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들어 가면서 친구들 간의 대화 주제도 바뀌어 간다. 요즘 군(軍) 동기생들 간에 오고 가는 주제의 대부분은 노후의 삶과 건강에 관한 이야기, 생활정보나 보이스 피싱 관련 정보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엊그제 받은 카톡 에서는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글을 보내왔는데 그다음 날엔 다른 동기생이 이 말을 그럴듯하게 줄인 “누죽걸산”이란 글을 보내더니 이번에는 먹물깨나 든 친구가 보생와사(步生臥死)라고 한자로 그럴듯하게 번역한 글을 보내오기도 했다.
요즘처럼 100세 시대를 지향한다는 사회 분위기 탓인지 나름대로 건강에 관해 “들은 풍월”이 좀 있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걷는 것”만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인 양 한마디씩 해대는 탓에 나 역시 은연중에 “걸어야 되나 보다”라는 쪽으로 생각이 변해가고 있던 차에 신문과 방송 등에서까지 “과학적으로도 검증된 걷기 효과”야말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돈도 들지 않는다”는 장점까지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걷는 것이 “최고로 좋은 건강 비결”이라는 주장을 들은 이후부터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사실 집 근처 공원을 걷는 것은 이 지역으로 이사 온 이후부터 시작한 일이기는 하나 당시에는 건강 보다는 산책 수준에서 편안하게 걷는 정도였었다. 한적한 공원을 걸으면서 맑은 공기와 끊임없이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 며 걷다 보면 이른 봄에는 새싹이 힘차게 돋아 나는 생동감을,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이면 사방에 만발한 야생화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특히 아침 산책길은 상쾌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느낄 때마다 이런 곳에서는 걷기만 해도 신선이 될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 기분으로 공원을 산책하고 돌아오면 마치 숙제를 끝낸 것처럼 하루 일과가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경험을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알려 주었더니 이번에는 현재 내가 걷고 있는 보폭을 10Cm만 늘리면 건강에 훨씬 더 좋다는 조언을 해 주기에 귀가 좀 얇은 나는 좋고 나쁨은 나중에 가리기로 하 고 친구가 말해 주는 대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사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외국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는 것이 처음에는 좀 멋쩍고 어색하기도 해서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로 아는 체를 하면서 지나치곤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한국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오해 를 받게 되는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는 것 같아서 차츰 마음을 고쳐 먹고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출신임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이 든 어느 날엔가부터 산책길에서 오가다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간단한 말로 인사를 나누거나 미소로 답례를 하면서 걷기 시작했더니 마음도 편해지고 주변 환경이 달리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것이기는 하지만 낯선 사람들과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후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내가 먼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과 같은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서는 상호이해와 존중이 더욱 중요한데 이런 작은 소통이 그 기반을 다질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이러한 소통을 이어가다 보면 이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이해를 높이는 민간외교의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또한 산책길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삶에 조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어서 자연과 소통을 하는 것이야말로 공원을 걷는 사람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장점도 있다.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소리 그리고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새들의 노랫소리와 야생화의 향기는 우리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도 하며 건강을 다지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삶의 디딤돌이 되어 준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봄이 오는 길목에서 흐드러지게 필 야생화를 기다리면서 내일을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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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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