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 나토공격 격려’는 나토 존재 이유인 집단방위 부정
▶ 전문가 “가능한 시나리오”…발언 자체로 벌써 리스크↑
▶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실현되면 글로벌 안보 지각변동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집단안보를 무력화하려는 듯한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이겨 재집권할 가능성이 있는 까닭에 동맹국들은 미국의 대외정책 급변 가능성에 경악했다.
유력매체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이 실제 정책이 된다면 미국의 군사력이 떠받치는 글로벌 안보지형이 급변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의미, 나토의 기능, 나토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역할 등 이번 파문과 관련한 사실관계와 일반적 관측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뱉은 논란의 발언은.
▲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대선 후보 경선 유세에서 나토 동맹국들이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는 상당한 리스크가 있는 발언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2020년 집권 1기에도 이미 이 같은 주장을 내세워 동맹국들에 안보 분담금 증액을 압박한 바 있다.
문제는 동맹국들의 국방비 지출을 촉진하려고 오히려 적대국의 무력사용을 부추기겠다고 한 부분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토 회의에서 한 나토국 정상에게 자신이 했다고 소개한 발언은 다음과 같다.
"한 큰 나라의 대통령들(presidents) 중 한 명이 일어나서 '만약 우리가 돈을 내지 않고 러시아의 공격을 받으면 당신은 우리를 보호해 주겠느냐'고 하자 나는 '당신은 돈 내지 않았으니 채무 연체가 아니냐'고 했다. (중략) '난 당신네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그들(러시아)이 원하는 것을 내키는 대로 모조리 하라고 격려할 것이다. 당신네는 당신네가 갚아야 할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구박하는 나토는 어떤 조직인가.
▲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대서양조약을 통해 창설된 기구다.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 등 12개국이 1949년 4월 조약을 체결했다.
나토의 출범 당시 조약의 목적은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 사회주의권의 군사적 위협에 함께 대응한다는 데 있었다.
그 뒤 냉전 시대가 종식하면서 나토의 방위 전략은 테러, 대량살상무기 위협, 사이버 공격, 에너지 안보 위협 등 새 안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역량 구축에 맞춰져 왔다.
나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안보가 급격히 불안해지면서 냉전종식 후 희미해져가던 존재감을 되찾았다.
현재 나토 회원국은 모두 31개국이다. 나토는 자체 군대를 보유하지 않지만, 회원국 간 군사 협력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미국 동맹국들은 왜 떠는가.
▲ 나토를 떠받치는 핵심 가치이자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정신은 '집단방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걸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북대서양조약 제5조는 '회원국들은 다른 회원국에 대한 무장공격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쓰고, 무장 공격 발생시 '무력의 사용을 포함해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행동을 개별적으로, 또는 다른 회원국과 협력해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도 회원국으로서 이 같은 집단방위의 의무를 지닌다.
사실 나토 군사력 대부분은 미국이 차지하고 미국은 나토를 사실상 지휘한다. 미국이 없는 나토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공격당한 나토 동맹국을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의 공격을 부추기겠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그런 의미에서 나토 무력화다.
나중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을 떠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그가 재집권하면 즉시 나토가 흔들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유럽 동맹이 미국에 기댈 수 없다면 미국과 상호 안보협정을 체결한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1950년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제외한 극동방위선(애치슨라인)을 발표한 지 5개월 뒤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사실을 거론했다.
미국의 집단방위 거부 실제로 가능할까
▲미국이 집단방위 의무를 저버리는 게 합법적인지는 따로 따져볼 문제다.
조약 5조에 있는 '필요하다고 간주되는'이라는 표현이 폭넓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개입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는 식의 자의적 설명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슈아 시프린슨 메릴랜드대 공공정책대학원 부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고무줄 조문 탓에 "뭔가 잘못됐을 경우 트럼프가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위험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파장을 고려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도 그런 선택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도 분석한다.
제프리 라슨 미 해군 대학원 교수는 WP에 미국이 동맹국을 지원하지 않는 일은 생각할 수 없다며 "우리가 (집단방위를) 엄숙히 약속한 동맹국을 돕지 않는 것은 외교정책적 관점에서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의 집단방위 발동된 적 있었나
▲ 나토 창설 이후 제5조는 2001년 미국이 자국이 공격당했다고 선언한 시기에 한 번 발동된 적이 있다.
당시 9·11 테러 발생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나토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나토 회원국들은 ▲테러 관련 정보 공유 및 협력 강화 ▲대테러 투쟁 결과 테러위협이 증대된 동맹국 및 다른 국가 지원 ▲미국 및 나토 동맹국 관련 시설에 대한 보안조치 강화 ▲미국 및 나토 동맹국에 대한 영공 개방 등 지원을 결의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안보 무임승차 불만은 합당한가
▲ 2006년 나토 회원국들은 각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각국이 자국 국방예산을 늘리겠다는 자발적 의지 표명일 뿐 상대가 있는 의무는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채권채무 관계로 인식하고 2% 기준에 미달하는 국가를 채무 불이행국으로 간주한다.
나토 추산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국방비로 GDP의 3.49%인 8천600억 달러(약 1천146조 원)를 지출했다. 이는 다른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 지출액을 모두 합친 금액의 두 배를 넘는 규모다.
또한 미국은 나토에 공대공 급유와 탄도미사일 방어, 공중 전자기 장비 지원 등 정보·감시·정찰 부문의 지원도 제공한다.
따라서 미국 내에는 나토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많다는 인식이 계속 있어왔다.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은 유럽의 국방비 삭감을 비판하며 미국이 "위험과 비용을 나눠 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데 지쳤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공유하는 이러한 불만을 또 다른 단계로 대폭 증폭시키고 있다.
그는 대통령 재임 당시 나토 회원국이 안보 문제에 대해 미국에 '무임승차'한다고 압박하면서 방위비 추가 분담을 강하게 요구해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말 백악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나.
▲ 그렇다.
일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달 15일 시작된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계속 승전보를 전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이 '트럼프당'으로까지 불리는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상 대선후보 자리를 확정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본선에 오를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을 실제 누를 가능성도 거론된다.
최근에는 11월 미국 대선의 승패를 결정할 7개 주요 경합주 가상대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격차로 따돌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다만,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6 의회 난입 독려 등 4개 사건에서 91개 혐의로 형사 기소됐고, 성추행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 배상과 명예훼손 소송 등 다수의 민사 재판에도 휘말려 있다.
또한 11월 대선 출마 자격 문제에 대한 법적 판단을 위한 연방 대법원의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인용 판결을 받을 경우,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본선에서 부동층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마녀사냥'을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오히려 호재로 활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형사사건 기소 때마다 지지층 결집으로 지지율 상승효과를 누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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