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청소년이 미국으로 이민 오면 한참 사춘기일 때 고민도 많고 방황도 많이 하게 된다. 물론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제일 큰 문제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기도 하고 학우들과 오해도 생기곤 한다. 또래에 같이 이민 온 친구들은 당시에 사춘기의 반항보다는 언어의 장벽 문제가 더 급선무였던 것 같다.
미국에 오면 우선 영어부터 배우는 ESL 기초반에 있던 친구는 하루는 수업 중에 학교 카운슬러 오피스에서 호출을 받게 된다. 영문도 모르고 왜 부르지? 하면서 카운슬러 오피스에 갔는데 그 친구의 어머니가 와 계셨다. 어머니는 다짜고짜 친구의 등짝을 때리면서 “이노마가 뭐가 아쉬워서 자살을 할라 카나? 니 미쳤나? 어무이는 이래 세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영문도 모르고 어머니에게 욕을 먹은 친구는 어머니께 학교에는 갑자기 왜 오셨냐며 어리둥절했다.
옆에 그나마 미국 온 지 1년 정도 되는 한국 학생이 카운슬러와 어머니 사이에서 통역을 하고 있었다. 앞뒤 전후 사정을 들어 보니 어제 작문 시간에 적은 글이 문제였다. ESL 작문 시간에 본인이 미국 온 이야기를 적어 보라는 선생님의 얘기에 미국 와서 고충을 나름 중학교 때 배운 영어와 사전을 찾아가며 열심히 적어서 냈다.
근데 한국식 영어 표현이 문제였다. ‘좋아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웃겨 죽겠다' 등 한국식 표현을 영어 그대로 적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죽겠다고 표현했던 것이, ‘미국 생활이 힘들어서 죽고 싶다’로 선생님은 이해를 했고 학생이 자살할지도 모르겠다고 심각하게 생각한 선생님은 바로 보고를 하고 이에 담당 카운슬러가 그 친구의 어머님을 호출해서 상담을 했던 것이었다.
당시 통역을 하던 친구가 있었지만 그 친구도 미국 온 지 1년밖에 안 돼서 자세히 설명은 못 해 드렸던 듯하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 뒤로도 그 얘기는 고등학교 동창들 사이에서 만날 때마다 꺼내는 에피소드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연락이 뜸한 당시 통역했던 동창은 치과 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통역을 했었던 친구도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알았을 텐데 고지식하게 통역했다고 내 친구는 두고두고 툴툴 댔었다.
그런데 나중에 통역을 했었던 고지식한 친구의 미국 처음 왔을 때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공부를 곧잘 했던 친구였는데 미국 오니까 사람들이 당시 유행하던 말투로 “How you doing?”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해서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How are you?”, “I’m fine, and you?” 이렇게 배웠는데 말 뒤에 doing이라고 현재 진행형으로 물어봐서 고민을 했다고 한다. ing가 붙었으니 현재 진행형으로 안부를 물어본 거 같은데 그럼 나도 현재 진행형으로 대답을 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고민 끝에 대답한 것이 “I’m fine-ing, and you?”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친구들끼리 그 얘기에 박장대소를 했다. 당시엔 그렇게 배울 곳도 없이 부딪쳐 가며 영어를 배웠던 것이었다.
하루는 친구들끼리 농구를 하다가 동네 갱단 청소년들이 시비를 붙여 왔는데 “Where u from?”(어디 갱단 소속이야?)라는 질문에 갑자기 왜 저런 질문을 하나 의아 해하면서 from South Korea라고 머뭇거리며 답변하자 갱단이 웃고 넘어간 적도 있었다. 영어를 못해서 손해도 보고 또한 몰라서 화를 면하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뉴스에 한인 싱글맘 여성이 아이를 집에 두고 일을 갔다 왔는데 아이가 TV에 매달렸다가 쓰러지는 바람에 깔려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걸 발견한 놀란 엄마가 911에 전화했고 한국식으로 “내 탓이야, 내가 죽인 거야"라며 울면서 I killed라고 얘기하는 바람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었다.
영어가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바보도 만들고 살인자도 만들고 화도 면하게 해 줄까? 친구와 길을 걷는데 어떤 홈리스가 혼자 미쳐서 중얼거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친구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미친놈이라도 좋으니 저 정도만 영어 했으면 좋겠다…”
지금이야 미국산 날이 한국산 날보다 많아졌으니 아련한 옛 추억이지만 그 당시는 영어를 못해서 생겼던 웃픈 이민 야사(移民野史)가 이민자들의 가슴에는 하나 씩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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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PD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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