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2천명 확고…법위에 서지 말라”…의협 “대통령이 전공의 직접 만나라”
▶ 의대 교수 사직 행렬 계속…28일 가톨릭·성균관대 의대 교수 사직서 제출
▶ 불안함에 가슴 치는 환자들…전국서 ‘진료 정상화 촉구’ 집회
한국 정부가 의료계에 보건의료 예산 논의를 함께하자고 제안했지만, 의정 간 대화 추진에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정부가 '2천명 증원'에서 물러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가운데, 의사단체는 대통령이 직접 전공의를 만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전공의 집단사직이 장기화하고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이어지면서 대형 병원들의 병동 폐쇄 등 진료 축소는 확대되고 있다. 환자들의 불안도 함께 커지고 있다.
◇ 속도 안 나는 의정 대화…의대 교수들 집단사직 계속
27일(이하 한국시간)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의정 간 대화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의대 교수들은 이날도 사직서 제출 행렬을 이어갔다.
전남대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전날까지 비대위에 사직서를 전달한 교수는 총정원 283명 중 50여명이다.
조선대는 의대교수 161명 가운데 33명이 사직서를 냈다.
900∼1천명의 교원이 재직하는 울산의대의 경우 교수 433명의 사직서가 대학 측에 제출됐다.
제주대는 이날 오전까지 의과대학 교수 153명 중 10여 명이 사직서를 냈다.
충남 천안의 순천향대 천안병원에서는 233명 의대 교수 가운데 지금까지 100명 안팎의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충북대병원도 교수 200여명 가운데 최소 50명 이상이 사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대학교 의대 겸직교수 1명은 전날 직접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 경상국립대 의대에서는 이날까지 전체 260여명 중 25명의 교수가 사직서를 냈다.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피해가 갈 경우 사직서를 내겠다고 뜻을 모았던 계명대 의대 교수들도 이날 오전부터 개별적으로 사표를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성모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둔 가톨릭대 의대의 교수들도 28일에 1차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가톨릭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내일 사직서를 내지 못하는 교수님들은 (4월) 3일에 추가로 제출하기로 했다"며 "사직서는 자율적으로 제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와 수련병원인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삼성창원병원 교수들도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작성해 28일 제출하기로 했다.
이로써 서울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을 포함해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인 '빅5' 병원 교수들 모두 사직서 제출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은 지난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국 의대 교수들이 대부분 29일까지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예정이어서 이번 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는 교수들의 숫자는 더 커질 전망이다.
◇ '2천명' 필요조건이라는 정부…"대통령이 직접 전공의 만나라"는 의사들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의료계를 향해 내년도 의료예산을 함께 논의할 것을 제안하라"고 참모진에게 지시했지만, 의료계는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전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교육·복지 장관과 함께 서울대 의대에서 교육·의료계 인사들을 만났지만, 정작 그동안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 온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나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인사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날도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촉구하고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을 만류하면서도 '2천명 증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27년 만의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 정상화를 시작하는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도 브리핑에서 "모든 과제가 논의 가능하다는 입장은 변화가 없지만, 2천명의 의사 결정에 대해서는 확고한 생각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당선자가 '전공의에 대한 행정 처분이 현실화할 경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에 대해 "그런 주장은 의사집단이 법 위에 서겠다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의협은 정부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전공의들을 만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의협 비대위는 이날 브리핑에서 "최근 1주간 전의교협 등 여러 직역과 정부 간 만남이 있었으나, 큰 입장차만 확인했다"며 "전공의들의 복귀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이들과 직접 만나 '결자해지'로써 상황을 타개해 달라"고 촉구했다.
◇ 병동폐쇄 잇따라…간호사에 휴일 미리쓰는 '마이너스 오프' 신청받기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주요 상급종합병원들의 병동 폐쇄도 확대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환자 안전과 인력 운용 효율화를 위해 전체 병동 60여개 중 응급실 단기병동, 암병원 별관 일부 등 10개 병동을 폐쇄했다.
폐쇄된 병동은 외과와 내과는 물론 정형외과와 신장내과, 내분비내과 등에서 사용하던 곳이다. 기존 환자들은 다른 병동으로 옮겨져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다.
'비상경영'을 선포한 서울아산병원도 일반병동 56개 중 9개를 폐쇄했고, 서울성모병원도 일반병동 19개 중 2개 병동을 비웠다.
세브란스병원도 마찬가지로 비상경영에 따른 병동 통폐합에 나섰다. 전공의 집단사직 여파가 지속하는 데 따라 75개 병동 중 6개 병동을 3개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은 중환자실을 담당할 의사가 부족해지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파견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아직 시행하지는 않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은 모두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다른 과로 파견하는 조치 없이 응급실을 유지하고 있다.
병원들이 인력을 전면적으로 재배치하면서 현장에 남아있는 간호사 등은 기존에 근무하던 병동이 아닌 다른 병동으로 옮겨지거나, 근무 스케줄에 무급휴가 일정을 특정하면서 '사실상 강요'를 받고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이 의사가 아닌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일부 병동에서 무급휴가는 물론이고 아직 생기지도 않은 미래의 휴일을 당겨 쓰는 '마이너스 오프'를 신청받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 의정 '치킨게임'에 커지는 환자 한숨…"죽으라는 말이냐"
의정 간 대화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환자들의 한숨은 점점 커지고 있다.
4기 유방암 판정을 받은 60대 어머니를 모시고 충북대병원 종양혈액내과를 방문한 딸 A(30대)씨는 "수술이 불가능한 단계라 최소 3주에 한 번씩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교수들마저 그만두면 이 주기가 길어질까 봐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환자 생명을 가지고 그러는지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막상 진료과 교수님을 뵙게 되면 자리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90도로 허리를 숙이게 된다"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신장내과에서 만난 70대 전모 씨는 "신장 기능이 15%밖에 남지 않아 매달 정기 검진을 오는데, 투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머지않아 올 수도 있다고 한다"며 "교수들이 사직하면 우리 같은 환자들은 죽으라는 거냐"며 가슴을 쳤다.
최근 만성신부전을 앓던 50대 모친이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한 끝에 사망하고, 90대 노인이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이송되고도 응급진료를 거절당해 사망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기도 했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현장 확인을 거치기로 했다"며 "각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복지부가 현장확인팀, 긴급대응팀을 파견해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의료정상화를 촉구하는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정부와 의사 집단은 환자들을 생명의 위험으로 내몰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의료공백 사태를 방치하지 말고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이룩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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