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 질환 아니고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발생
매년 2월 둘째 주 월요일은 국제뇌전증협회(IBE)가 정한‘세계 뇌전증의 날’이다. 뇌전증은 그동안 편견이 담긴 병명인‘간질(癎疾)’ ‘전간증(癲癎症)’ 등으로 불리다가 2014년 뇌전증(腦電症·epilepsy)으로 바뀌었다. 심심찮게 ‘뗑깡부리다’라는 말도 일본의 예전 뇌전증 질병 명칭인‘뗑깡(癲癎)’에서 유래됐다. 뇌전증은 뇌 속 신경세포가 연결돼 미세한 전기적 신호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뇌파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신경세포에 전류가 과도하게 흐르면서 불규칙하고 반복적으로 발작이 생기는 게 주증상이다. 1년에 15만 명 정도의 환자가 찾을 정도로 비교적 흔하다.
9세 미만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줄어들어 성인기에는 발생률이 낮았다가 60세가 넘어 다시 증가한다.
흔히 ‘뇌전증=선천성 질환’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유사 증상이 나타난다면 검사·검진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최윤호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은 치매·뇌졸중 다음으로 환자가 많은 뇌 신경계 질환으로 결코 불치병이나 정신 질환이 아니다”며 “숨겨야 하는 질환이 아닌 정확한 진단으로 치료 가능한 질환”이라고 했다.
‘뇌전증 발작’은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뇌전증 발병 원인은 ▲유전 ▲분만 전후 뇌 손상 ▲뇌염이나 수막염 후유증 ▲뇌종양 ▲뇌졸중 ▲뇌혈관 기형 ▲뇌 속 기생충 등이 꼽힌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는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다. 뇌전증 발작은 크게 뇌 전체에서 시작되는 ‘전신 발작’과 뇌의 일정한 부위에서 시작되는 ‘국소 발작’으로 나뉜다.
발작이라고 하면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눈을 치켜뜨고 소리를 지르며 입에 거품이 고이는 대(大)발작을 주로 떠올리지만 실제 성인에게서는 국소 발작이 더 흔하다.
국소 발작은 한쪽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거나 이상 감각이 나타나고 한쪽 얼굴만 실룩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고개와 눈이 한쪽으로 돌아가면서 입맛을 다시거나 손을 만지작거리는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전신 발작에는 ▲정신을 잃고 전신이 뻣뻣해지면서 눈동자와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가는 ‘전신 강직간 대발작’ ▲아무런 경고나 전조 증상 없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거나 고개를 떨어뜨리는 ‘결신 발작’ ▲갑자기 전격적 또는 순간적으로 전신이나 팔다리, 몸통 일부에 강한 경련이 일어나는 ‘근간 대발작’ 등이 있다.
임희진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 환자 10명 중 7명 정도는 약으로 증세가 호전 또는 관해(寬解)된다”며 “따라서 의사와 충분한 상담 후 최소 2~5년 이상은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뇌전증 발작이 특별한 유발 원인 없이 2회 이상 나타나면 약물 치료를 시작한다. 뇌전증 발작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항경련제 복용이다. 뇌전증 환자의 70% 정도는 적절한 약물 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나머지 30% 정도 환자는 약물 치료로도 경련 발작이 재발하는 난치성 뇌전증으로 진단되며, 이때는 수술적 치료를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뇌전증 환자가 수술이 가능한 건 아니다. 수술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부위가 있고, 또 수술 후 증상 개선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수술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밖에 ▲미주신경자극술(VNS) ▲뇌심부자극술(DBS) ▲반응성뇌자극술(RNS) ▲케톤 생성 식이요법 등으로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최윤호 교수는 “뇌전증 환자의 발작이 잘 조절되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다”며 “뇌전증 발작은 신경세포의 일시적이고 불규칙적인 이상 흥분 현상으로 발생하기에 이를 억누르는 약물을 쓰거나 병소를 제거하면 대부분 조절되고 완치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뇌전증 환자의 생활 수칙>
1. 항경련제를 규칙적으로 먹는다. 약 복용 시간을 놓쳤다면 곧바로 약을 먹어야 한다.
2. 규칙적인 수면을 유지한다. 불규칙한 수면ㆍ수면 부족은 경련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
3. 금주한다. 술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경련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4. 심한 스트레스는 경련 발작을 유발하므로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을 피한다.
5. 수영ㆍ등산ㆍ과격한 운동 등 위험한 상황을 일으킬 수 있는 활동을 피한다.
6. 경련 발작이 반복되면 운전하지 말아야 한다. 1년 이상 발작이 없다면 담당 의사와 상의해 운전 여부를 정한다.
7. 환자는 임신하려면 복용 약물 조정을 위해 담당 의사와 상의한다.
<
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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