간 수출로 100만 대를 달성했다. 기아도 1976년 카타르에 브리사 픽업트럭 10대 수출을 시작으로 1987년 누적 수출 10만 대를 돌파했고, 1995년 100만 대를 넘어섰다. 현대ㆍ기아차의 합병 시너지는 2011년 연간 수출 200만 대로 발현됐다.
현대차·기아가 지난해 7년 만에 합산 수출 200만 대를 돌파한 것은 해외 생산체제 구축 때문이다.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표된 이후 싱가포르, 아세안, 인도에 이어 EU, 미국과 FTA가 발효돼 자동차 수출이 확대했다. 북미 수출이 빠르게 증가해 2003년 수출 100만 대를 초과했으나 현대차(2005), 기아차(2009)의 미국 현지 생산으로 우리나라에서의 직수출은 감소했다. 이에 두 회사의 연 200만 대 수출은 2016년까지 이어지다 해외 생산체제 구축으로 2022년까지 150만~190만 대 수준에 머물렀다.
이제 국내 생산량 절반 이상이 수출 물량인 상황에서 두 회사에 거는 수출 기대는 크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각각 ‘300억 달러 수출탑’과 ‘200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각각 2012년 200억 달러 수출탑과 150억 달러 수출탑을 받은 이후 11년 만의 일이다. 현대차는 차량 판매 개시 56년 만인 올해 누적 판매 1억 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올해 소비자가전쇼(CES)에서 현대차그룹이 내건 비전이 새롭다.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을 넘어선 ‘SDx(모든 것이 소프트웨어 기반인 차량)’ 전략을 공개했다. 회사는 인공지능(AI) 기술에 기초한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차량을 ‘모든 것(X Everything)’과 연결하려 한다. 애플도 못한 사용자 중심의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으로 새 역사를 쓰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미래가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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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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