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총선거를 코앞에 두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여당이 이기느냐 야당이 이기느냐, 그 결과에 대한 흥분이 아니라 총선 이후 벌어질 사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법정선거 운동기간은 2주일가량인데 정치판은 벌써 1년 전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각 정당이 국사에 전념하지 않고 상대방이 망하는데만 혈안이 돼 왔으니 진정성이 있는 정책이 나올 리가 없고 선거 전체가 거짓말, 사기극, 모함, 인격 살해 같은 참상이 연출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번 선거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출마시킨 정당은 무려 38개, 투표용지 길이만 해도 51.7cm이다. 설마하고 믿을 수 없는 실화는 더 있다. 현재 죄수의 품으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거나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범죄자들이 창당,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게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다.
누가 누구의 정치활동을 억압하고 가로막을 수 있으랴마는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가 부끄럽고 비참한 또 한 장의 정치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음을 분명한 것 같다.
속칭 ‘단군 이래의 최대 부정비리’ 등 10여개 항목의 범죄혐의로 재판중이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연기력도 오히려 선거의 진정성을 훼손시키는데 핵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 대표는 공천을 계기로 비명계 등 자신에게 충성도가 약한 동료들을 모조리 축출, 추방시키고 자신의 사법리스크 변호사들과 당 밖에서 추종하던 인물들을 대거 영입, 공천장을 주었다.
이재명의 선거유세는 점점 더 강도를 높이고 있다. “윤 정부가 말을 안 들으면 회초리를 들어야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몽둥이로 두들겨 내쫒아야 한다." “이따위 정부는 차라리 없는 것이 더 좋겠다." “우리가 힘을 모아 박근혜도 쫓아냈는데 윤 정부 정도를 몰아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연일 이런 식의 폭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른바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시키자는 선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윤 정부의 경제 실책으로 우리나라가 아르헨티나처럼 곧 망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 경제정책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여 파국을 맞은 나라다. 13조원을 풀어 국민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이재명 스스로가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망치겠다는 고백인 것 같아 쓴 웃음이 나온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준)기축통화국이 아니면 함부로 통화량을 증폭하는 것은 경제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연천, 고성 등 대북 접경지역에서는 김정은의 분국론, 적대국 남한 점령 주장에 대한 비판은 한마디도 없었다. 대신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전쟁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며 평화론을 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도 지지를 호소할 명분이 별로 없다. 용산 대통령실 악재들이 줄줄이 쏟아져, 잠깐 빛을 발하던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원맨쇼가 그나마도 파묻혀 버렸다. 이종섭 호주대사 날치기 출국, 황상무 수석 비서관의 MBC 기자 칼침 협박성 말장난 사건이 비난 건수만 기다리는 야당에 호재가 되어 된통 당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이나 야당에게 실컷 얻어맞고 나서 겨우 숨을 돌리는 미숙, 용산실과 한동훈의 엇박자는 국민이 등 돌리는데 기폭제가 되었다. 5.18 망언의 전력을 가진 자를 공천했다가 교체했고 호남출신 인사들을 비례대표 명단에서 소외시키는 추태를 보여 민심 이반을 가속시켰다.
국민의 힘은 공격수가 한동훈 비대위원장 단 한 사람이다. 최근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이 합세하기는 했지만 아당의 무자비한 공세를 방어까지 하기에는 역부족, 이미 지쳐버린 기색까지 보인다. 야당이 물가상승, 생활비 궁핍을 추궁해도 조리있게 불가피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민주당 이재명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매국노, 쓰레기, 바퀴벌레 같은 자”라고 비난했던 자를 공천해도 또는 김정은의 전쟁 협박에 오히려 윤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어도 똑똑하게 추궁해 들어가는 탄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야당의 위협과 여당의 이재명 유죄판결에 미래를 걸 수밖에 없는 선거에서 어떤 의미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망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선거 후에 정국은 어느 편이 이기든 지든 피비린내 나는 난장판 혼란이 연출될 것이다.
어느 선진국 정치인이던가. “그 나라의 대통령 면모나 의회주의 진행상황을 보면 그 나라의 국민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우리에게 아프게 와 닿는 말이다.
OECD 국가 중 상원이 없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의회구성원들이 구조적으로 의식수준이 낮은데다가 여야가 충돌을 시작하면 멈춤 없는 무한쟁투로 번져 번번이 극한 상황까지 확대되고 만다. 지금이야말로 각계각층에서 국민의 신망을 받고 살아 온 원로들, 이 분들이 임시 결성체라도 만들어 충고하고 제안하는 수습 역할이 절실한 시기라고 믿는다. 지식인은 자기 개인만을 위해 살아가지만 지성인은 자기 자신의 삶에 더하여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품격으로 존경받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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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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