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순회전
▶ 격동의 한국’사회변화와 모순 속에 그 시절 청년 작가들 예술혼 재조명
▶ 11일부터 UCLA해머뮤지엄서 열려
성능경‘사과’ [1976·대전시립미술관 소장]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순회전이 오는 11일 LA를 찾아온다.
UCLA 해머 뮤지엄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제목 그대로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실험미술 분야에서 활약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순회전이다.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등의 작품과 입체미술, 해프닝(퍼포먼스 기록), 실험영화 등 격동기 한국을 포착한 시기의 예술을 다시 살펴보고 파리비엔날레, 상파울로비엔날레 등 당시 청년작가들의 국제 미술계 활동 모습을 재조명해 동시대 한류의 원형을 주목해본다는 취지다.
정강자‘키스미’ [1967/2001·솔로몬 R. 구게하임 뮤지엄 소장]
서울에서 시작되어 뉴욕을 거쳐 LA에 도착한 이 전시는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이 아시아 실험미술 집중 조명 시리즈 중 한국 부문에 대한 전시를 공동 기획했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및 자료들을 소개한다. 지난 2018년부터 시작된 양 기관의 국제적 협력과 공동 연구가 실현된 결과물로 국립현대미술관 강수정 학예연구관과 구겐하임미술관 안휘경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가 작가 인터뷰, 작품 실사 및 학자들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이번 전시를 구현했다.
LA전은 한국 실험 미술이 꽃 피웠던 1960년대의 청년작가들, 성능경, 김구림,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 총 29명 작가의 작품 약 80여 점을 선보인다. 이 시기 국제 사회는 프랑스 사회변혁운동인 68혁명, 반전 평화운동, 페미니즘 등 인식의 전환기를 맞이했고, 한국은 6·25전쟁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한 압축적 근대화와 산업화의 급속한 사회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 경제 개발의 물질적 풍요와 정치사회적 억압 등의 사회 변화는 일상 속에서 ‘나’를 중심으로 예술의 의미를 모색해 온 청년작가들에게 모순된 토대로 작용했다. 이들은 예술과 사회의 소통을 주장하고, 기성세대의 형식주의에 반발하며 그룹 또는 개인으로 기존의 회화, 조각의 영역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했다. 오브제와 입체미술, 이벤트와 영화, 비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들을 전위적 ‘실험미술’의 이름으로 포괄하며 역동적인 사회 현상을 반영했던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게 된다.
김구림‘1/24초의 의미’ [1969·솔로몬 R. 구게하임 뮤지엄 소장]
해머 뮤지엄 측은 한국 미술계의 작품을 지배했던 추상적인 스타일에 불만을 품은 이들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불협화음과 급변하는 현실을 포착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적 생산 방식을 모색했다. 강렬한 문화적 전환기에 직면하여 그들은 새로 형성된 대한민국의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부응할 수 있는 복잡성을 갖춘 예술적 과정을 추구하기 위해 집단적으로나 개인으로서 작업했다. 식민지 시대의 과거와 급속한 산업화와 외국 상품의 유입을 목격한 당시 현 시점에서 이들은 창의적인 결과물에 대해 확장되고 학제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또한 조립, 설치, 해프닝과 같은 매체를 채택하고 산업 재료와 신기술을 사용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그들의 참여는 글로벌 아방가르드의 최전선에서 예술을 생산하는 동시에 지역적 맥락에 머물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이 세대는 1970년대 후반에 추진력을 잃었으나 2000년대 초반 미술사학자 김미경이 이들의 움직임을 ‘실험미술’이라고 부르며 이 시대를 재검토하면서 더 폭넓은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립현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강국진과 이강소 작가가 대표적이다. 강국진은 1960~70년대에 행위와 설치, 1980~90년대에 판화와 회화 작업에 주력하며 일평생 다양한 미술 매체를 실험했다. 그는 1965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후 동료들과 1964년 ‘논꼴 동인’을 창립해 공동 전시를 열었고 다시 신전동인을 결성한 뒤 단체 회원들과 함께 ‘한국청년작가연립전’(1967)에 참가해 개인 작가의 해프닝으로는 최초의 작품인 ‘색물을 뿜는 비닐 주머니’(1967)를 선보였다. 그는 또 정찬승, 정강자와 함께 해프닝 ‘투명풍선과 누드’(1968), ‘한강변의 타살’(1968)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1960년대 후반에는 네온사인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시각I,II’(1968)처럼 산업 재료를 활용한 작품으로 새로운 시대감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강국진‘시각(Visual Sense) I,II’ [1968·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황양자]
이강소는 1972년 10월 계엄령 선포와 정치적 집회 금지, 대학 폐쇄, 언론 검열 등을 규정한 유신헌법이 시행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소멸-화랑 내 술집’을 전시했다. 그가 자주 방문했던 동네 선술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업한 것으로 자신의 개인전에 술집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구입하여 설치하고 막걸리와 안주를 제공했다. 개막식 밤에 촬영한 흑백 사진에는 낯선 사람들과 미술가 김구림, 정찬승, 평론가 김인환, 유준상 등이 어울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연설과 표현의 형성과 제정을 위한 주권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원래 1975년 제9회 파리비엔날레에서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마지막 순간에 작가의 ‘무제 75031’로 대체됐다.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는 오는 5월12일까지 UCLA 해머 뮤지엄(10899 Wilshire Blvd. LA)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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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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