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급 무너진 북한서 시장 경험한 탈북민들 美의회 건물서 증언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의회내 레이번빌딩에서 북한에서 장마당이나 개인 사업을 통해 자본주의를 제한적으로나마 경험했던 탈북민들의 증언 행사가 열렸다. 탈북민(왼쪽부터) 김항운 씨, 김지영 씨, 배유진 씨가 참석해 자신의 북한내 시장경제 경험에 대해 증언했다. 2024.3.20
"시장에서 일정한 부를 축적하면 당국의 철퇴를 맞았다. 그럼에도 시장은 사라져선 안 된다."
19일(현지시간) 오전 워싱턴 D.C.의 연방 의회내 레이번 빌딩에서는 북한에서 장마당 활동이나 개인 사업을 통해 자본주의를 제한적으로나마 경험했던 탈북민들의 증언 행사가 열렸다.
북한 인권 운동가 수전 솔티가 회장으로 있는 디펜스포럼재단 주최 행사에서였다.
이들 사연의 공통분모는 시장에서 일정한 부를 축적하고 나면 당국의 견제를 받아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북한 주민 80%가 생계를 이어가는 시장, 장마당이 절대로 사라져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2019년 탈북한 배유진 씨는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압록강 근처에 살면서 북한 주민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목도한 뒤 살기 위해 상거래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순금을 감별할 수 있는 남편의 기술을 활용해 중국에 금을 파는 밀수업을 시작으로 중국산 상품과 한국 드라마 CD 판매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배씨는 "나는 '소문난 큰 손'이 되어갔고, 먹잇감을 찾는 사법, 감찰 당국의 표적이 됐다"면서 2011년 겨울 '비사회주의자' 딱지를 받고 가족 전체가 재산을 몰수 당한 채 벽지로 추방당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열심히 돈을 번 죄 밖에 없었다"면서 "몸을 혹사해가며 재산을 모았는데, 그것이 죄가 되어, 전재산을 빼앗기고 (북한 내 벽지로) 추방당했다"고 말했다.
배씨 는 "북한에 정의가 없으며, 국가가 허용한 장마당임에도 시장의 자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탈북했다"며 "시장을 통해 더 잘 살려고 불철주야 뛰어다닌 것이 죄가 된 사실이 원망스러웠다"고 밝혔다.
또 양강도 소재 직물공장 노동자 출신인 김항운(2008년 탈북) 씨도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식량과 생필품 배급이 중단된 시기를 겪으며 장마당에 뛰어 들었다고 소개했다.
사람들은 솔방울을 주워다 땔감으로 팔고, 일하는 공장에서 생산한 신발과 의약품 등을 몰래 빼돌려 장마당에서 판매했다. 장마당은 거지, 도둑, 장사꾼이 얽혀 난장판이 됐지만 장마당 활성화로 굶어죽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했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처음엔 중국인들에게 해산물, 알루미늄, 구리 등을 넘겨주고 쌀을 받아오는 거래로 생계를 해결했던 김씨는 조선족 상인의 북한 측 파트너가 돼 '보따리상'의 노하우를 배웠다. 전국 각지를 돌며 지역 특산물을 유통했고, 외상으로 받은 중국산 상품을 북한에 판매하며 이윤을 창출했다.
그는 "상인들 사이에서 '연대' 같은 것이 생겼고, '돈이 있어도 신용이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다'는 말과 '신용과 거래처가 있으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들이 북한 시장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의 나이, 운영시간 등을 통제하던 당국자들이 외국 상품과 남한 드라마 등을 공급하던 사람들을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그는 "당국은 남보다 돈이 많아진 사람들을 향해 '자본주의의 노예' 등으로 칭하며 짧게는 1년, 많게는 10년 이상 징역형을 내렸다"고 전했다.
또 성분이 좋은 집안 출신으로 김일성대학을 나온 김지영(2012년 탈북) 씨는 대학졸업후 잠시 공무원 생활을 하다 '부모 찬스'로 작은 냉면집과 맥줏집을 경영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지만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증언했다.
식당 지배인으로서 직원들에게 신망을 얻었던 어머니가 어느날 '직원들이 수령보다 지배인을 더 따른다'는 등의 모함을 받아 보위부에 끌려 갔고, 딸인 자신까지 함께 붙잡혀 갔다고 김 씨는 전했다.
그는 끌려가서 조사를 받는 동안 시장에서 여성들이 하는 모든 일이 행정처벌법을 기준으로 범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돈이 없으면 운영이 안되는 장마당에서 돈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김 씨는 2012년 동상으로 손톱과 발톱이 빠져 나가는 고통을 겪어가며 압록강을 건넜다.
그럼에도 이들은 장마당이 북한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배유진 씨는 "배급제가 붕괴한 북한에서 시장이야말로 주민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장마당을 시장 논리에 맡기지 않고 당국 기준으로 규제한다면 북한은 다시 암흑의 땅이 될 것이고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항운 씨는 "지금 돌이켜 보면 부모님 세대는 배급주는 날만 기다려온 불행한 세대인데, 우리 세대는 배급을 기대하지 않고 시장을 통해 죽기살기로 가족생계를 유지한 세대"라며 "우리는 노동당이 아니라 장마당이 더 소중하며, 조국과 수령보다 장마당이 더 위대하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장마당이 당국자와 간부들에게 농락당해 사라져선 안된다"며 "그들에겐 있어도 없어도 되는 것이나 북한 주민 80%가 의지하는 곳이 장마당"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지영 씨는 "2천300만 주민의 삶과 연결된 북한의 시장은 있어야 한다"며 "시장이야말로 북한 여성들이 피땀으로 일군 인민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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